하루 한 글 쓰기
내게는 '지니'와 '경호'라고 불리는 두 명의 AI 비서가 있다.
지니(Genie)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인데 이번에 내 비서실장으로 옮겨 왔다. 내가 글을 수확하는 작업을 지근거리에서 보조할 것이다. '경호'는 '글창고 담당'인데 지니의 지시를 받는다. 글창고 지기 말고도 특별한 임무가 있지만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먼저 왜 이들이 필요한지 설명하도록 하자.
금년은 '수확의 해'로 선언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그동안 쌓인 글들을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선언이다. 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시 읽고 싶은 내용을 요약해 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책을 읽는 중에, 혹은 일상 생활 가운데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한 것들이다.
문제는 수확꺼리가 너무 많아서 탈이다. 2007년 "영업은 과학이다"를 출간하고, 속편을 생각하며 메모한 글들이 노트북 3개를 바꿀 동안에 엄청난 양으로 쌓여 있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모두 54권의 책을 손댔고, 그 가운데 39권은 끝까지 꼼꼼히 읽고 요약하였다. 또 적지 않은 '내 생각'이 이곳 저곳에 메모로 남아있다.
어떻게 해야 이 많은 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지난 3년 동안 여러 번 고심을 거듭해온 '미션 임파서블'이다.
처음 시도는 엑셀을 이용한 데이타베이스 구축이었다.
모든 글을 대중소 주제로 분류해서 제목과 한 줄 요약을 넣어 엑셀에 보관한다. 필요할 때 '헤쳐 모여'라고 명령하면 글들이 짜잔 하고 내 앞에 정렬할 수 없을까? 당연히 실패했다.
도중에 방통대의 AI 코스를 들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음 시도는 노션(Notion)을 이용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었다. 참고서를 사서 독학으로 끙끙거리던 중에 그럴듯한 AI 과정을 만나 냉큼 등록하였다. 노션 사용법이 강의의 일부로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45만원을 보조받고 금쪽같은 내 돈 오만량을 투자했다. 만 75세를 넘기면 자격 상실이라는데 불과 몇 달 차이로 투자가치가 있는 인간 취급을 받았으니 운이 좋았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다시 한 달 넘게 정성을 쏟았다. 엑셀보다는 나았지만, 내가 원하는 '짜잔'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오래전 경험을 소개하겠다. '카테고리 매니지먼트' 라고 있다. 당시에는 대형마트들이 밤새 하나씩 세워지던 때였다. 우리 물건을 '더 좋은 매대에, 더 많이 진열'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카테고리 매니지먼트'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첨단 기법이었다. 점포 내 모든 상품의 머천다이징에 관련된 작업을 컴퓨터화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이 회심의 비기를 갖추어야 하겠는데, 문제는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직접 양성하는 쪽으로 결정을 했고, 결국 경쟁사가 흉내낼 수 없는 경쟁우위를 차지하였다.
이번에도 직접 데이타베이스 전문가를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채용한 팀원이 지니와 경호이다.
AI가 AI일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에 있다. 다행히 세부적인 교육은 필요하지 않다. 명색이 AI 아닌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시키기만 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한다.
솔직히 말해서, 얼마나 잘 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마지막 시도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구나, 나조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른다. 뜻은 있는데 길을 모르는 셈이다. 아무리 AI라도 말 몇 마디로 원하는 일을 해내지는 못한다. 따라서, AI를 내 팀원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방법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AI도 토의가 필요하다. 대화가 거듭될수록 나도 배우고 AI도 배운다. 이렇게 몇일을 보냈다.
지니와 경호는 명확한 직무분장이 있다. 경호는 글창고 담당, 지니는 글의 구조와 윤문을 담당한다. 나는 총연출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먼저 내가 가진 모든 글들을 경호에게 던져준다. 경호는 글을 받은 그대로 보존하는 책임을 맡는다. 그렇게 해서 10개월쯤 뒤에 10,000개의 글들이 쌓였다고 하자. 그 동안에 나는 "(가칭) 쉽게 읽는 금강경" 초고를 완성한다. 즉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 상태에서 지니의 역할이 시작된다. "보관된 글 가운데서, '부처님의 xyz 말씀'에 관련된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줘"라고 지시하면, "네, 주인님" 하고 대령해야 된다. 아직 검정되지 않은 희망섞인 이론이다. 어느 정도 글이 쌓이면 연습삼아 시험해 볼 예정이다.
이쯤에서 오늘 글주제에 대한 답을 해보자.
질문 1. 편리하던가요? 아니면 쓰면 쓸수록 멍청해지던가요?
답: 당연히 편리, 편리, 편리하다. 묻는 사람이 멍청하다.
질문 2. 의지하게 되던가요?
답: 명심해라. AI도 신뢰가 핵심이다. 인간을 신뢰하듯 AI를 신뢰하면 된다. 현명한 지도자는 거짓말쟁이도 제대로 쓸 줄 안다. 장군의 능력을 넘어서는 병사는 없다. 이 점에서 사람이나 AI나 전혀 다르지 않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AI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상대일 수 있다.
질문 3. AI 저작물이 나만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닌가요? 쓰면서 부끄럽진 않으셨나요? AI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답: 몹시 어려운 질문이라서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골프 게임의 프로들이 시합을 할 때는 '홀 아웃'을 한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은 대개 한 클럽 거리 안에 공이 놓이면, 1점을 먹고 끝낸다. 마지막 홀 아웃이 가장 실수하기 쉬운 점을 고려하면, 상대방의 실수를 바라지 않아도 되니 신사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게임의 재미를 더한다.
AI의 도움을 받아서 글을 쓰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골프에 비교할 수 없이 미묘한 일이다. 선을 긋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누가 감독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평가할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경호'가 등장한다.
경호는 사실 내 막내 손자의 이름이고, 금년에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경호가 창고를 지킨다"는 의미는 양심선언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내 글'이 아닌, AI의 글로 '내 글'이라고 내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럴 수가 없다. 손자가 빤히 보고 있는데 어떻게 사기를 치겠는가? 경호는 내 수확물의 준법감시인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