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글 쓰기
만약 세바시에 나가 15분 강연을 하게 된다면, 나는 주제를 이렇게 잡고 싶다.
“내 탓이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쉽게 남을 탓한다.
“왜 이렇게 짜증 나는 거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가끔은 내 부족함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곧바로 상황이나 환경 탓으로 마음이 기운다.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일이 안 풀린 현실에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이다.
이 모습은 회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어떤 사업이 실패하면 외부 요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경험 많고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지만, 같은 실패가 반복되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외부 문제는 비교적 쉽게 드러나지만, 조직 내부의 문제 — 특히 자신의 판단 착오나 리더의 한계 — 는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반성은 조심스럽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근본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에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서로 다투기도 한다. 효도를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부모에게는 소홀할 수 있다. 아이들은 말보다 행동을 통해 배운다. 부모의 삶이 가르침과 다를 때, 교육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 탓이오”라는 태도가 중요해진다. 이것은 자신을 비난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내 잘못을 돌아보는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해질 수 있기 때문에, 변화도 더 현실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그래서 “남을 사랑하기를 나 자신처럼 하라”는 말도 결국 자기 성찰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태도는 관계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친구와 다툰 뒤 상대의 잘못만 떠올리면 분노는 커진다. 하지만 내가 어떤 부분에서 서툴렀는지 돌아보면, 상대의 입장도 이해하게 된다. 특히 부부 싸움 뒤에 이런 성찰을 해 보면 감정이 한결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내 탓이오”는 죄책감의 선언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실천적 태도다. 책임의 방향을 나에게 돌리는 순간, 우리는 상황에 휘둘리기보다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되찾는다. 그 자리에서 이해가 생기고, 용서가 가능해지며, 관계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참고로, 나는 최근에야 ‘세바시’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얼마 전 모임에서 ‘마니또 선물’이라는 표현도 처음 배웠다. 이렇게 새로운 말을 알아가는 재미 덕분에 요즘은 배우는 즐거움을 새삼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