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내외분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며

by 허병상

이 글은 오늘로 결혼 70주년을 맞으신 작은 누님 내외분께 축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씁니다. 아울러 두 분의 삶이 우리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았습니다.


두 분은 1956년 2월 7일(음력 12월 26일), 설을 앞둔 분주한 시기에 혼례를 올리셨습니다. 자형은 1932년생으로 스물넷의 청년이었고, 네 살 아래 새댁은 스무 살 꽃다운 처녀였습니다. 큰 키에 희고 환한 얼굴, 홍조 띤 뺨이 인상적인 신부였습니다. 8남매 집안의 장남과 또 다른 8남매 집안의 둘째 딸이 만났으니, 그날 온 동네가 잔칫집 분위기로 들썩였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자형은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입행해 평생 은행원으로 사셨습니다. 당시 그 취업은 말 그대로 작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자형의 가족은 일본에 모든 살림을 두고 빈손으로 귀향했습니다. 모두가 가난에 시달리던 시절, 아이 여덟을 데리고 빈손으로 귀국한 부모의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적 같은 선택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장어른께서 자형을 부산으로 유학 보내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1940년대 한국의 문맹률은 78%를 넘었고, 초등학교 진학조차 쉽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중학교 진학은 극소수의 몫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책보다 지게를 먼저 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장어른은 낙천적이고 쾌활한 분으로 기억됩니다.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활기차게 걸어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부산상업고등학교는 1896년에 개교한 국내 최고의 명문 상업학교였습니다. 그러나 자형의 학창 시절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식량은 6년 동안 쌀 두 되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신문팔이는 기본이었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사흘을 굶다가 우물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일도 있었고, 남루한 모습을 본 행인이 돈을 쥐여주고 갔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그만큼 절박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고난을 딛고 자형은 1952년, 전쟁 중에도 한국은행 입행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최고의 인재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굶주림과 싸우던 고학생이 그 문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의 의지와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마음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후 자형은 가족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동생 일곱을 뒷바라지하며 모두가 사회에 자리 잡도록 도왔고, 자신의 삶은 늘 절제와 균형 속에 두었습니다. 그 결과 자녀들도 훌륭히 성장했고, 이제 곧 두 번째 증손이 태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작은 누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은행원이 안정적인 직업이었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생활은 여느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서도 시골집을 돕고 형제들의 공부를 뒷바라지하며 가정을 꾸려 나가는 일은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두 분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찬 남편 곁에서 묵묵히 살림을 꾸려간 누님의 역할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누님의 이름에 들어 있는 ‘순(순할 순順)’ 자가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여섯 식구가 한 달 생활비 500원으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마당 한켠에 채소를 가꾸며 아끼고 나누던 시절이었습니다. 일 년에 아홉 번이나 제사가 있었던 집안 살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자형이 꼭 써야 할 곳에 돈을 아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자형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어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자형다운 일화를 하나 들었습니다. 20년 전 은행 주식에 투자한 5천만 원이 지금은 1억 원이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형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이 94세에 새로 1억이 생겼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겠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한마디에 자형의 삶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수를 지키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차곡차곡 벽돌을 쌓듯 살아온 사람의 태도입니다. 실수를 최소화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저는 두 분이 함께 일군 70년을 '기적을 만든 삶'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더구나 이 기적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두 분이 몸소 보여주셨기에 우리는 그 가능성을 믿을 수 있습니다.


부디 두 분 모두 건강히 오래오래 함께하시며, 후배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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