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수

by 허병상

단 한 번의 결정으로 가장 많은 경제적 손해를 본 일은 단연 아파트를 팔고 시골집을 지은 사건이었다.

나는 언제나 시골에 살고 싶었다.

서초동의 아파트에 살던 우리는 서울 밖으로 나가서 단독주택을 짓기로 하였다. 아내는 싫어했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대장인 시절이었다.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서, 33평짜리 아파트를 일금 54백만원에 팔았다. 그때는 양재동이 아직 논밭이던 시절이었다.

그 돈에 절반을 더 얹어서 지금의 인덕원역 인근 모락산 자락에 대망의 단독주택을 지었다. 동네 어귀에 있던 대우아파트(22평형) 네 채 값과 같은 돈이 들었다. 당시 서이초등학교 2학년이던 큰아이는 인덕원초등학교로 옮겼다.

19년뒤 그 집을 팔고 나오는데 대우아파트 1채가 우리집보다 2할쯤 더 나갔다. 그 우성아파트는 재건축을 해서 지금의 래미안서초에스티지아파트가 되었다.


집은 크지 않았다. 마당도 기대보다 비좁았다. 그래서 베란다에서 맨손으로 홍시를 딸 수 있는 집이었다. 그렇게 희망하고 지었다. 여름이 되어 평상에 누우면 대나무가 스르릉하며 바람소리를 내는 집, 우두두하며 살구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던 집이었다.

거름은 개똥이 제일이다. 눈을 뜨면 마당구석에서 개똥을 집어다 나무밑에 던져놓으며 하루가 시작되었다. 포일 전통장에 가서 생선내장을 모으고, 기름집에서는 깻묵찌꺼기를 얻어서 나무 밑동에 묻어주는 것은 주말마다 돌아오는 별난 즐거움이었다. 줄장미가 빨갛게 뻗어서 담장을 물들였다. 뒷산에서 맑은 물을 길러서 익힌 막걸리를 동이 채 들이붓기도 하였다.

그 집에서 나는 행복했다.


내가 서초동 아파트에 계속 살고, 재건축으로 더 큰 집을 분양 받았고, 집 짓는데 추가로 들인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지금쯤 빌딩 한 채가 남았다고 치자.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인생의 행복방정식은 쓰기 나름이다.

더구나, 계산대로 빌딩 한 채가 남았을까? 아마도 내 복에 없는 일이 아닐까? 막걸리 대신 독한 양주를 마시고 건강을 망쳤을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누님 내외분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