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ra Ryu Nov 03. 2023

내 모든 것을 다해 좋아하다

전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리뷰


영화를 좋아하는 방법은 세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그 다음은 본 영화에 관해 글을 쓰는 것,
마지막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이 문장은 단순히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과 그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영화가 좋으면 어떤 장면을 만들어 낼지 고민하고, 그림이 좋으면 어떻게 선을 그어낼지 고민하고, 음악이 좋으면 음을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고...


나는 여기에 두어 단계 정도를 더 추가하고 싶다. 실패하기, 그리고 다시 도전하기.


예술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좋은 생각은 이미 장황한 역사 속에서 한 번 나온 아이디어이다. 이 때 절망기가 찾아온다. 예술 작품을 이렇게나 사랑하지만 결국 좋은 작품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


그렇지만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많이 보다 보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도전하는 단계이다. 새로운 방식 중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 2차 창작이다.


기존의 작품을 재해석해 새로운 재미를 향유하는 것.  



전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포스터


맥스 달튼은 이런 '다시 도전하기' 단계의 힘을 보여주는 아티스트이다.


전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은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테마 일러스트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의 순간을 묘사한 일러스트를 선보인다.


맥스 달튼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이며,
이따금 뮤지션이나 작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궁전 같은 입구를 들어가면서 맥스 달튼의 소개 글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그의 화려한 이력 때문에 놀라게 된다.


'화려한 이력'은 단순히 커리어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가족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과 오키나와인 부모님으로 구성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랐다. 문화적 경험의 폭이 아주 넓었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를 접해서 그런 것인지 그의 작품은 대중문화에 가깝다. 대중문화는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다룬다. 어렵지 않게. 작가의 작품 스타일과 꼭 닮았다. 전시를 감상하며 느낀 작가의 작품 세계와 예술에 관한 고찰을 간단히 이어가고자 한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전시 현장. 촬영 류나윤


전시회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작가의 인사. 2023년 계묘년의 해를 환영하는 모습이다. 작가의 세심한 인사를 보면 따뜻하게 환영받는 기분이 든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 맥스 달튼


첫 번째 섹션인 '제1막, 영화의 순간들'의 작품 중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모티프로 한 일러스트.


맥스 달튼의 힘은 단순히 영화를 한 프레임에 요약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추려내고 그럴듯하게 이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지 오래된 사람도 작품을 보는 순간 '아, 이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었지'라며 영화의 추억을 되살려낼 수 있는 것.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 맥스 달튼


영화를 요약하는가 하면 영화 속 주요 인물을 한 프레임에 모아 두기도 한다.


가장 귀엽다고 느꼈던 '가위손 인형 놀이' 작품이다. 작가는 대중문화를 모티프로 일러스트를 그리면서도, 그 일러스트에 다른 대중문화의 요소를 섞어낸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 맥스 달튼


작가의 엄청난 '오타쿠' 기질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 'A Love Story'는 여러 유명 영화 속 인상적인 커플을 모아 피규어 처럼 만들어 두었다. 작품 속 피규어들이 어떤 영화에서 나온 것인지 하나 둘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전시 현장. 촬영 류나윤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며 느낀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의 인기와 인지도에 따라 각 작품 앞에 서 있는 관람객의 수가 확연히 차이 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옹>, <이터널 선샤인>, <스타워즈 시리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말할 것도 없고) 등을 모티프로 한 작품 앞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고스트 버스터즈>는 B급 영화이고 지금은 많이 기억되지 않는 영화여서 그런지 사람이 없어 쓸쓸했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전시 현장. 촬영 류나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모티프로 한 일러스트의 구석에 있는 불붙은 고물상. 맥스 달튼의 작품은 영화를 안 본 사람에게 스포일러는 최소화하면서도,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더 많이 준다는 강점이 있다.


영화 속 배경과 같이 허름하고 정겨운 시골 동네 저 뒤편에 홀로 불타고 있는 모습이 강한 인상을 준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전시 현장. 촬영 류나윤


B급 감성으로 가장 잘 알려진 영화 <펄프 픽션>을 중세 그림처럼 재해석한 일러스트. '미국다운' 냄새가 폴폴 나는 영화를 이렇게나 경건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에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바로 장소의 특수성이다.


영화와 동화를 한껏 합쳐 놓은 듯한 작가의 작품에 흠뻑 빠져 있다 보면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 반짝이는 점이 되어 지나가는 자동차와 자로 잰 듯한 건물의 불빛들을 보며 올 한 해를 정리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63빌딩에서 바라본 야경. 촬영 류나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2922


작가의 이전글 왜 잃어야만 성장할 수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