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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May 16. 2024

아르바이트라는 치유의 장소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2024)




넌 왜 여기 왔는데?


소수의 사람과 함께 일하는 사업장에서 단기 근무, 그러니까 ‘알바’를 해 본 적 있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 둘만 남았을 때의 어색함과 그 어색함을 어떻게든 때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던지는 여러 화두에 공감할 것이다. 알바에서 사람들은 항상 ‘왜 이곳에 왔는가’를 묻는다. 무엇이, 어떤 흐름이 너를 이런 단기적인 근무 환경으로 이끌었냐는 질문이다.  



아~ 악덕 기업?
 


주인공 이이즈카는 모리구치라는 남자애와 같은 조로 근무하게 됐다. 숫기 없는 이이즈카가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퇴사 이야기에 모리구치는 말을 더 얹지도 않고 딱 저렇게 답한다. 안 봐도 알겠다는 무언의 공감이다. 이이즈카도 ‘응, 아니’ 이야기도 않고 멋쩍게 가만히 있는다. 아주 소극적인 긍정이다.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는 모리구치의 이 대답과도 같은 영화다. 그러니까, 요즘 청춘의 고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구태여 자세한 이야기를 캐묻지 않는다. 대신 미적지근하게 공감해 준다. 왜? 사실 이이즈카의 이야기는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 그리고 이야기하면 이이즈카는 울어 버릴 거니까.  



청춘에게 위로와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며 스스로를 ‘리스타트 힐링 무비’로 설명하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는 영화의 무드나 소재로 보았을 때 힐링 영화로 분류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이즈카의 상황은 사회초년생의 실패를 겪은 취준생이기 때문이다. 


이이즈카는 소극적이고 차분한 성격으로 영업 부서에 들어갔다가 직장과 적성이 맞지 않아 빠르게 퇴사한 인물이다. 이런 이이즈카의 성격답게 크고 작은 즐거움이나 괴로움을 부각하지 않고 조용히 담아 두는 영화이기 때문에, 여러 관객이 영화의 재미 포인트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애써 무슨 사건을 만들지 않으려는 영화의 태도가 오히려 관객이 다양한 이이즈카의 비밀, 혹은 과거를 캐내려 하는 데서 영화의 진정한 재미가 시작된다. 왜냐면 영화는 이이즈카의 이야기를, 모리구치의 형의 이야기를,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오오토모의 과거를 마치 요약한 듯 최소한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정보만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이즈카, 모리구치, 오오토모 모두 결핍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청춘 모두가 결핍이 있다는 건 곧 세상에는 수많은 상처받은 청춘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처음엔 어색한 듯하지만 점차 느슨한 연대를 이끌어가는데, 이런 느슨한 유대감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가 바로 ‘아 악덕 기업?’이라는 대사다.  



치유의 장소가 된 아르바이트


이이즈카는 낯선 동네에 홀로 뚝 떨어진 인물이다. 이이즈카의 인간관계는 역설적으로 직장이 아니라 알바를 통해서 확장된다. 


꼭 편의점이라기보다도 ‘아르바이트’라고 부르게 되는 공간. 우리가 ‘아르바이트’라 불러도 모두가 이해하는 이 장소는 영화에서 일종의 마법의 공간과도 같은 기능을 한다. 이이즈카는 이곳에서 치유를 받기 때문이다. 


이이즈카는 이곳에서 오오토모를 만난다. 잠시 다른 알바를 대신해 근무할 때 마주치는 아야노는 이이즈카에게 산뜻하게 말을 붙이며 이이즈카의 기분을 풀며 친해진다. 이후엔 어색하게나마 알바 회식을 가고, 그곳에서 다른 알바들과 자세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알아간다. 


사실 알바는 생계를 위한 행위이다. 이 요상한 고용 형태는 아직 생계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청년들에게는 애증의 존재이자 상태이다. 이이즈카 같은 청춘들은 어떨 땐 취업에 실패하고 월세를 내기 위해서 급히 알바에 뛰어들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절박함이 인간관계에 의해 더 부드럽고 유연한 조직이 되어 삶의 희망을 준다는 점은 참 기이하다. 


남자 선배는 3년을 알바한 끝에 직장을 잡는다. 그는 제법 활발하고, 사람들과 정을 잘 나누면서도 적당한 때에 술자리에서 빠지는 방법을 아는 그의 모습은 제법 사회인답다. 그런 그의 매너가 점장에게서 배웠는지는 모를 일이고, 이이즈카 역시 그곳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렇듯 인생에 비슷한 시기를 지나는 청춘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애서 아르바이트는 참 독특한 의미를 갖고, 영화는 그 부분을 침착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고통을 나누는 데서 성장이 시작된다


영화는 같은 다리 위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두 장면 모두에서 이이즈카는 어떤 결심을 하는데, 처음의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결심과 비교했을 때 부모님에 연락해 자신의 상황을 알리겠다는 선택은 사실 더 작고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이길 선택하던 이이즈카가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나누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그의 세계가 더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취준생의 고민은 애석하게도 거기서 거기다. 한번 실패한 취준생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다 비슷한 아픔이라도 위로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자신의 고통이 특별하다고 호소하지 않고도 잔잔히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영화. 5월 29일 개봉.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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