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過)함이 남긴 상처
살다 보면 원치 않는 날이 찾아온다.
계획하지 않은 상실, 의도하지 않은 말실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몸의 변화.
그런 날들을 내밀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 모자람이 아니라 바로 '과함'에서 시작됐다는 것.
나쁜 마음이 없었는데..
잘하려고 했는데..
관심 가졌을 뿐인데..
그 선한 의도들은 펄펄 끓는 100도씨 주전자 물처럼 임계치를 넘어
내가 아끼는 것들을 조용히 망가뜨리고 있다.
오늘은 과했던 순간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려 한다.
[화분]
물이 과하면 뿌리가 썩는다
10년을 곁에 두었던 식물을 허망하게 보냈다.
더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에 분갈이를 했다.
마른 흙이 안쓰러워 부어준 물이 도리어 독이 되었다.
쏟아부은 과한 정성이 정작 그 존재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검게 변한 줄기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때로는 멈추는 것이 가장 큰 보살핌이었음을, 텅 빈 화분 앞에서 뒤늦게 배운다.
10년이었는데 버리는 데 삼 초도 걸리지 않았다. 손이 떨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잘 가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적당함을 배운다.
[대화]
말이 과하면 상처를 준다
뜻하지 않은 다툼 끝에는 늘 쏟아내지 말았어야 할 말들의 잔해가 남는다.
내 마음을 증명하고 싶어 덧붙인 설명들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상대에게 깊게 박힌다.
진심은 한 문장이면 충분했을 텐데,
과하게 쌓아 올린 자기 방어는 결국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무너져 내린다.
침묵이 줄 수 있는 고요함을 무시하고 말이라는 욕심으로 망쳐버린 날,
밤잠을 설치며 입술을 깨문다.
긴 문자를 썼다가 다 지웠다. 설명하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고, 내가 왜 그랬는지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보낸 건 단 한 줄이었다.
'오늘 힘들었어. 위로가 필요했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말을 줄이는 것이 관계를 줄이는 게 아니라는 걸,
답장이 왔을 때 알았다.
원치 않는 다툼을 극복하는 법은 더 많은 말이 아니었다.
더 적은 말, 더 오래 생각한 말, 꼭 필요한 말 하나였다.
[몸]
기침을 한다.. 몸살인 것 같다.
몸 역시 과하게 사용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 몸에 고스란히 쌓여 통증으로 터져 나온다.
마음의 속도를 맞추려 몰아붙인 대가는 동백꽃 필 무렵 감기로 돌아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이미 멍들어 있었나 보다.
원치 않는 휴식을 마주하며 깨닫는다.
내가 나를 가장 혹사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적당히 멈추고 쉬어가는 법을 잊은 대가는 생각보다 시리고 씁쓸하다.
몸이 먼저 멈춰 세울 때, 우리는 비로소 앉는다.
일단 눕고 미지근한 물에 꿀을 타서 마시는 것, 오늘 하루를 몸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우리 삶의 적당한 온도를 찾아보자"
물이 과하면 뿌리가 썩고,
말이 과하면 상처를 주고,
몸이 과하면 속이 아프다.
우리는 가끔
관심의 적정량을,
말의 적정량을, 노력의 적정량을. 그걸 몰라서 망가뜨리고,
망가진 흔적에서 배움을 얻는다.
꿀꿀한 기분에 휩싸인 오늘, 나는 마음의 불안감을 조절해 본다.
과해서 넘쳐버린 것들을 덜어내고, 상처 난 자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뿌리가 썩지 않게, 말이 덧나지 않게, 몸이 부서지지 않게.
적당 함이라는 그 어려운 균형을 잡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쓰며 마음을 곱씹는다.
원치 않는 날을 극복하는 법은 거창하지 않았다.
썩은 것은 과감히 버리고 새것을 심는 것. 하고 싶은 말을 반으로 줄이는 것.
더 가기 전에 일단 눕는 것. 그리고 오늘 하루를, 그냥 오늘로 두고
내일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