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회사를 띄워야만 하는. 처절하지만 소리 없는 발버둥
[작가의 말] : 적자의 무게, 그리고 딜레마
연말 결산 시즌이 되면 회계팀의 공기는 무거워집니다. 손익계산서의 맨 아랫줄이 흑자(Black)인지 적자(Red)인지에 따라 회사의 운명은 물론, 직원들의 생계와 성과금까지 요동치기 때문입니다.
경영진은 '흑자'라는 숫자를 만들기 위해 압박하고, 실무자는 원칙과 생존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합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를 다루는 사람은 때로 거짓말의 유혹에 빠집니다.
소설 <라스트 댄스>는 그 차가운 딜레마의 현장을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내야 하는 아쿠아리움'에 빗대어 쓴 이야기입니다. 회계 장부 뒤에 숨겨진 직장인들의 고뇌와,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양심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라스트 댄스>
'뒤집혔다...! 뒤집힌 건가? 하필 지금이라고?'
아쿠아리움 'Color of the Art'는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전시된 물고기들을 보며 놀라워하는 아이들의 소리. 가족들과 친구들이 서로 보고 싶은 물고기를 먼저 보러 가보자며 아웅 대웅 되는 소리. SNS에서 봤던 거보다 더 아름답다며 감탄하는 여인들의 소리. 그래도 이 입장료는 너무 비싼 거 아니냐며 투덜대는 어느 남자의 소리까지 아쿠아리움을 소란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늦은 저녁. 이제는 생명유지장치 LSS(Life Support System)의 펌프 소리와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들만이 소란했던 아쿠아리움의 울림을 비워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덧 새벽 2시, 하필 야간 라운딩을 돌고 있던 이 주임에게 그 모습이 보인 것이다.
'지금 너무 늦은 시간이야. 하지만... 너무 상황이 위급해! 당장 오늘부터 Color of the Art의 AZA(미국 동물원 수족관 협회, 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ums) 인증 심사가 진행될 거야. 그 과정부터 결과까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시간이라고. 우리 아쿠아리움이 글로벌 수족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순간인데. 하필 이때 뒤집히다니! 어떡하지? 아니야. 얘기해야 해. 쫄지 말고! 이 주임. 정신 차려! 빨리 연락하자.'
이 주임은 급히 작업복 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번호를 검색하지 않고, 늘 자신의 통화 내역에 가장 상단에 놓여 있는 김 선배님의 이름을 휴대폰 화면에서 누른 뒤 이름 아래 팝업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 주임... 너 지금 몇 신데 나한테 전화하는 거야? 무슨 일이길래?"
"아... 선배님 주무시고 계신데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다급한 일이라서 연락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아니 도대체 무슨 큰 일이길래 이렇게 목소리까지 떨리냐? 천천히 호흡 좀 정리하고 얘기해봐 봐. 어차피 잠은 다 깼어."
"아. 네. 죄송합니다. 근데 선배님 놀라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제가 잘못 본 거 일 수도 있거든요."
"알았어. 윤아. 얘기해. 다 들어줄게. 응?"
"네, 선배님. 킹오브레드... 말입니다."
"뭐?!"
"지금 전복 직전입니다. 리턴이 안 되고 있습니다. 벨리 업도 무리인 것 같습니다. 당장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내가 얘기했었잖아. 헤드 스탠딩 온 거 같다고 점검해야 된다고 보고했었는데. 아 이런 빌어먹을! 이 주임. 기다리고 있어. 나 지금 바로 출발한다. 완전 전복 왔는지 꼭 체크해."
김 선배는 바로 통화를 끊었다.
'하필 오늘이야. 날이 밝으면 AZA 실사단이 들이닥칠 텐데...!'
김 선배는 잠자리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옷장에 손에 잡히는 대로 티셔츠와 바지를 챙겨 입은 뒤, 롱패딩 하나만 서둘러 걸치고 바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액셀레이터에 발을 올리고 아쿠아리움으로 출발했다. 차선이 너무 어둡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야 다시 라이트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김 선배는 과거 생각에 잠겼다.
"관장님. 긴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뭔가?"
"킹오브레드가 헤드 스탠딩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까지도 아무 문제없었지 않나. 여태까지 킹오브레드에 대해 그런 보고 받은 적도 없어. 전시 가능 등급이라고 나한테 다들 얘기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급성으로 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나 보고 뭐 어떡하라는 소리야? 당장 2주 뒤면 AZA 심사가 진행될 예정인데. 여기서 킹오브레드를 빼라고? 이 봐. 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Color of the Art에 가장 핵심 자산이 뭔가? 킹오브레드야. 슈퍼 레드 아로와나 중에서도 킹 숏바디 급을 보유했다는 게 우리의 정체성이야. 이게 무너지면 우리 아쿠아리움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고."
관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김 팀장. 어떻게든 막아보게. AZA 인증 심사까지만 버텨봐. 예산은 내가 얼마든지 주겠어. 자네... 지금 아쿠아리스트로 몇 년 일했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년 차 되어 갑니다..."
"그래. 자네도 이제 아쿠아리스트 그만하고 큐레이터로 넘어가야 되지 않을까? 잠수복 입고 매일 추운 물속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 때가 왔어. 이제 자네도 백사이드에서 나와서 헤드오피스에서 자네가 추구하는 전시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어? 전공도 미술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관장님. 알겠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AZA 인증 심사까지만 버텨보겠습니다."
"큐레이터는 '전시'를 하는 사람이야. AZA 심사위원들이 보는 건 결국 무엇이겠어? 우리가 규정에 근거해서 수조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관장은 김 선배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그를 돌려보냈다.
김 선배는 잠시나마 자신의 보고를 뭉개버린 관장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끌어올린 것에 대해 스스로를 반성했다. 진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다짐했다.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김 선배에게 더 이상의 밸런스 게임은 없었다. 무조건 킹오브레드는 살아있다고, 아니 설사 죽게 되더라도 살아있도록 할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아쿠아리스트로 10년 더 일할 바에야 1년이라도 큐레이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했다.
아쿠아리움에 도착한 김 선배는 킹오브레드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이 주임의 말 그대로였다. 녀석은 배가 수면을 향하지 못하도록 리턴을 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살아보려고 바등대고 있었다. 그런 킹오브레드의 모습이 자신을 닮은 것은 아닌지 순간 몽상에 빠져들 뻔했지만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김 선배는 서둘러 수족관의 백사이드로 이동한 뒤, 창고 속에 있는 테그스를 끄집어 내 들었다. 의연하게 잠수복을 갈아입고, 호흡을 도와줄 레귤레이터를 장착했다. 테그스를 손에 들고 김 선배는 메인 수조 안으로 침잠했다.
오래된 경력 속에 김 선배의 유영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킹오브레드에게 가까이 간 김 선배는 두 팔로 녀석의 몸통을 감싸 안았다. 녀석은 전혀 도망가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알 수 없는 운명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김 선배는 킹오브레드의 등지느러미 뼈 사이로 날카로운 바늘을 찔러 넣었다. 녀석은 조금 고통스러워하는 듯 보였지만 김 선배의 완력은 그를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바늘로 뚫린 구멍 사이로 테그스 줄을 꿰었다. 그리고 반대편 줄 끝을 수조 위 쪽의 조명레일에 고정했다. 이제 킹오브레드는 리턴하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녀석의 배는 뒤집히려고 해도 뒤집힐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수조에서 밖으로 나온 김 선배는 이 주임을 불렀다.
"내가 얘기하는 데로 수류 모터의 방향을 전부 조정해. 세기는 최대치로 끌어올려."
이 주임은 신속하게 김 선배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둘은 일할 때만큼은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갔다. 김 선배의 디테일한 지시를 받아 수류 모터의 방향을 모두 조정한 결과, 킹오브레드는 누가 봐도 자유롭게 메인 수조를 장악하며 유영하는 킹 숏바디의 위엄. 그 자체였다.
"선배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어요."
"지금 여기서 킹오브레드가 무너지면 우리도 다 무너지는 거야. AZA 인증에 우리 아쿠아리움 직원들의 급여도 달려 있고, 우리에게 투자한 투자자들, 그리고 이 인증 과정까지 관장님이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근데 하필 지금 급성 부레병이라니. 아직 녀석이 죽은 건 아니야. DOS(Dead On Spot) 판정 안 났어! 아가미 움직이고 있단 말이야! 내가 수조 속으로 들어갔을 때 봤지? AZA 인증도 현장 심사만 잘 마치면 돼. 너한테는 책임 물을 일 없으니까 부담 가지지 마. 수류 모터 위치 잘 관리해 주고 테그스 계속 체크해 줘. 이번 일만 마치면 이 주임 키워보고 싶었던 애들. 내가 1순위로 입식 승인해 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이 주임은 순간 생각에 잠겼다.
'내가 키워보고 싶었던 물고기들을 입식시켜 준다고...? 그 말은 결국 이번 일이 잘 넘어가면 큐레이터로 보직을 변경하도록 제안을 받았다는 의미구나... 그래... 선배 너무 오랜 시간 아쿠아리스트로 일해왔지. 우리 아쿠아리움의 원년 멤버였는데 아직 본인만 아쿠아리스트로 남아 있어. 게다가 이명도 점점 심해지시고 건강도 점점 악화되어 가고 계...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 맞아 킹오브레드. 죽은 건 아니야. 살아는 있는 녀석이라고! 녀석은 아직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어. 살아 있으려는 의지가 강해! 그래도 AZA 인증이라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허위의 조작을 하는 것처럼 비친다면... 하지만 이 인증을 받아야만 우리 Color of the Art가 성장해 나갈 수도 있는 게 사실이야. 이것이 어떻게 보면 김 선배가 큐레이터가 될 라스트 댄스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그날의 새벽은 김 선배와 이 주임에게 깊은 생각의 블랙홀을 만들었고, 김 선배와 이 주임은 각자의 휴게실에서 아침이 오는지도 모르는 채 뜬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전 AZA 심사단의 방문 시각이 임박했고, 아쿠아리움의 관장과 경영진들 모두 메인 수조 앞에 모여 정렬된 채로 서 있었다. 관장은 메인 수조 속에 있는 킹오브레드를 바라보고 있었고, 녀석은 관장의 걱정을 비웃기라고 하는 듯 비늘의 색감을 화려하게 뿜어내며 편안하게 유영하고 있었다. 이 주임과 김 선배는 백사이드에서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긴장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AZA 심사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심사단과 경영진의 첫 만남은 메인 수조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들 역시 슈퍼 레드 아로와나, 홍용 중에서 길이는 비록 50cm이지만 체고가 20cm를 초과하는 전 세계에서 보기 힘든 킹 숏바디급인 킹오브레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했다. 킹오브레드의 외형뿐만 아니라 비늘 끝에 새겨진 검붉은 테두리의 발색이 만드는 색감의 조화가 사람들을 전율하게 했다.
"정말 놀랍군요! 이게 바로 킹오브레드! 단순히 돈으로만 따질 수 없는 이 녀석을 아쿠아리움에 전시하는 데 성공하신 관장님의 경영 철학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심사단장 미스터 한. 과한 칭찬이십니다. 저는 오로지 물고기를 사랑하는 어릴 적 마음과 이러한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행복을 나누어 주고 싶은 소망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Color of the Art는 지속가능한 아쿠아리움이 될 수 있도록 전시뿐만 아니라 사회공헌활동에도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관장님 말씀을 들으니 더욱 이 아쿠아리움이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곳을 저희가 심사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히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천천히 둘러보시고, 현장 실사, 서류 실사 모두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필요하신 사항은 우리 경영지원실장에게 요청하시면 됩니다. 물론, 식사는 더욱 완벽히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하하. 관장님 말씀 들으니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감사합니다."
AZA 심사단과 경영진들은 단체 포토 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이미 현장에 도착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은 오늘 Color of the Art의 심사 시작과 과정, 그리고 인증을 받았을 때 Color of the Art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이를 알리는 기사들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리고 있었다. 단체 포토 타임을 마치고 심사단장과 아쿠아리움의 관장은 단독으로 킹오브레드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카메라 플래시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듯이 강렬하고 찬란하게 아쿠아리움을 가득 채웠다.
바로 그때!
팅-!
메인 수조 속에 합사 중인 가오리가 유례없는 카메라 플래시에 놀라 급발진하며 수조 위로 솟아올랐다. 가오리의 꼬리에 있던 톱날 같은 독침은 테그스 줄을 스치고 지나갔고, 킹오브레드를 지탱하던 테그스는 그만 어이없이 끊기고 말았다.
날카로운 파열음은 셔터 소리에 묻히는 바람에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오직 백사이드에서 시각과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김 선배의 귀에만 천둥 같은 울림으로 느껴졌다. 팽팽하던 줄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수조 속의 킹오브레드가 휘청였다. 억지로 세워져 있던 붉은 몸뚱이가 서서히, 아주 서서히 배를 뒤집기 시작했다. 관람객들의 환호성이 의아함으로 바뀌려는 찰나였다.
수조 위 조명에서 매달려 있던 테그스 줄을 점검하고 있던 김 선배는 갑자기 느슨해진 줄을 보고 깜짝 놀랐고, 메인 수조를 바라보니 킹오브레드가 다시 배를 수면 위로 뒤집으려 하는 것이 보였다.
"안 돼! 무슨 일이야!!!"
김 선배는 끊어진 줄을 낚아챘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바닥에 빠른 속도로 낚싯줄이 파고들자 살점이 찢어지며 핏물이 고였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킹오브레드가 뒤집히지 않도록 두 손으로 테그스 줄을 좌우로 흔들어댔다. 최대 출력으로 가동한 강력한 수류 모터의 영향으로 어디로 가버릴지 모르는 킹오브레드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배가 뒤집힐 거 같으면 바로 반대편 줄을 잡아당겼다. 오른쪽으로 뒤집히면 왼손을 당기고, 왼쪽이 뒤집히면 오른손을 당겼다. 그리고 모터에 흐름을 따라 수조 위 조명레일을 따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유리 너머 관람객들과 심사단들은 감탄했다. 킹오브레드가 마치 춤을 추듯 역동적으로 수조를 누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몰랐다. 그 위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피 흘리는 손으로 줄을 잡고, 땀범벅이 되어 처절하게 뛰어다니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킹오브레드의 춤이 아니었다. 김 선배의 라스트 댄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