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목소리로, "Just do it "

지금 이 순간, 내가 꼭 듣고 싶던 말

by 임가영


하루가 멀다 하고 점심 약속이 있는 딸에게 "이번 주 금요일은 수필반 선생님이 한국수필문학상 수상해서 전남 나주에 가야 해." 시간을 비워놓으라는 엄마. 고로 집에 계시는 아빠의 삼시 세끼를 챙기라는 당부의 말이기도 하다.

사실 이날은 청주시문화재단에서 하는 김영하 작가 토크 콘서트가 저녁 7시부터 열리는데 꼭 가보고 싶었던 강연이라 잠시 머뭇하긴 했지만 엄마에게 잘 다녀오시라고 말했다.


새벽 일찌감치 오랜만에 외출을 한 엄마 대신 아침상을 차려 본다. 엄마가 엊저녁 미리 해놓은 고등어조림과 곰국, 냉장고 속 반찬을 꺼내 드리니 다행히 잘 드신다. 아이들과 b는 회사에 가고 백수 3일 차인 나와 인공관절 삽입 수술 후 재활 중인 아빠와 나 단둘이서 집을 지킨다.


아빠가 안방에서 TV를 보고 계시길래 적적하실까 봐 옆에 가서 누우니 슬그머니 거실 소파로 나가신다. 그래서 우린 거실과 안방에서 각각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무얼 볼까 한참 리모컨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외과 의사가 나오는 미드 '굿닥터'를 누워서 긴 베개를 다리 사이에 낀 채 졸다 보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실실 웃기도 하면서... 아빠는 대체 뭘 보시는 시종일관 텅! 텅! 텅 따다 다다 총 쏘는 소리만 계속 난다.


점심때는 왜 이리 빨리 오는 건지, 이래서 중년 여성들이 삼식이 된 남편을 싫어하는 줄 대충 가늠이 갔다.

"아빠 뭐 드실래요? 내가 맛있는 거 사 올까?" 바깥 음식은 내키지 않고, 딸이 차려주는 음식은 못 미더워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난다. "라면이나 끓여 먹자" 난 사실 퇴직 후 엄마에게 배운 된장찌개를 야심 차게 도전해 볼 생각이었으나 아빠는 단호했다. 비록 라면이라도 기깔라게 끓여보자는 각오로 라면 물도 눈 대강 대신 정확히 계량하고 애호박, 파, 마늘, 계란, 버섯, 치즈, 청양 고추를 준비한다.


팔팔 끓는 물에 갖은 야채를 넣고 청양 고추로 매운맛국물을 고소한 치즈로 중화시킨다.

"오우 아주 잘 끓였어!" 이거 참 라면을 끓이고 진국이라는 칭찬을 받으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아빠는 느지막이 라면을 한 그릇 뚝딱하셨고, 학교에서 돌아온 애들을 위해선 군만두로 간식으로 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10분이다. 원래 가기로 했던 김영하 작가 토크 콘서트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엄마는 밤 11시나 돼서야 들어오신다고 하고, 일단 집에 있는 사람들은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니 슬쩍 아빠에게 물어볼까? "아빠 나 요 근처서 좋아하는 작가 북 콘서트 있는데 잠깐 한 시간만 다녀와도 될까?"


내가 기자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그리도 강경하게 반대하던 아빠도 그 기세가 한풀 수그러들었고, 딸이 브런치 작가랍시고 글 쓰며 행복해하는 옆에서 보셔서 일까? 단박에 다녀오라고 하신다.




신이 나서 자동차 페달을 밟는다. 집 근처라고 했지만 사실 토크 콘서트가 열리는 청주 동부창고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 데다 퇴근 시간까지 맞물려 차가 밀린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졌지만 이 조급함마저 누릴 수 있는 여유가 내 안에 생긴 거 같아 스스로 흡족해한다.


3분 늦게 도착한 동부창고 38동 <김영하 작가와 함께 하는 토크 콘서트 -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삶>


무대에는 기자 생활 초창기부터 뵈어 왔던 변광섭 대표님께서 인사말을 하신다. 초창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때부터 뵈어 왔으니 변 대표님과의 세월도 꽤 오래되었다. 숱하게 오갔던 문화제조창과 동부창고인데도 취재기자로서가 아닌 관객으로서 제일 뒷자리에 앉은 기분이 참 오묘하니 새롭다.


참 글도 잘 쓰지만 입담도 좋은 김영하 작가, 실물은 이번이 처음인데 TV에서 볼 때랑 별반 차이가 안 난다. 연세대 공대생이 음악과 수업을 들었던 이야기도, 내게 첫 대입 실패를 안겨줬던 한국예술종합학교(난 한예종 연극과를 8월에 봤다 떨어져 청주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다) 극작가 수업 얘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중 잠시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던 강연 내용 중 하나가 직업별 평균수명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원광대 김종인 교수가 1962년부터 1993년까지 신문 부고란에 실린 사망자들의 직업을 추적 조사한 평균 수명 결과를 소개했는데, 충격적인 건 최하위가 언론인과 작가였다는 점이다.

난 불과 며칠 전까지 언론인을 삶을 살았고, 진짜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데 말이다.


김 작가의 설명대로라면 기자와 작가 모두 책상에 오래 앉아 있고 마감과 독촉에 시달려 엄청난 스트레스에 받는다고 했는데, 이건 팩트다. 정말 안타까운 얘기지만 내가 17년의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허망하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기자 선배들을 셋이나 보기도 했으니까.


여기에 한 술 더하자면 기자들은 엄청난 술자리에 노출돼 있다. 안 마시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냐라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술을 잘 마시는 기자가 취재에 더 용이한 게 사실이다. 아니 사실이라고 못 박기보단 내 경우에는 그랬다. 매일매일 기사 마감시간에 초조해하다 기사 출고 후 먹는 술 한 잔의 기쁨을 말해 무엇하랴.


갑자기 술 얘기로 빠지면 글이 늘어지니, 강연 내용 중 정말 내게 보석같이 다가왔던 핵심 내용을 적어 본다.


1. 미친 듯이 글쓰기
2. 다 쓰고 고친다.
(고치지 않고 일단 써 내려간다. 퇴고는 나중에 해도 된다)
3. 깊이 집중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
4. 우리 내면에 비판자들을 떨쳐내야 한다.
5. 초고를 할 때는 내면의 악마를 잠재우고
미친 듯이 쓴다 (강조!!)
소설가 김영하 토크 콘서트 중에서


작가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다중 정체성의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확고한 직업이 중심이 된 자기 정체성이 인생의 모토를 이뤘다면,

미래는 예술적 자아가 중심이 되어 직업 1, 직업 2, 직업 3을 갖고 살아가는 세대가 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깊은 깨달음,


글 쓰는 작가로 국한 짓지 말고 내가 잘하는 것, 취미로 옆에 두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나를 믿고 자아의 확장성을 염두에 둔 채 나의 앞으로의 50년을 "난 00으로 살 거야"라고 못 박지 말자.


작가는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 마사 그레이엄의 명언으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휠체어를 타고 인천공항에 들어온 아흔이 넘은 무용계의 전설 마사 그레이엄에게

한국 기자가 "무용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자 작은 목소리로 "Just do it "이라고 말한 뒤 유유히 떠났다는 것.


나이키의 광고 문구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

마사 그레이엄이 말한 "Just do it "

소설가 김영하의 목소리로 듣는다.


'그래 내게 꼭 필요한 말이야. 지금 새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 시작한 것보다 더 좋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을 봤는데, 어스름한 밤하늘에 달과 별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