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백수 3일 차, 날 진정한 백수라고 놀리는 13살 사춘기 아들의 도발에 발끈한다.
"왜 이래? 엄마 작가야. 브런치스토리 작가라고."
"작가료는 얼만데?"
"됐거든! *어쩔 TV 얼른 학교나 가지 그래?"
내가 아들을 이렇게나 계산적인 아이로 키웠나 되묻는 순간이다.
우리 모자의 빈정거리는 대화 속 딸이 내게 와 볼에 입을 쪽 맞춘다.
"엄마 언제 또 글 써? 오늘은 몇 시에 올라와? 가끔 내 얘기가 나와서 그런지 너무 재밌더라"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스러운 나의 딸은 자기 핸드폰에 브런치스토리 앱을 깔고 가끔 라이킷도 해주며 내 글을 한 편 한 편 읽고 있었나 보다. 이래서 사람들이 딸이 최고라고 하는구나. 아들은 내가 좀 힘에 부쳐 보이면 가끔 아무 말 없이 날 안아주는 묵직한 든든함은 있어도 지금처럼 필터 없이 마구 떠들어대는 말들로 화를 부른다. 90%는 잘해놓고 말로 망하는 제 아빠를 어쩜 그리 쏙 빼닮았는지... 그에 비해 딸은 매사 다정다감하고 애교가 넘친다. 근데 어쩌다 한 번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얼음공주로 돌변한다. 이건 아마도 날 닮지 않았나 싶다.
'나의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어.'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보고 공감해 줄 사람이 있다면 괜찮아. 뭐가 됐든 계속 쓰는 거야 하며 기분 좋은 다짐을 한다.
나른한 오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다가 한 인간이 이처럼 어릴 때부터 줄곧 우울감을 안고 살 수 있나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주인공의 허무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잠깐 책을 덮었다. 자연스레 핸드폰으로 눈길이 가 만지작만지작거리다 브런치스토리 내 서랍에 통계를 눌러본다. 며칠 전 조회 수 8만 8천을 찍고 진짜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된 양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을 맛본 난, 나흘 뒤 1만 5천 뷰로 떨어지더니 점점 줄어드는 조회 수에 이유는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발행된 글 중 절반 이상은 단지 나의 퇴사에 관한 심정의 변화를 기록한 것일 뿐, 작가라는 이름을 내걸고 세상에 내보이기에는 부끄러운 결과물이었던 거다.
조급해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 진솔한 글을 써보자라고 다짐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인데 나의 처음 그 마음이 갑자기 불어난 조회 수로 코스모스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책을 편다. '인간 실격'을 번역한 김춘미는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이 뒷받침된 진지한 자기 모색의 문학이었다고 표현했다.
일본 근대 문학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자연주의 문학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이 뒷받침된
진지한 자기 모색의 문학이었다는 점에서
이 범주의 사소설들이 지니는 편협성, 평탄함, 범속성 등의
약점이 상쇄될 수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번역한 김춘미의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세계와 현재적 의미]
지금 이 순간 내겐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큰 명제다. 지난날들을 가끔 떠올리며 추억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어릴 적 엄만 철학관에 가서 딸의 사주를 보고 왔다. 수풀林 아름다울 佳 꽃부리英
내 이름 속에 외로움이 가득하다며 이십몇 년 전 30만 원을 주고 '임윤하'라고 이름을 하나 더 지어왔다.
숲 속에 아름다운 꽃이 새벽에 태어났으니 그 어찌 외롭지 않으리오. 많은 이들에게 불리는 윤하로 해야 아이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게 철학관 선생의 설명이었단다. 덧붙여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진 않지만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방송국에서 일할 팔자라고 했다는데. 마흔이 넘으면 돈방석에 앉아 남부러울 게 없고,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탄탄대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 방송국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니 용한 것 같기도 하나 이제 마흔넷인데 돈방석은 언제쯤 앉아보려나? 옛 청주시청 본관 근처 골방이 있는 식당에 가면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 그려진 돈방석에 자주 앉아 보긴 했었지.
지금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팔자나 운명에 대해 믿지 않지만 어릴 적부터 난 가끔씩 딱히 뭐 문제랄 것도 없는데 사무치는 공허함과 슬픔이 밀려와 어쩔 줄 몰라했던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공포 영화나 잔혹극을 잘 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이 과몰입되다 보니 내 일이 아닌데도 몸과 마음이 힘든 거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피해자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이 습자지처럼 스미듯 그대로 전해져 심신이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촉은 또 왜 이렇게 발달한 건지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싸해 취재를 해보면 90% 이상은 맞았고, 이성보다 감성이 풍부한 감성 우뇌형인 편이라 냉철한 판단을 하기까지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촉이 발달해 수상한 냄새를 잘 맞고, 공감각이 좋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인데, 자꾸만 공허함이 밀려오는 이유에 대해 엄마가 이십몇 년 전 철학관에서 들었던 내 이름 때문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윤하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가영을 버릴 수 없어서
지금도 가영으로 살고 있는데,
여전히 문득문득은 반짝이는 별 하나 없이
까만 밤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명상도 하고 산책을 하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다
매번 결론쯤에 다다르는 것은 가끔 찾아오는 공허를 덮어주는 내 특유의 밝음과 긍정으로
내가 먼저 행복하기, 그리고 나의 행복이 내 주변에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
그게 내 삶의 이유.
*어쩔 TV: 어감 자체가 결국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것을 차단함과 동시에 더 이상 듣기 싫다는 의미는 물론 조롱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는 신조어.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