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생활의 버팀목 '문화다이어리'
옥천요 이숙인 작가를 만나다
비 갠 뒤 더욱 화사해진 충북 옥천 시골의 벚꽃길.
자연에 반하고
이숙인 작가에 반하다.
(문화다이어리 취재 노트)
비 온 뒤 먼지가 싹 씻겨 내려가 더욱 빛나는 벚꽃 도로를 달리며 황홀감에 빠져들 무렵 도착한 충북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의 옥천요. 이곳에서 40여 년 동안 전통 장작 가마에 자기를 빚어내는 담월(潭月) 이숙인 명인을 만났다.
예순아홉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한 물레질을 하는 그는 영화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보다 아름다웠다.
이숙인 도예가
청주에는 이미 벚꽃이 다 떨어져 속상했던 차인데 취재차 온 이곳에서 5월 초까지도 꽃망울을 틔우는 벚꽃을 마주하다니.... 몽고메리의 소설 속 ‘빨강 머리 앤’이 자작나무 숲에서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몹시 흥분했던 것처럼, 나도 흡사 그런 상태였다.
벚꽃을 보고 이미 무장해제된 난
그와의 첫 만남임에도 수다쟁이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이런 내가 편하게 느껴져서일까? 금세 우린 친구가 됐다.
숨쉬기조차 힘들어 무작정 차에 올라
하루 종일 운전을 하다 보니 도착한 곳이
경남 하동의 연꽃 마을이었다.
털버덕 바닥에 주저앉아
가만히 연잎을 보고 있노라니
연잎이 좌우로 머릴 계속 흔든다.
왜 이제 온 거냐며 내게 인사를 건네 듯
바람을 음악 삼아 자유롭게 춤을 추는 연잎.
그 모습을 한참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연잎 위에 영롱한 빛이 유리구슬처럼 반짝인다.
둥실둥실 떠있는 물방울이 뒤뚱뒤뚱 기울다가
또 다른 연잎으로
옮겨지고 또다시 옮겨지고…….
더 이상 물 받을 곳이 없어지자
내가 언제 기울였냐는 듯
물을 단번에 훅 쏟아낸다.
그런 뒤 다시 연대를 꼿꼿이 세우고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힘에 부쳐 이제는 그만 살고 싶었던 세상,
힘들면 좌우로 몇 번 흔들다가
훅 쏟아내면 되지.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 있네.
옥천요에 터를 잡고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계속 도자 빚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
가슴을 후벼 팠던 고통도 물레질을 한 시간만큼 무뎌진 걸까?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를 마친 그에게
어떠한 힘든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다만 이런 인고의 세월을 겪어 낸 그의 도자를 가만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