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곰출판, 2021. 정지인 역
지난 일요일 애월도서관에서 책 2권을 빌렸다. 먼저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책. 저자는 혼돈을 맞닥뜨리며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답을 얻고자 그의 생애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과학 기자 다운 세심한 고찰과 역사적 사건을 넘나들며, 흡사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직접 듣는 듯한 문장은 명쾌하기 그지없다. 추리소설? 과학소설? 혹은 자전적 회고록? 이게 도대체 무슨 장르지? 그래서 더 몰입해서 읽게 되는 책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다음 책이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는 글로 글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터득한 바, 다음 책을 대출 기간 내에 반납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읽기를 독려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그러니 아래의 글을 읽는 수고보다는, 책을 직접 읽기를 권한다.
저자는 내가 어리광을 부리며, 지칠 줄 모르고 골목을 누비던 나이인 7살쯤(당시의 우리 나이로는 9살 정도)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본문 p54)라고 묻고, 아버지는 “의미는 없어!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야.”라고 답한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나는 이쯤에서 이미 게임이 끝났음을 느낀다.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본문 p16) 과학자, 정확히는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1981-1931). 저자는 혼돈으로 삶이 휘청일 때, 삶을 관통하는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조던은 수 십 년 걸쳐 일했고, 그 결과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1/5을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했다. 하지만 이렇듯 비범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보이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이 어느 정도 자기기만(긍정적 환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것, 또한 저자는 알게 된다.
잠재적으로 자기 인격에 가해질 공격을 능수능란하게 막아내는 데이비드의 곡예는(본문 p145) 숨 가쁠 정도이며, 손꼽을 만한 사건으로는 스탠퍼드 대학의 창립자인 제인 스탠퍼드 의문의 죽음과 관련된 행보 그리고 독일의 히틀러 보다 앞서서 미국에서 우생학을 실천한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는 1904년 말, 학장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갈아치울 계획으로 학교의 중진 이사들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1905년 초 하와이 여행 중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법원의 판결은 “본 배심원단으로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사람 또는 사람들이 흉악한 의도를 가지고 베이킹소다 병에 집어넣은 스트리크닌으로 사망했다.”라고 했다.(본문 p159) 제인 스탠퍼드를 겨눈 죽음의 초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그 이전의 실패한 독살 시도에도 역시 스트리크닌이 사용되었다. 스트리크닌은 조수웅덩이 틈새로 들어가 버려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장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즐겨 쓰던 독극물이었다.
우생학은 1883년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의 주장으로 인류의 지배자 인종을 선별하고 그 힘을 조작하도록 ‘부적합’한 사람들의 집단을 말살시키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를 제일 먼저 미국으로 들여온 이들 중 하나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히틀러가 세계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을 ‘부적합’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규정하고 말살시키려 했던 바로 그 일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미국에서 먼저 해 낸 것이다. (본문 p181)
데이비드는 여든 살이 되던 해 눈을 감았고, 그는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빠져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며 분기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魚類)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본문 p235-236) 데이비드에게 너무도 소중했던,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그리고 평생을 바쳤던 어류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범주가 되고 말았다. (본문 p242) 데이비드 사후 50년이 지나 생명의 사다리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은 물고기 즉 어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며, 2,500여 종의 물고기를 발견하느라 인생 대부분을 보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영광은 거둬지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되고 여섯 달 뒤, 스탠퍼드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두 학교 모두 학생들과 임직원, 교직원, 졸업생들이 편지와 기사, 온&오프라인 시위로 항의한 결과 내려진 결정이다.’ (본문 p271, 변화에 관한 몇 마디 중)
룰루 밀러는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 (본문 p267)는 글로 책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