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복서 레녹스 루이스>

by 성대진

스피드, 파워, 리치, 스태미나, 동체시력, 운동신경, 작전, 수비능력, 트레이너

복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이렇게나 복싱은 초심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복싱이 쉽다거나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주먹의 교환이라는 단순동작으로만 복싱을 설명하기는 너무나 다양한 변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운과 노화라는 변수, 홈과 원정이라는 변수, 파이트머니라는 다양한 변수까지 개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체량이라는 악마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복서 간의 상성이라는 묘한 변수가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만든 스포츠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이야 복싱 자체가 시들하지만, 1980년대까지 한국인복서의 세계타이틀전은 위성생중계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복서가 출전하지 않더라도 알리 이후 헤비급선수들의 열전은 녹화중계라도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복싱팬들로부터 인기가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복싱의 맛은 묵직한 펀치에서 나오는 일발필도, 그리고 KO가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DNA에는 먼 옛날 원시시대부터 잠복된 싸움DNA가 발현되는 스포츠가 복싱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알리 이후부터 헤비급 타이틀전의 전통은 복싱의 진수가 헤비급에서 나온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재미가 없고 시청자의 반응이 미지근하다면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중계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헤비급의 두 레전드 마이크 타이슨과 레녹스 루이스의 혈투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바로 복싱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핵펀치’라 불렸던 타이슨은 실제로는 수비에도 능하고, 스피드, 맷집 모두 월등한 선수였습니다. 괜히 타이슨이 인간괴수들의 결투장인 헤비급 무대에서 호령을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이슨은 뚜렷한 약점이 있습니다. 단신에 더하여 양손의 리치가 짧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복싱에서 이 두 가지 약점이 얼마나 핸디캡이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는 선수가 바로 레녹스 루이스입니다. 레녹스 루이스는 1988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입니다. 아마레슬링의 기본기와 스피드, 펀치를 모두 구비한 선수입니다. 게다가 그는 장신에 리치도 긴 선수입니다. 타이슨에게는 상성 상 절대 우위의 선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NQmTu8h80k

아마복싱의 DNA가 체화된 루이스는 거리를 두고 고 오일용 해설위원이 즐겨쓰던 ‘스트레이트 같은 잽’에 특화된 선수입니다. 헤드기어를 쓰고 수비를 했던 DNA도 그대로 체화하였습니다. 루이스가 괜히 세계챔피언이 된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프로입문 이후에는 클러치도 지능적으로 하곤 했습니다. 타이슨을 지능적으로 누르면서도 거리를 주지 않고 스트레이트 같은 잽으로 지속적으로 파상공세를 펴는 장면은 루이스의 위력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루이스의 긴 리치입니다. 배구나 농구에서 장신이 장점이듯이, 복싱에서 긴 리치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신체조건입니다. 허영만의 전설적인 만화명작 ‘무당거미’에서 유달리 긴 리치를 강조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먼 거리에서 타격을 가하여 상대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장신 복서의 특권입니다. 루이스는 자신의 강점을 지속적으로 타이슨에게 확인해 줍니다. 타이슨이 루이스를 깨려면 스피드와 펀치력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장신임에도 스피드도 뛰어나고 숏퍼치에도 강합니다. 아마시절에 쌓은 내공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약한 턱이라는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롱런을 누린 세계챔피언이었습니다. 레녹스 루이스의 이러한 위력은 올림픽 3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은 쿠바의 펠릭스 사본도 증명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v1kkFxiru0

레녹스 루이스의 경기를 보면, 신체조건이 복싱에서 어떤 지위를 갖는가, 라는 소박한 질문에 대하여 직관적인 답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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