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복서 홍수환, 그리고 사모라>

by 성대진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특성은 단연 ‘빨리빨리’입니다. 못하는 것은 용서해도 늦는 것은 용서가 안 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그 ‘빨리빨리’가 ‘다이나믹 코리아’를 낳았습니다. 7080시대만 해도 주말 골든타임에 정규방송으로 편성된 프로그램이 프로복싱입니다. 그리고 세계타이틀이라도 걸린 날이라면 근 한달 전부터 요란하게 광고방송을 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세계타이틀은커녕 복싱 자체가 존재감이 없는 현 한국의 상황을 보면 그야말로 다이나믹 코리아의 전형입니다. 그 다이나믹 코리아의 복싱버전이 바로 홍수환입니다.

홍수환은 복싱을 소재로 한 만화나 영화 속의 일발필도(一發必到)의 강펀치의 소지자가 아니었습니다. 연타로 상대를 때려누이는 속사포 펀치의 소유자였습니다. 연타가 능하다는 것은 스피드를 보유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순발력이 출중하다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변칙복싱에도 능합니다. 다이나믹 복서 그 자체가 홍수환이었습니다. 공격에서만 다이나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맷집에서도 다이나믹했습니다. ‘4전 5기의 신화’는 실은 허약한 맷집의 자화상입니다. 복싱 인생 전체에서 다운을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유명우에는 비비기가 민망합니다. ‘강철턱’으로 불렸던 마빈 해글러는 아예 홍수환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복서였습니다. 물론 복싱의 존재감 자체가 희미한 요즘의 현실에서 MZ세대에게 홍수환을 알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iBU4QjB8JE

‘꿩 잡은 게 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홍수환에게는 바로 이 사모라가 매에 해당했습니다. 정확히는 1차전에서의 사모라가 그랬습니다. 2차전은 무려 안방인 한국에서 거행되었음에도 당시 외국인 주심의 이상한 판정으로 홍수환의 친형이 주심에게 항의를 하다가 구속까지 당하는 해프닝이 발생했습니다. 아무튼 ‘1차전 한정’ 홍수환은 이상하게 리딩 펀치가 없었습니다. 멕시코의 ‘KO머신’으로 유명한 사모라였지만, 실제 이 경기에서의 사모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복서였습니다. 원투 레프트 잽에 이어진 라이트 훅이 마치 유행가의 후크처럼 이어진 단순한 복싱을 구사했건만 이상하게 홍수환은 그 패턴에 무너졌습니다. 나중에 배탈이 나고 컨디션이 최악이었노라고 고백을 했지만, 프로복서란 몸이 재산인데 그런 저차원의 변명은 초라한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OJYJm_CVL

홍수환을 변호하자면, 사모라의 몸상태가 의심스럽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 당시의 히스패닉계열 복서들은 근육질로 유달리 스태미나가 좋았습니다. 요즘에야 프로복서들의 도핑이 도입되었지만, 그 시절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도핑이란 것이 아예 무시되기 일수였습니다. 근육질 외에 스피드도 히스패닉과 흑인들이 우월하기는 했지만, 번번히 동양인보다 우월한 성적을 내는 것은 약물도 한몫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당시에도 암암리에 퍼졌습니다. 물론 당시 WBC 등 세계복싱기구를 멕시코 등 히스패닉계열 인물들이 주도했다는 점도 도핑에 관대한 당시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상하게 히스패닉계의 이름에서 ‘ㅈ’ 발음을 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는 ‘ㅈ’ 발음이 아예 없고, 그냥 ‘ㅅ’ 발음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모라, 사라테,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가 맞습니다.

Ihttps://www.youtube.com/watch?v=hRZ-LWRUthU&t=316s

사모라는 같은 멕시코의 사라테와 세기적인 ‘KO머신 대결’을 펼쳤고 처참한 패배였습니다. 홍수환과 일전을 펼칠 때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느린 스피드가 사라테와 일전을 펼칠 때는 두드러졌습니다. 실은 사모라는 상성 상 사라테에게는 어렵습니다. 스피드가 뛰어나고 스트레이트가 위력을 지닌 사라테에게 느린 발과 둔탁한 펀치를 지닌 사모라는 강력한 맷집만으로는 극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모라는 전술한 단조로운 패턴이 있었기에, 상대 복서들은 그 약점을 집요하게 노렸습니다. 다만, 상성은 상대적인 것으로서, 그 엄청난 사라테도 고메스의 강펀치에는 녹아내렸습니다. 체급의 한계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챔피언으로서 도전자들을 줄줄이 KO로 집에 보내던 철권의 소유자 고메스도 산체스의 현란한 펀치는 견딜 수 없었고, 산체스는 교통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 유명한 말잇기가 유행했습니다.

홍수환은 사모라에게 지고,

사모라는 사라테에게 지고,

사라테는 고메스에게 지고,

고메스는 산체스에게 지고,

산체스는 교통사고에 지고.

매거진의 이전글<축구, 그리고 파레토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