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2인자, 그 이름은 임호균>

by 성대진

He did a Maddux!


영어의 용법에서 고유명사인 사람의 이름을 보통명사화하는 용법이 있습니다. 본래 Newton은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정립한 위대한 물리학자인 사람의 이름으로 당연히 고유명사입니다. 그런데 이 Newton은 그 의미가 전이되어 ‘위대한 물리학자’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He becme a Newton.’ 또는 ‘He want to be a Newton.’이라는 용법에서 ‘a Newton’이란 위대한 물리학자라는 보통명사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보통명사화하는 것은 대단한 업적을 쌓았기에 가능합니다.

스포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그가 매덕스했다(He did a Maddux)’라는 의미로 쓰이는 매덕스는 미국프로야구(MLB)에서 본래 정교한 제구력의 대명사격으로 불리는 전직 메이저리거의 이름인데, 미국프로야구는 물론 널리 야구에서 ‘적은 투구로 완봉을 했다.’라는 의미로 그 어의가 전성된 경우입니다. 뉴튼이 위대한 물리학자의 보통명사가 된 것처럼, 매덕스도 정교한 제구력의 보통명사가 된 경우입니다. 매덕스는 9이닝 기준 79구로 완봉승을 거둔 전설적인 투구를 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적은 투구수로 완봉 및 완투를 밥먹듯이 기록했습니다. 매덕스가 대단한 것은 강타자와 거포가 즐비한 MLB에서 언제나 정면승부를 했다는 점입니다. 박찬호, 김병현, 김선우와 같이 한국인 메이저리그에게 모두 홈런을 기록한 배리 본즈와도 정면승부를 했던 레전드 중의 레전드가 매덕스입니다.


그런데 한국프로야구(KBO)에서도 ‘매덕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제구력 마스터’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임호균입니다. 그는 매덕스보다 적은 73구로 80년대를 호령한 해태타이거스 강타선을 1987년에 무력화한 적이 있습니다. 매덕스처럼 강속구가 아님에도 절묘한 제구력으로 완투, 완봉을 밥먹듯이 했던 레전드입니다. 그는 고교, 대학, 그리고 실업야구에서도 제구력 달인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국위선양을 한 최고 수준의 투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a6QD4eQOA&t=409s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왜 그렇게나 대단한 투수라면 선동렬, 최동원, 김시진처럼 명성이 뜨겁지 않은가, 하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항상 2인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삼미슈퍼스타즈에서 1983년에 데뷔를 했는데, 그 해에는 장명부라는 전설이 활약을 했습니다. 당연히 2인자 투수였기에 빛이 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장명부가 싫어해서 1년만 뛰고 롯데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이 우뚝 솟아있었습니다. 최동원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강속구와 폭포수커브, 그리고 화려한 제스처와 불꽃 승부근성으로 무장한 자타공인 롯데자이언츠의 간판인 최동원을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임호균은 제구력 투수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삼진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관중들이 선호하는 호쾌한 삼진쇼는 없었습니다. 타자에게 홈런이 꽃이듯이 투수에게는 호쾌한 삼진이 꽃입니다. 선동렬과 최동원의 멋은 당연히 삼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임호균의 불운이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늦은 나이에 당시로서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시기에 프로야구에 입문을 해서 임호균은 불이익을 안았습니다. 80년대 실업야구선수들은 30전후에 대부분 은퇴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30이 노총각의 기준 나이였고, 실업야구선수의 은퇴상한선 비스므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 애호가들에게까지 임호균의 위업이 폄훼되지는 않습니다. 임호균은 강속구는 없었어도 언제나 타자와 정면승부를 택했습니다. 마치 매덕스처럼! 전설의 73구 완봉승도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합니다. 임호균의 가치는 최근의 야구 트렌드가 스피드야구 일변도로 흐르는 현상에서 역설적으로 더 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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