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 가수의 레전드, 그 이름은 이장희>

by 성대진


영화 ‘고지전’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최전방 애록고지의 벙커에서 병사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입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경제학상으로는 술의 소비활동입니다. 전쟁 중에는 전투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는 제한적인 경제활동과 소비활동도 발생함을 시사합니다. 실제로도 6.25 당시 피난처인 부산의 양조장에서는 조악한 품질의 막소주가 제조되었으며, 인민군 점령지의 양조장에서도 막소주를 비롯하여 각종 주류가 제조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벌어진 무수히 많은 전쟁 중에서 6.25 동란 중에만 주류의 제조가 중단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있습니다.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실록 등 모든 사서는 그렇지 않다고 기록합니다. 난중일기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승전을 하면 술과 음식으로 군졸들을 위무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임진왜란의 와중에도 주류의 제조는 행해졌다고 봅니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했던 그 유명한 ‘이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어 오겠다.’는 말은 중국의 전란 중에도 주류제조가 행해졌음을 증명합니다. 그럼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궁금합니다. 그럴 리가 만무합니다.

당장 장기간에 걸친 우·러전쟁 중에도 제한적이지만, 농업을 비롯하여 각종 경제활동이 행해지고 주류의 제조는 물론 음주가무도 행해지는 것은 레거시 미디어의 뉴스는 물론 개인이 송출하는 각종 유튜브에서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마르크의 걸작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는 전장 중에 음주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베트남전을 생생하게 그린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에서는 아예 음주를 넘어 군수물자인 주류를 블랙마켓에서 팔아먹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나폴레옹의 정복전쟁 중에서 러시아와 프랑스의 전쟁이 배경이 된 헨리 폰다와 오드리 헵번의 명작 ‘전쟁과 평화’에서도 전장에서 음주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전쟁 중의 음주는 동서고금을 가릴 것이 아닙니다.


학창시절에 배운 회소곡(會蘇曲)은 음주가무의 전통을 확인사살합니다. 삼국은 모두 국가차원의 제천행사를 개최하였고, 여기에서 음주가무를 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규보의 ‘국순전’을 비롯하여 정철의 시조 등 다수의 고전작품부터 일제강점기의 문학작품, 그리고 현대시의 거장 조지훈의 술에 대한 명언 등에서 술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나 빈번하기에 한민족이 음주에 심취한 민족이라는 결론이 결코 무리는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음주운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 이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음주에 대하여 관대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반면에 MZ세대에 이르러 지속적으로 주류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트렌드가 아닌가 합니다. 소주의 도수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위스키 등 양주의 소비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아마도 신세대의 술에 대한 가치관이 변한 것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봅니다. MZ세대는 아마도 단군 이래 최초로 세대 전체가 음주를 기피한 세대라 봅니다. 그 이전의 세대, 즉 6070세대만 하더라도 각종 모임에서 술은 ‘영원한 친구’였습니다. 각종 신고식, 신입생 및 신입사원 환영회, 관혼상제를 비롯하여 각종 모임에서 술이 없으면 뭔가 허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중가요에서도 술이 소재로 쓰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반면에 MZ세대가 열광했던 아이돌그룹이나 걸그룹에서 술이 소재가 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Bc5VRLCc5s&list=RDNBc5VRLCc5s&start_radio=1

그런데 6070세대는 통기타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대에 술이 대중가요의 소재로 쓰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이 통기타시대를 대표한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이 바로 그 대표곡입니다. 통기타세대 중에서 생맥주나 소주를 마시면서 통기타 반주에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을 읊조리지 않은 올드보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세대를 대표하는 곡입니다. 세시봉 친구들인 송창식, 윤형주와 동갑내기 친구면서 통기타세대를 대표하는 이장희는 풍운아이기도 합니다. 작곡 및 작사는 물론 음반 프로듀싱에도 능한 팔방미인인 데다가 가수를 그만두고 갑자기 반도패션 지점을 경영하기도 했던 이색 경력이 있는 괴짜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라디오방송국을 경영하는 수완을 보이다가 뜬금없이 ‘울릉도 처사’를 자처하는 기행도 벌였습니다. 음악적 역량을 고려하면 계속 음악 관련 작업을 해도 족할 텐데 늘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는 도전정신의 사나이가 바로 이장희입니다. 어쩌면 이장희는 아직도 청운의 꿈이 가시지 않은 ‘만년청춘’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장희는 이 시대의 천재이자 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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