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안보, 총화단결
1970년대 각급 학교, 관공서, 군대 및 경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표어입니다. 보수우파 영웅 박정희 시대에는 놀랍게도 획일적, 극좌적 조치가 당연시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획일화의 시대’였습니다. 교복, 두발, 혼분식 도시락 등 학교에서의 획일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쓰면 이유를 불문하고 매국이 되었고, 획일적으로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고 배웠습니다. 그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하다못해 쇼무대의 남가수는 양복에 넥타이를 매야 했습니다. 지금도 가수가 쇼무대에서 정장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는 나라는 없지만, 놀랍게도 박정희 시대에는 그런 획일적 옷차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시대의 주말 가요쇼를 보면, 남가수가 양복에 구두를 신고 넥타이를 매고 노래를 부르는 기상천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반공이 시대적 과제였기에, 대통령의 지시에 반하거나 대통령을 비난하면 빨갱이라는 낙인이 당연시되었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풍경이 반공표어, 반공포스터, 반공웅변 등 무수히 많은 반공시리즈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오묘합니다.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기 마련이고, 단점이 있으면 미약하나마 장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기계적인 획일화는 전 국민을 강제적으로 행동과 의식을 획일화하는 폐단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합니다. 공동체 의식의 함양을 넘어 대동단결이라는 효과가 바로 그 긍정적 효과입니다. 먼 훗날 IMF 구제금융 당시의 ‘금모으기 운동’이 그랬고, 2002월드컵 당시의 ‘길거리 응원’이 그 잠재된 DNA가 발현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박정희 정부의 획일화 정책의 소산이 아닌 단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단일민족 DNA의 발현으로 보는 시각이 맞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위기상황에서 똘똘 뭉치는 힘은 단연 한국인이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행주산성에서 백성들의 단결이 그랬고, 의병항쟁, 동학운동에서의 대동단결이 그 증거입니다. 멍석말이하는 그릇된 풍조도 대동단결의 폐단이기는 하지만, 이는 단결이라는 효과의 동전의 양면입니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서양에서 이러한 행동통일은 무척이나 낯선 풍경입니다.
과거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다는 취지로 미국 팝스타로 구성된 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라는 일종의 캠페인송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에서는 노래의 주제나 소재 모두 개인 차원이 우선입니다. ‘가정을 개인의 성(城)’으로 보는 고전적 시각이 바탕이 된 것입니다. 우리 말에서 ‘우리 엄마’라는 것이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서양에서는 ‘나의 엄마’가 기본입니다. 서양에 없는 정(情)이라는 단어는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는 작동하지 아니합니다. ‘나’를 넘어 ‘너’와 ‘우리’가 있기에 비로소 성립하는 단어입니다. 그런 배경이 있기에 송창식의 ‘우리는’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정서로는 송창식의 ‘우리는’을 절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빛이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수 있는 우리는
아주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기나긴 하세월을 기다리어 우리는 만났다
천둥치는 운명처럼 우리는 만났다
오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연인
우리는
바람 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마주 잡은 손끝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송창식의 ‘우리는’에서의 ‘우리’는 꼭 연인만으로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부모, 친구, 이웃, 동창 등 다양한 군집에서도 통용이 되는 신통한 언어입니다. 그 많은 ‘우리’가 소통하고 공감하는 단어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이 꼭 연인으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아무튼 한국인의 강점이자 특징인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진영논리로 으르렁대다가도 국난이 있으면 똘똘 뭉치는 것으로 작동을 하며, 이것은 한국인의 고유한 DNA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당쟁으로, 진영논리로 극한대결을 하다가도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서, 월드컵 16강을 위해서 응원하는 장면에서는 너와 내가 없는 대동단결을 보여줍니다. 물론 최근에는 이러한 의식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중국, 일본과의 항쟁과 갈등 그리고 협력의 과정에서 빛을 발한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0y6vnULMiQ&list=RD90y6vnULMiQ&start_radio=1
송창식은 ‘우리는’ 말고도 자신의 일련의 자작곡에서 보인 발군의 작사 능력이 인상적입니다. 송창식은 전문적으로 문학수업을 쌓거나 시작(時作)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작품 속의 가사가 빼어난 서정시입니다. 물론 음악적으로 작곡이 우월함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노래도 월등하게 잘합니다. 요즘 같았으면 천재 가수로 각광을 받았을 사람입니다. 송창식의 ‘우리는’은 노래 감상 중에 빼어난 서정시의 감상이라는 망외의 선물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