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코커피 Jul 06. 2022

2. 도대체 나에게 맞는 직무가 뭘까?

이것도 광탈하고 저것도 광탈하고

열심히 대학원 진학만 준비해서 일반적인 기업 취업이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여기에 있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와 이력서에 전공과 무관한 경험만 적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현재진행중인 고민에 대하여.


1.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력서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1편)




마케팅이 하고 싶어? 정말?


약 8년 동안 필자의 꿈은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석사 학위도 받지 않고 대학원 석박통합과정을 그만두고 나서 잠시 유학도 준비했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닐 것 같아 TOEFL 성적만 얻고 그만두었다. 이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더 이상 야구 직관만 다니면서 한량처럼 놀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무작정 구직 사이트에 마케팅 인턴을 알아봤다.


삼성 라이온즈 <월간 라클> 콘텐츠와 요기보쇼룸 이벤트 참여 카드뉴스 & 콘텐츠 모니터링 미팅 발표자료


왜 마케팅이냐면... 삼성 라이온즈에서 팬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면서 내가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인턴을 하면 직무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팬 크리에이터 활동은 홍보팀에서 진행하는 것이지만, 지원 공고를 살펴보니 마케팅 직무에서 홍보 콘텐츠 제작을 같이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삼성 라이온즈 마케팅팀은 주로 스페셜 유니폼 제작이나 구장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스폰서와 기업 콜라보 이벤트 등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내가 '마케팅'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은 마케터라는 직군에서 담당하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단지 '그럴 것 같았다'는 것이다. 비전공자에, 과학기술원 출신이라 이공계를 제외한 타 전공에 대해서 사실상 무지한 내가 경영이니 마케팅이니, 홍보니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 리 없었다. 연구원이 아닌 직무로 취업을 결심한 이후부터 내가 과기원 출신이라는 게 얼마나 불리한지 느껴진다. 잘 모르는 타 과의 수업을 들어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진로를 변경할 수 있는 폭이 넓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이점인지 고등학생 때의 나는 당연히 잘 몰랐다. 4년 동안 남들이 열심히 쌓아온 스펙의 발끝만큼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마케팅 직군으로 지원하면서 이력서에 쓴 건 대통령과학장학생이라거나, 연구 인턴십 경험이나 IT 특허 출원, 스타트업 경험 뭐 이런 것뿐이었다. 포트폴리오도 과제로 만들었던 PPT 파일이나 달랑 첨부하고. 게다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강렬하고 간단한 자기소개서는, '그래, 나 정도면 이 정도 자부심 넘치게 써도 되지!' 하는 마음가짐이 보여서 지금 보면 민망할 정도라 구직 사이트에서도 비공개 처리해놨다.


그런데 이렇게 작성해놓은 이력서도 누군가의 흥미를 끌기는 한 건지, 아니면 정말 인력이 급했던지 호텔 마케팅(사실상 영업 느낌) 쪽에서 전화가 왔다.


'이력을 보니 관련 경험이 전혀 없으신데 혹시 호텔에서 일하는 데 특별히 관심이 있으신가요?'

'타 업종에 비해서 급여가 낮은 편이라는 점 알고 지원하셨나요?'

'(계약직인 것을 염두에 두고 지원해 급여에는 큰 관심이 없고 처음부터 배운다는 입장으로 지원했다고 하자)아... 저희는 2년 계약 후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절차인데 그럼 이직을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솔직히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무지한 상태에서 지원했기에 난 정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답했다. 박봉에, 별 관심 없는 정직원 얘기까지. 솔직히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 사회생활 가면을 쓸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나 보다. 이런 내 특성이 서비스직과는 정말 맞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당연히 면접 연락은 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케팅 대행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서류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경험하게 된 첫 중소기업 면접의 인상은, 솔직히 별로 좋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이미 냈는데도 작성할 질문지(전혀 간단하지 않았다)를 주었고, 면접관은 예정된 시간보다 15분 넘게 나를 기다리게 했다. 전날 새벽까지 열심히 읽었던 구직사이트의 부정적인 후기가 떠올랐고, 쓰면서도 여긴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 직무를 위해서 면접에서 이 정도를 요구한다고? 아무리 배우는 입장이라지만...


면접이 시작되었고 질문에는 적절히 답했지만 역시나 겸손하게 뽑아주셨으면 좋겠다는 태도는 나오지 않더라. 그냥 당당하기만 했던 면접은 그렇게 끝났고 합격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일 가르쳐줄 회사를 찾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가고 싶은 회사'와 '하고 싶은 일'을 어느 정도는 구체적으로 정해야 할 것 같았다. 이토록 준비 안 된 나를 면접까지 부를 회사라면, 얼마나 인력이 급하고 체계가 부족한 곳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그런 곳에서 무엇을 배운다 해도 금방 다시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 대기업 인턴을 알아보자!


그렇다. 나름 우등생이었던 버릇을 버리지 못한 나는 눈높이를 한껏 높여서 IT 대기업 인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네이버나 카카오는 기업 채용 사이트가 따로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개발자는 상시 채용 중이었지만 그렇다고 개발자가 되어 취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대학에 와서 코딩을 배우긴 했으나 하루 종일 코딩하며 오류 수정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지는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비전공자로서 전공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IT 대기업의 비개발 직군에 지원해야 했다.


처음으로 지원을 마음먹은 직무는 마케팅 인턴이었다. 마침 인턴 공고가 나와있기도 했고, 체험형 인턴이라 채용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대기업의 문화를 체험하며 업무를 직접 해 볼 수 있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일 것이다. 덕분에 경쟁률도 보나 마나 매우 높을 것이 뻔했고... 나는 난생처음 마케터로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 (있는 거 없는 거 다 넣다 보니 표지 포함 21p가 나왔다.) 한 번 갈아엎었지만 담긴 내용에 사실상 마케팅 관련 내용은 없고 기껏해야 콘텐츠 제작뿐이었으니 서류에서부터 탈락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건 좋아하지만 마케터가 해야 하는 광고 진행이라던지 이런 건 전혀 모르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 일을 따로 공부해 가며 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영상 편집 좀 할 줄 알고, 보기 좋은 이미지 몇 장 만들 줄 아니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정말 안일했다.

지금 생각하니 솔직히 스스로 조금 부끄럽다. 물론 지금도 그 상태에서 특별히 더 발전한 것 같지는 않다.




영상 편집이 언제부터 인턴의 기본 소양이 되었을까


지금까지 체험형 인턴에 총 세 군데 지원했는데, 두 곳은 서류부터 탈락하고 한 곳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 후에 탈락 소식을 담은 다음 편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재밌는 것은, 세 곳 모두 우대사항/지원자격에 영상 콘텐츠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케터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 두 직군은 도무지 본래 직무와 영상 편집 기술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체험형' 인턴이다 보니 인턴이 처리해도 될 만한 작은 업무를 알려주며 홍보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것이 목적인가 싶기도 했다. 뭐 나야 까다로운 지원 자격을 충족하게 되어서 좋지만...(사실시켜준다면 배워서라도 한다는 사람이 널렸을 것이다) 막상 내가 두 번 다 서류부터 떨어진 거 보면 사실 편집을 그렇게 잘할 필요는 없나 싶기도 하고 영상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요즘에는 그렇게 많은가 보다.

Youtube 채널에 올렸던 vlog 영상.

TMI 하나.

나는 어떻게 영상 편집을 시작하게 되었나?

- 최초에는 찍어둔 공연 영상을 보정해서 올려 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때는 거의 색감 보정이나 로고 이미지 넣는 정도밖에 안 했고, 나중에 학교 과제로 간단한 컷 편집을 하고 자막을 넣을 줄 알게 됐다.

-  자신감이 붙어서 학교에서 진행하는 <동계방학 국토 테마여행>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냈고, vlog를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여행 계획을 써서 선정됐다. 그렇게 여행비를 지원받아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이랑  전라도에 다녀왔다! 이 기억은 기록으로 남아 추억이 되었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자취를 시작하고, 연구실에서도 바쁘게 이것저것 배우며 고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그래도 소장만 하기에는 비싼 카메라를 이대로 그냥 두긴 아까워서 브이로그를 찍기 시작했다. 영상 색감을 보정하고, 자막을 달고 썸네일을 만드는 게 전부였지만 나름 오프닝도 예쁘게 만들어보고 영상을 찍고 브이로그를 만들어 내는 것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매주 정해진 요일에 브이로그를 올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정말 별 내용 없는 일상 브이로그인데도 알고리즘을 타고 오신 분들도 있었다. 연구실 브이로그 영상에는 방송국에서 기술 관련 랩실 섭외 문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비록 댓글을 발견했을 땐 내가 휴학을 한 지 한참 뒤였지만...




취준은 탈락의 연속이다


마케팅 인턴에 서류부터 탈락하고 나니까 솔직히 인턴을 못 하는 건 그리 억울하지 않은데 기껏 과제랍시고 만들었더니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내 콘텐츠와 거기 들인 내 시간이 조금 서글퍼지긴 했다. 굳이 이런 과제를 내라고 해야 했을까? 싶기도 하고... 과제는 SNS 채널에 업로드할 콘텐츠 기획안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디자인 시안을 반드시 포함해야 했다. 뽑히고 싶으면 열심히 만들어오라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열심히 만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포트폴리오 만들기, 아이디어로 씨름하는 기획안 짜기, 그냥 단순해 보여도 이것저것 수정하면서 열나게 고민한 콘텐츠로 며칠 동안 밤을 정신없이 새웠다. 디자인은 아마 다들 잘 해왔을 테고, 기획안에서 얼마나 마케팅을 모르는지가 훤히 보였던 게 아닐까 싶기는 하다. (솔직히 이 기업 SNS 채널에 포스트가 꾸준히 올라오기는 하나 별로 소비자들이 팔로우할 만한 재미있는 콘텐츠는 안 보였다. 앞으로 새 인턴 근무 기간 동안 어떻게 새로운 시도를 할지는 궁금하긴 하다. 딱히 찾아보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가 기획했던 콘텐츠의 디자인 시안. 콘셉트는 MBTI + 장마


사실, 고백하자면 브런치 글쓰기는 인턴 스펙에 하나라도 더 넣어 보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글을 막 써 내려가는 게 나름 재미있으며, 나는 아무래도 말을 줄이는 데에는 재능이 없고,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은 사람이었나 싶어 스스로 좀 놀랐다. 최근 계속해서 생소한 직무의 인턴에 지원하며 '취업'이나 관심 있는 특정 직무를 키워드로 브런치에 글을 검색하니 수많은 주니어 / 시니어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토록 유익한 정보성 콘텐츠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아닌 26세 무직 백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분들이 있다니.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입학 안내 자료에 실렸던 신입생 합격 수기


TMI 두 번째. 아주 어렸을 때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동네 어른들이 저 집 애기는 맨날 놀러 와서 혼자 책을 본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간단한 문법은 잘 틀리지 않고, 글도 잘 쓰는 편이어서 종종 상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각종 발명대회에서 수상했던 경험을 살려서 한국발명진흥회에서 발간한 발명교육 수기 공모전 수상도 해 보고, 대학 입학 후 비교적 장벽이 낮은 신입생 합격 수기집에도 실린 적이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포트폴리오에 적어서 '블로그 콘텐츠도 잘 쓸 수 있어요!' 라고 녹여내고 싶었는데,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초~중학교 때는 나름 블로그 리뷰 체험단 서포터즈 같은 것도 했었는데, 지금 보면 너무 초보적인 수준이라 그걸 들고 오기는 좀 그렇더랬다. 현재 네이버 블로그는 그저 편한 공간으로 쓰고 싶어 내 마음대로 쓰고 있다.)


혹시 네이버 카페 <이공계의 별>을 아시는 분이라면, 1~2년 정도 나름 재학생으로서 자기소개서 무료 첨삭을 진행했던 내 닉네임을 알아보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지인의 자기소개서도 봐준 적이 있는데, 200만 원짜리 자소서 컨설팅보다 나에게 받은 도움이 더 컸다고 말해주셨을 정도로 나름대로 대입 자소서 첨삭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이었다). 나도 입시를 준비할 때는 정말 고치고 고치면서도 괜찮을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대학교에서 무엇을 원하는지가 금방 보였었는데, 취업을 준비하는 지금은 다시 입시생의 마음이 되었다. 면접관은 문항에서 도대체 나의 어떤 점을 보고 싶은 것인지, 그 부분을 어필하기 위해서 이렇게 작성해도 되는지 조금 혼란스럽다. 게다가 최근에 지원한 인턴 모두 글자 수 제한조차 없어서 내가 정말 이렇게 디테일을 남발해도 되는 걸까 싶었던 것들도 있고, 나름 핵심만 적는다고 적었는데 글자 수가 너무 많더라. (그래도 솔직히 읽기 쉽게 적은 것 같은데...)


세 번째 인턴 이력서를 내면서, 내가 낸 아이디어가 꽤 마음에 들었고 이 직무와 이 부서에 내가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꼭 합격해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잘 안 되더라도 이 직무에 대해 좀 더 공부해서 프로젝트를 경험해보고 싶다. 어떤 직무인지, 아직은 비밀!


무엇도 큰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일상과 인스턴트 행복에서 벗어나서 다시 한번 긴 미래를 그릴 수 있기를.


<맨땅에 헤딩하는 취준일기> 3편으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력서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