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코커피 Jul 13. 2022

3. 모두가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한다

실무교육은 학원에서 받아야 하나요?

무턱대고 여기저기 기웃대던 야매 취준생. 운이 좋게 서류는 합격했지만 첫 면접에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고 말았다. 과스펙 시대, 최소 기업 인턴은 해 본 경력직 신입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무스펙 인턴 도전은 너무 무모했나 보다. 이미 대학을 졸업해 인턴 기회도 제한된 나는 어떻게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할까?


1.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력서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1편)

2. 도대체 나에게 맞는 직무가 뭘까? (2편)




초보는 어디서 경험을 쌓죠?


이공계 출신이었던 나는 취업난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렇게 채용 공고가 많은데, 내가 파고들 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왜 문과생들이 전공과 관계없이 마케팅/전략기획/영업/HR 등 다양한 분야로 수십 개의 지원서를 쓰고 면접 준비에 사활을 거는지 이제야 알겠다. 내가 학계에 더 익숙한 탓인지는 몰라도 제로베이스 상태로 학계에 입문하는 것이 똑같은 상황에서 사회로 뛰어드는 것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다. 석사 졸업 후 취직하거나, 개발자로 취직한 동기들 소식도 가끔씩 들려오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니 나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출처: 데이터솜 (http://www.datasom.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6)


두 번의 서류 불합 이후 세 번째로 지원한 직무는 IT 서비스 기획자였다. 프로덕트 매니저(PM)이라고도 부르는 이 직무에 대해서, 지원 공고를 보기 전까지는 솔직히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기업에 대해서 알아볼수록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기업에서 떨어지더라도 IT 서비스 기획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 소속도 없는 백수인 내가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구할 것인가?


대부분의 서비스 기획자 채용 공고는 3년 이상의 경력직, 그러니까 이미 직무를 잘 이해하고 있고 실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아무리 글로, 영상으로 PM에 대해 이해해보려 해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서비스 기획을 알기 위해서는 기획을 해 봐야 한다'는데 생 초짜에게 기획을 할 기회를 주는 곳이 있기는 한가? 게다가 졸업생은 지원조차 불가능한 인턴이나 대외활동도 많았다. 적어도 연구실 인턴은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기회가 많이 열려있는 편이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취업준비는 정말 치열한 이들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겠지만,

무언가를 알게 될 때마다 새로운 벽이 존재함을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기업은 교육을 안 하고, 실무자는 강의로 돈을 벌고


각종 포털에 서비스 기획, PM 등에 대해 검색하니 인스타그램에 광고가 뜨기 시작했다. <PM 부트캠프>. 직무와 관련된 교육을 이수하고 제출한 과제들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현업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교육이 끝나면 기업에 실습을 나가 실무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無경력에서 시작해도 4개월 만에 곧바로 취업이 가능한 주니어의 역량을 기를 수 있다'는 것.


취업을 위한 배움에 투자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황을 약간은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업 입장에서야 신입을 뽑아 교육할 여유가 없다지만 정작 시니어들은 사설 교육기관에서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부가수입까지 얻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지 않은가. 내가 너무 세상을 몰랐던 걸까? '취업사관학교'에서 기업에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해내고, 기업은 비교적 손쉽게 필요한 인력을 구한다. 모두에게 윈윈인 걸까? 기업의 실무교육에 대한 부담을 수강생들에게 전가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인가?


출처: 제로베이스 PM스쿨 (https://zero-base.co.kr/category_biz_camp/school_PM)


같은 교육을 받더라도 선택에 따라 납부 금액이 달라지는 곳도 있었다. '책임지고 취업시키겠다'는 포부가 보이는 소득 공유 납부의 경우, 계약 연봉 3,000만 원 이상의 직장에 취업하게 된다면 600만 원 이상을 수강료로 납부해야 한다. 당장 수중에 없는 돈을 미래의 내가 지불해야 하는 방식은 성격상 그리 구미가 당기지는 않지만, 분명 누군가는 저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결국 취업의 기회까지 돈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설 교육보다 비싼 국비교육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던 버릇 때문인지, 기업에서 신입을 뽑지 않기 때문에 직무교육을 들어야 하는 현 상황이 다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나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필요했다. 현재 수입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교육비를 줄여보고자 국비지원과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IT산업과 관련된 직무는 국민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아 수강료를 100% 지원받을 수 있었다. 수강료는 두 눈을 의심케 할 만큼 비쌌다.


출처: 고용노동부 직업훈련포털 HRD-Net


사설 교육기관과 별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훈련 과정이 900만 원이 넘는다고? 내 돈은 아니지만 이 교육과정이 정말 이만큼의 값어치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한 달에 1~2년 차 직장인의 월급을 지불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그저 무료라는 이유로 신청하기에는 내가 나랏돈 까먹는 일에 기여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런 건 장학금까지 받아놓고 이공계를 떠나는 것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 나랏돈 걱정할 때인가, 한 푼이라도 깎아 준다면 뭔들 못 할 텐가 싶기도 하지만 국민내일배움카드 발급이 완료되었음에도 선뜻 신청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만약을 위해 신청은 해야겠지만, 그 사이에 어떻게든 인턴 기회라도 잡아서 실무를 경험할 기회를 더 찾아보기로 했다.




무스펙이 어떻게 서류 합격했는데?


물론 나도 아무 근거 없이 서비스 기획에 도전한 것은 아니다. 1편에서도 밝힌 적 있지만, 고교시절 <YIP 청소년 발명가 프로그램>을 통해서 2건의 특허를 출원해서 등록한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모두 정보통신 분야의 특허였다. 이 경험을 통해 신입생 때 교내 스타트업에 조인하여 특허출원 업무를 담당했었다. 창업자가 동시 진행하던 다른 사업에 집중하기로 하고, 나도 당시 함께하던 사업 아이템에 미련을 버리면서 짧게 마무리되긴 했지만 2건의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이 2건은 결국 등록은 못 했다. 더 이상 투자금을 얻어올 사람이 없고 변리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특허 내용을 거절 이유에 맞게 수정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내가 특허로 출원했던 아이디어 4가지를 아래에 소개해 본다.

KIPRIS(특허정보 검색 서비스)에서 발명의 명칭을 검색하면 특허명세서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1) SwiPLUS : 지문 입력 방향 및 손가락의 종류를 이용한 화면 잠금 기능을 가지는 이동 통신 단말기 (2014)


첫 번째 아이디어는 현재의 지문인식 방법은 보안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셀로판테이프를 이용해 손쉽게 지문을 채취하고 지문을 복제하여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는 영상을 보고 나서 복제 지문에 대응할 더 강력한 보안 방법을 고민했고, 지문의 '입력 방향'을 암호화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매우 기초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당시 그렸던 앱 화면들이 서비스 기획에서 말하는 '와이어프레임'과 유사하다.


2014 YIP 모집요강 중 발췌


당시 아이디어 제안서에 첨부했던 초기 도면


   SwiPLUS는 단순히 지문을 암호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문을 입력하는 방식을 암호화하여 지문이 복제되더라도 지문 입력 방식인 '지문 패턴 암호'를 알지 못하면 잠금을 해제할 수 없도록 기존의 지문인식에서 보안성을 더욱 강화한 아이디어이다. 기존에 크루셜텍에서 패턴이나 비밀번호 입력과 지문인식을 결합한 솔루션을 제시한 바 있지만, 이 아이디어는 단순히 지문인식과 기존 잠금 방식을 결합하는 것이 아닌 지문 입력 방식 자체가 암호로 쓰일 수 있도록 하여 보안성을 강화하였다.


스마트폰에 지문인식 잠금 방식이 도입된 직후, 국내에서 출시된 스마트폰 중에서는 현재 쓰이는 에리어 방식(지문을 센서에 올려서 인식) 외에 스와이프 방식(지문을 센서 위로 문질러서 인식)을 도입한 제품이 다수 있었고, 내 아이디어는 스와이프 방식의 지문인식 센서를 통해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우려(?)와는 달현재 스마트폰 지문인식 방식은 에리어 방식으로 통일되다시피 하였고 사람들은 여전히 지문 하나로 잠금을 해제한다. 이 아이디어는 특허등록료 납부를 포기하고 현재는 권리가 소멸된 상태.



2) 스마트 오답노트 : 오답 및 문제 분석 정보의 재가공을 통한 맞춤형 학습 서비스 방법 (2015)


두 번째 아이디어는 빅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오답노트 서비스였다. 요새는  'AI'나 '데이터 분석' 등의 키워드가 유행이지만 당시에는 IoT나 빅 데이터가 핫한 키워드였다. (중간에 VR, 증강현실 등의 유행이 있었다.) 청소년과 관련하여 활용할 수 있는 빅 데이터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EBSi에서 자주 사용하던 문제은행 서비스가 생각났고, 문제를 분석한 정보와 그 문제를 푼 사용자의 오답 이유 정보가 빅 데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스마트 오답노트+맞춤형 학습 서비스를 고안하게 되었다.


2015 YIP 모집요강 중 발췌


초기 도면. 거의 수정되지 않고 특허명세서에도 그대로 포함되었다


   이 아이디어의 목적은 틀린 문제를 저장하고 분석하여 약점을 파악하고, 문제풀이에 필요한 정보를 문제집·참고서 분석 및 재가공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학습자가 출제범위/문제 유형에 따른 자신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효과적인 맞춤형 학습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가 e-book으로 출판된 문제집·참고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본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소비자는 대규모의 정보 분석 및 제공을 통해 종이책을 구입할 때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해설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맞춤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요즘의 스마트 학습 서비스는 어떤지 찾아보니 아직 이 정도로 고도화된 오답노트 서비스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지금(2022년)은 다양한 목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이 범람하고, 뭐든 자동화하고 데이터화하여 분석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이렇게 모두의 생활에 자리 잡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서비스 기획이란 걸 알았다면 지금의 내가 좀 덜 고생할 텐데, 그땐 이런 서비스를 만들려면 개발자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2년간 특허 출원을 위해 공부하면서 얻은 것들:

선행기술조사 (특허명세서 읽고 발명의 내용 파악하기)

기존 발명과 차별화될 수 있도록 발명 아이디어 발전시키기

발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도면(웹/앱 화면 및 시스템 구조) 작성하기

발명의 세부 내용을 청구항과 특허명세서로 작성하기


3) & 4) 개인 연주자의 합주 연습을 위한 악기용 노래방 : 음원과 동기화되는 동영상을 편집하는 방법, 동영상 URL을 사용한 합주 동영상 생성 방법 (2017)


세 번째 아이디어는 창업자 선배가 고안한 것으로, 밴드부 활동을 하면서 꼭 다 함께 모이지 않아도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듣고 내 연주를 맞춰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니즈에서 출발했다. 한 가지 서비스에서 사용할 여러 기술들을 각각 특허로 출원하기 위해서 총 4건의 특허를 출원했는데, 나는 합류하기 전 이미 고안하고 있던 기술 관련 알고리즘 외에 2건을 주로 담당했었다. 특허로 출원할 내용이 완벽히 정해진 상황이 아니라서 아이디어 중에서 어떤 부분들을 개별 특허로 출원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나서 청구항을 나누고 알고리즘과 도면을 제작했다.


음원과 동기화되는 동영상을 편집하는 방법 (출원번호 10-2017-0001583)
동영상 URL을 사용한 합주 동영상 생성 방법 (출원번호 10-2017-0001585)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일에 개발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문서로 작성하는 일에 자신이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적절한 직무가 있다는 것을 졸업 전에 알았다면 좀 더 일찍 기획자로서 일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8-20세의 나는 분명 또래보다 앞서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왠지 몇 발자국 뒤처져 있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서비스 기획이라는 직무는 대체로 포트폴리오를 요구한다. 단순히 직무 역량을 기르는 것을 넘어서 그 과정 중에 나 자신을 브랜딩 하기까지 해야 하는 이 피로함을 견뎌야 한다니. 시작도 전에 질리려고 한다. 가끔은 인생을 살아내기가 힘들다는 것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니 계속 부딪히고 깨지면서 어떻게든 나아가 보련다.


<맨땅에 헤딩하는 취준일기> 4편으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 도대체 나에게 맞는 직무가 뭘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