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힘이 되는가?
“다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예요?”
몇 년 전, 함께 마케팅 스터디를 했던 인원들끼리 엠티를 갔을 때, 한 명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고, 더 일찍 취업 준비를 시작하지 않은 것도 나중에 꽤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제치고 나는 가장 후회되는 일을 하나 찾아냈다. 경험한 만큼 글로 남기지 않은 것. 나는 그게 가장 후회되었다.
인생을 살다 보니 그때에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치기 어린 과거의 일기들을 보면 낯부끄럽기도 하지만, 귀엽기도 하다. 취업이나 대입이나 그 과정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아득한 터널을 지나는 것 같다가도, 끝나자마자 잊어버린다. 인생의 다음 퀘스트는 늘 녹록지 않다. 기억이 증발하는 기화 지점에는 늘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있다.
나는 정말 글을 좋아했던 것 같다. 스무 살 초반에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나 같은 성향은 머리에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 순간을 포착하지 않으면 쉽게 날아가버리고 만다. 대학교 시절에는 시간이 많아 그 모든 생각의 발원들에 깊숙이 관여하곤 했다. 파고들수록 온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신의 존재, 사회의 부조리, 사람의 마음 같은 것들에 홀홀 정신이 팔렸다. 판다는 일은 근본적으로 교환의 속성을 띤다. 정신을 팔아 글감을, 직관을, 새로운 감각들을 차곡차곡 샀다.
난 그걸 발행하고 싶었다. 글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고 싶었다. 시작부터 덜컥 나와 계약해 주는 출판사는 없을 테니 고생하더라도 내가 직접 시도해 볼 수 있는 독립잡지면 어떨까 했다. 순진한 마음으로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다는 설명회며 컨퍼런스며 지칠 줄 모르고 다녔다. 다들 잡지를 만드는 일은, 혹은 책을 내는 일은 정말 돈이 안 된다고 했다. 종이책은 사양산업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정말 좋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정말 멋졌다.
그런데 자꾸 자신이 없어졌다. 좋아하는 일로 직업을 삼고 싶은데 그 일은 돈이 안 된다고 하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멀리 서지만 내가 봤던 무수한 작가들은 진정 소박한 삶에도 행복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대기업에 가겠다며, 벌써부터 자격증을 따고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근거리의 사람들은 내 조급함을 자극했다.
(작가의 삶이란 정말 다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미래를 가난하게 담보 잡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나 멋진 글을 쓰는 사람들도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아마추어적 로거(Logger)였던 나는 용기가 점점 사라졌다.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었지만, 시간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점점 쓰지 않았다. 급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과제들을 쳐내느라 바빴다. 삶의 일부가 휘발되었다.
최근 젠슨 황은 한 인터뷰에서 무지의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어느 누구에게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지함’에는 엄청난 힘이 있거든요. 제가 무지하지 않았다면 엔비디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엠티에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너무 좋아해서 너무 많이 알게 되었던 게,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방향을 선택하지 않은 내가 떠올랐다. 좀 더 무지했으면 달랐으려나. 당시의 나는 안전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나의 선택은 결국 내가 된다. 종이뭉치 같은 건 사양산업이라는 관점에 복잡한 보험 계약서처럼 손쉽게 동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결국 남의 돈을 벌어오는 일 중에 너절하지 않은 일이란 없다는 것을. 모든 일에는 각기 다른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결국 일은 내 삶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무지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에 인생을 쏟을 수 있다는 건 축복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시간이 지나 종이잡지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같은 형태로 부활한 것 같다. 나의 알고리즘에 한해서인지 모르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잡지 같은 큐레이션 콘텐츠를 발행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정말로 ’좋아요’ 한다. 글의 생산자가 아니었던 무수한, 혹은 게으른 날들의 나는 무지한 마음으로 읽는 행위를 즐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지만, 나는 또다시 같은 걸 갈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써내려가는 삶.
자세히 알고 싶지 않더라도 세상 물정에는 점점 밝아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살아남는다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글의 세계에 푹 빠진다는 것은 박완서, 톨스토이, 세례요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한 축에서 거닌다는 뜻이다. 닿을 수 없는 그들 속에서 영원히 무지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원히 알고 싶은 게 남아 있다는 건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