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서지는 깊은 밤
미쳐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에 내가 있었다. 발목에는 밧줄이 묶여 있었다. 밧줄이 나를 묶기 위한 것인지 떠내려가지 않게 잡아주는 것인지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저 물결대로 떠 있을 뿐이었다.
나와 남편은 항상 같이 잠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잠의 세계로 넘어가는 발걸음은 같지 않았다. 낮잠 자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 그때부터 남편의 발걸음은 나보다 빨랐다. 그렇게 바다 위를 스티로폼처럼 부유하고
있을 때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바다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다에 바닥은 없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깊이 내려갈 수 없다. 깊은 바다 그 어디에도 빛과 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물에 잠겨 제 기능을 잃었다. 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 울음소리가 바다에 삼켜져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베갯잇에만 어름어름 물기가 퍼졌다.
7년 전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우울증은 나를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갔다. 얼마나 깊은 곳까지 내려왔는지 가늠 할 수 없었다. 난 심연의 깊이에서 스스로 다시는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늦은 밤 소용돌이 속에 내가 홀로 있다.
언제나 궁금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쩌다가 여기 버려졌는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7년 전부터 지금까지 답을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답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은 나를 더 깊은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숨은 쉴 수 없었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삶의 경계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초반 1~2년은 이렇다 할 패턴 없이 매번 나빴다. 하지만 그 이후 우울증은 패턴을 갖기 시작했다. 상승곡선을 타고 기분이 꽤 좋아지고 있었다. 활력도 의지도 예전만치(예전이 어땠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추락이 시작됐다. 추락의 계기는 있지만 나는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있었으나 없었다. 무기력하게 떨어졌다. 그 끝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다시 끌어올려지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주기는 일정치 않았다. 길게 좋았다가 짧게 나빴고, 짧게 좋았다가 길게 나빴다. 친절한 예보는 없었다.
어느덧 미래 계획은 의미가 없었다. 미래의 내 존재의 유무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계획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상승곡선은 꽤 오래 유지되고 있었고 남편과 바다가 보이는 빨간 지붕의 집으로 이사 가고 싶었다. 마당에 평상도 두고 싶었다. 분명 나는 괜찮았다. 그러나 지금 빠르게 내려 꽂히고 있다.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다시 한번 좌절했다.
내 안의 경보음을 제외한 모든 것은 짙고 두꺼운 담요로 덮였다. 빛도 소리도 잠잠했다. 남편이 곤히
자고 있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남편이 잠에서 깨는 건 곤란하다. 나는 내가 왜 울고 있는지 모른다. 그에게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침실을 나와 테이블에 앉았다. 거기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줄을 맞춰 쓰는 건 지금은 사치였다. 빈 곳 여기저기 글을 토해냈다. 때로는 문장이 완성되지도 못한 채 내던져져 있었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쓰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속을 게워냈다. 마치 전력질주를 끝낸 듯 숨을 돌렸다가 잔잔해졌다.
내가 배출한 것을 보고 싶었다. 이내 고요해진 마음을 다시 뒤집을 의도 따윈 없지만 지금은 그 실체를 봐야 했다. 지금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경보음이 울렸다. 왱왱. 더 깊은 소용돌이를 경고하고 있었다. 마치 몸 안까지 경보음의 진동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나를 흔드는 경보음이 두려웠지만 내 의사와 관계없이 탑승하게 된 롤러코스터에서 내리고 싶었다. 롤러코스터는 올라갔다-내려갔다 반복하며 끊임없이 인생을 좀먹었다. 정점에서 떨어지는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고통에 몸부림쳐도 또 그다음이 어김없이 나를덮쳤다. 너울은 모든 걸 휩쓸고 부수고 가버렸다. 그 후에는 산산이 부서진 미래의 잔해와 폐허 속에서 한참 무기력했다. 하지만 이제 고통도 슬픔도 지겨웠다.나는너무 지쳤다. 나는 살고 싶다. 다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손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았다.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잘 봐야 한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노트를 들어 찬찬히 읽고 다시 한번 읽었다. 거기에는 나를 혐오하는 내가 있었다. 서릿발처럼 너무나시리고 강했다. 소용돌이는 없었다. 삶을 위협하는 무엇도 없었다. 경보음은 허상이었다. 나는 살고 싶고 또 스스로를 죽이고 싶다. 어려운 감정이었다. 이질적이게느껴졌다. 나와 내가 다른 나.
내가 나를 혐오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하다고 해서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앎과 모름의 그 사이 어딘 가에 있었다. 안다고 하기에는 정확히 몰랐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어느 정도 알았다. 그 애매모호함이 이 사실을 외면하게 했다.
어느새 눈물이 그쳤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감정의 폭풍이 막을 내렸다. 대게, 이런 감정의 폭풍은 30분을 전후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 시간은 마치 억겁의 시간과 같았다. 늘어져 있던 시간이 제 리듬을 찾았다. 조금 전보다 더 또렷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꾸준히 다니며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더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할 가치가 있어?’
마음에 벼락같은 울림이 퍼졌다. 산사태처럼 다시 한번 무너졌다. 잠시 테이블에 엎드렸다. 나를 짓누르는 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나의 존재의 가치를 설명하지 못했다. 지금도 망설이고, 오히려 스스로에게 재차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다시금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비죽비죽.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툭! 눈물 한 방울이 속도 모르고 발 등 위로 떨어졌다. 차가웠다. 나는 살아있다. 그것 이상으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건 달랐다.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왜 이토록 아파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뿌리를 찾아야 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다시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격정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