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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17. 2023

네 살의 세계, 손톱을 깎자






하원하는 아이 얼굴에 환한 미소보다 생채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양육자라면 다들 그럴 것이다. 반가움이 의아함으로 전환하는 것은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선생님은 연신 죄송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럴 수 있다, 괜찮다. 정말이다. 얕게 할퀸 상처는 하루면 거의 사라지는 정도다. 세 번 정도 되었을 때 상대 양육자에게서 사과의 메시지가 왔다. 그럴 수 있다. 사실 언제든 그럴 수 있다. 우리 아이도 친구들에게 언제나 그럴 수 있고 사과의 역할이 언제든 내 몫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상처 하나 없이 그러니까 흉터 없는 아이로 키울 생각은 없다. 나와의 관계에서도 아이는 넘어지고 좌절한다. 나는 제법 단호하려고 애쓰는 편이라 아이에게 언제나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네 살의 세계를 이해하는 건 무지 어렵다. 자기 안의 충돌과 좌절과 어쩌지 못하는 에너지를 짜증과 분노로 터트리는 날도 많다. 양보와 배려나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이해보다 “내가!” 또는 “내 거!”가 먼저인 시절, 그런 네 살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인이도 결코 얌전한 아이는 아니라서 친구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늘 가르치지만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해 주리라 믿지도 않는다. 아무튼 네 살은 그렇다.


그러면 나는 어째야 하나? 이해하는 마음과 속상한 마음은 때때로 다르게 흘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 마치 서로 꼬옥 안아주듯 손톱을 깎는다. 아이들의 손톱은 무척 얇은데도 이런 손톱으로도 충분히 생채기가 난다는 것을,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아이의 손톱을 최대한 바짝 자르고 부드럽게 만드는 것, 네일파일로 손톱 곳곳을 여러 번 쓱쓱 밀고 갈아낸다. 엄지부터 새끼까지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날카로운 곳은 없는지 여러 번 만지고서야 끝이 난다. 발톱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이 시간을 또깡또깡이라 부른다. 마음을 분명하게 자를 순 없지만 혹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기를. 정성과 다정을 다하는 시간, 언제든 그럴 수 있다고 믿고, 흘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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