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할머니를 떠올리면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왔어'라며 인사해 줄 것 같은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이지만
기억 속의 우리 할머니는 회사를 운영하시고 키워나가신 분이라 그런지 의례 생각하는 할머니들과는 달랐다. 그래도 항상 손수 만드신 반찬과 재배한 야채를 보내주셨다. 가끔 편지봉투에 짧지만 낭만 가득한 편지와 함께 용돈을 넣어서 보내주셨다.
할머니가 제주도로 이사를 가신 이후로는 항상 여름방학 때는 제주도에 가곤 했다.
별로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의 밭에 따라다니고 할머니가 해준 투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을 제주도에서 보내진 않았지만 지금도 내 마음속 제2의 고향은 제주도이다. 제주도에 가면 새로운 설렘보다는 추억들이 많은 장소이다.
나 홀로 해외살이 하던 중에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이 생겼을 때도 나도 모르게 가장 먼저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고 할머니는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위로해 주셨다. 그때의 할머니 따뜻하지만 힘 있는 말이 나를 지탱해 주었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새로운 회사에 이직하고 여유가 생겨서 할머니댁인 제주도로 엄마와 여행을 가곤 했다.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셋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드라이브도 가고 카페도 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그 마저 녹록지 않았다.
다시 하늘길이 열렸을 때는 제일 먼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곤 했다.
할머니는 목욕탕과 호텔에 가시는 걸 좋아했고 우리와 함께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셨다.
나도 할머니와 엄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드리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돈 버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가을에 할머니와 함께 좋은 호텔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호텔을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해 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내가 살고 있는 일본 집에도 모시고 와서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여행도 다니고 싶었다.
늘 혼자 있는 게 당연한 해외살이 생활 속에서 나도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행복과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행복했던 시간들은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지만 너무 짧았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봄은 여행성수기 시즌이어서 비행기도 구하기도 어려웠고 또 휴가를 내는 것도 힘들었고 강아지를 갑자기 맡길 곳도 없었고... 사실 장례식에 가는 것이 무서웠다.
밝게 웃고 계신 할머니의 사진을 장례식장에서 보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갈 수 없었다.
외손녀이기 때문에 무리해서 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엄마의 말을 무기로 위로로 그냥 멀리서 마음속에서만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가끔 할머니가 나오는 꿈을 꾼다.
이상하게도 살아계실 때는 한 번도 할머니 꿈을 꾸지 않았는데 말이다.
돌아가시고 며칠 후에 꿈에서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졌고 엄마가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잘 올라가셨다고 얘기해 주시는 그런 꿈을 꿨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내게 잘 갔다고 알려주려 오신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잘 지켜보고 있겠다고 말해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몇 번인가 할머니가 나오는 꿈을 꾸곤 했다.
최근에는 다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 상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에게 쌀알을 받을 예정이었고 출국 서류 소지 물품에 '쌀알'을 적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쌀알은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을 공항 세관 직원에게 했고 그 직원도 의아해하는 정말 이상한 스토리의 꿈을 꾸었다.
최근에 한국에 다녀오지도 않았고 쌀알이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생각하고 본 기억도 없는데 말이다.
사실 나는 이상하고 엉뚱한 스토리의 꿈을 포함해서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생생한 꿈을 꾸고 나면 항상 챗지피티에게 꿈 해몽을 해달라고 한다.
로또 맞을 꿈인가 항상 물어보지만 한 번도 로또 맞을 꿈은 꾼 적이 없고 당첨된 적도 없다.
챗지피티의 꿈 해몽은 대단하다.
깨자마자 할머니의 죽음과 쌀알의 의미를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다.
가족과 관련된 감정, 걱정, 부담이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무의식에서는 끝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으며 내가 가지고 오지 못했던 '쌀알'이란 내가 버리고 싶어 하는 가족 관련 감정 또는 책임의 상징.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할머니에게 좀 더 해드리지 못한 것들. 그런 것들이 할머니에 대한 감정을 죄책감과 미안함만 남게 했다. 그런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색이 짙어진다.
어쩌면 할머니가 하늘나라에서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시곤 이제 괜찮으니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힘든 건 조금 잊어버리고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신 것 같다.
나에게 '쌀알'은 나에게 죄책감, 미안함이었지만 할머니가 알려주신 '쌀알'은 사랑이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알려주신 '쌀알'만 간직하고 살아가려고 노력할 거다. 할머니를 떠올렸을 때, 죄책감과 미안함만 남기기는 싫다.
나는 또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죄책감, 미안함의 '쌀알'을 만들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죄책감과 미안함은 사실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하지만 죄책감과 미안함만의 '쌀알'이 아니라 사랑이 가득한 '쌀알'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나중에 언젠가 문득 떠올렸을 때 나의 소중한 존재는 사랑으로만 남아 있기를 바란다.
사랑만이 가득한 '쌀알'을 만듭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소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