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의를 경계하는 프로
지난해 엄청난 인기몰이로 이듬해에 시즌2로 돌아온 [슬기로운 의사생활]는 역시나였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할까요? 일반적인 의학드라마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아마 ‘의학’이 아닌 ‘사람’을 조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료인의 직위와 학문적 지식은 분명 많은 사람을 살리고 도울 수 있는 기술이며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대하고 극적인 요소로써 의학은 많은 다른 작품에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제목에서 말하듯이 그들의 생활과 서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구성되어있지 않고, 마치 태양계처럼 여러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일명 99즈인 동기 의사 5명과 그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다른 인물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가 나머지 부분을 채워나가며 완성되는 각본은 드라마를 풍성하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입체적이고 다양한 인물들을 타고 흘러가는 이야기는 참으로 인간적이고, 다정합니다.
하지만 매번 가슴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의 특성상 안타까운 이야기들은 당연지사며 때론 예상할 수 없었던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예상할 수 없었던 변수는 부주의로부터 비롯된 일이자 지극히 인간적인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사건이었습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인 허선빈은 수술한 환자가 수술 바늘이 싶게 들어간 것 같다는 이유로 종일 환자를 살펴봅니다.
하지만 담당 펠로우는 기우라며 이를 업신여겼습니다. 당연히 드라마의 특성상 허선빈이 발견한 변수는 꽤나 큰 사건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그녀의 의심이 없었더라면 환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사건이 종결되고, 그녀의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 채송화는 이렇게 말합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확인했으면 네 판단을 믿고 나섰어야지”
맞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의심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녀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의심이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만약 강경하게 나섰더라면 자신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 의사의 권위와 실력을 무시하게 되는 꼴이니까요. 참으로 현실적인 딜레마입니다. 저도 군복무 시절 부사수로 경계근무를 서는 내내 같은 딜레마를 겪었습니다.
분명 배운 대로라면 경계 중에 사소한 것이더라도 책임자인 ‘내가’ 의심이 든다면 보고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잘못 본 것이라면?”이라는 두려움을 빙자한 오만함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경험이 증명하듯 나의 군생활과 선임들의 군생활 동안 거수자가 부대에 접근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잘못된 보고였다면 귀찮아질 상황과 한소리 들을게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소는 다르지만 허선빈도 분명 같은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욕할 순 없습니다. 선배의 꾸중을 적게 들으면서도 환자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으니까요. 그녀는 그녀의 선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마저 채송화는 “네 판단을 믿었어야지”라는 말과 함께 부숴버립니다.
채송화는 분명 허선빈의 프로의식을 믿고,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사란 그런 직업이니까요. 현실에서의 부주의와 한치의 오차는 몇몇 분야에서 꽤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부주의를 극복하고, 타인의 눈총을 극복하는 프로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제게 참으로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군생활마저 떠오르게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