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선배 부친상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재택근무라 하루 종일 집에서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있다가 퇴근시간인 오후 6시가 넘어서 셔츠와 바지를 다려 입고 쟈켓을 걸치고는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 집을 나섰다.
부친께서는 입원 중 갑자기 병세가 안 좋아져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국화 한 송이 올려놓는 기독교식 조문 후 상주인 선배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와줘서 고맙다."
"무슨요 당연히 와야죠" 하는 인사를 나누며 식사 장소로 발길을 옮겨보니 전 직장 동료들이 이미 모여있어 반갑게 인사하며 자리를 함께했다.
돌아가면서 그간 어떻게 지냈냐 하는 안부인사를 마치고 어쩌다가 얘기 주제가 20년 전 회사 막내시절 우리가 모셨던 임원 모친 장례식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
임원은 노환으로 오늘내일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회의 도중 서둘러 나갔고 그 즉시 본부 내 고참과장은 아랫것들 명단을 가지고 조를 짜기 시작했다.
한 조는 보통 5~6명 구성이었는데 과장, 대리가 조장이고 주임, 사원이 조원이었다.
오전 조, 오후 조, 저녁 조, 야간조 이렇게 4개 조가 짜여져서 5일장을 치르는 기간 동안 각자 정해진 시간에 우리는 회사가 아닌 병원 장례식장으로 출근을 했다.
장례식장에서 각자 맡은 일을 담당했는데 남자 직원의 경우 부조함이 있는 데스크를 맡았다. 회사 노트북을 펴놓고 방문객과 부조금 정보를 즉시 Digitalize 하는 동시에 문상객이 벗어놓고 들어간 구두 방향을 돌려놓아 나올 때 신기 편하게 하는 일도 같이 했는데 노트북은 중간 고참, 구두 정리는 제일 막내가 맡았다.
막내보다 좀 더 연차가 있는 직원은 근조화환을 서열 순서로대로 정리하던가 빼곡히 들어찬 화환에서 리본만 떼어 벽에 붙이고 화환은 따로 정리하는 그런 일을 했었다.
여자 직원은 문상객 식사 대접을 맡았다. 1인 상, 2인 상, 4인 상 이렇게 반찬 준비를 해놓고 문상객이 들어설 때마다 밥과 국을 새로 담아내어가곤 했다.
저녁에는 문상객이 술손님이 되어 인기 안주인 생선전, 돼지고기 수육과 소주, 맥주 리필 주문을 끊임없이 받아내곤 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업무를 조장이 총괄했는데 조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회사에서 또 다른 임원 아니면 사장이 지금 장례식장으로 출발했으니 언제쯤 도착한다라는 메신저를 받아 현장에 전파하고 도착 전에 현장에 있는 최고참이 임원 또는 사장의 차량 문을 열고 안내하도록 하고 조문을 마치면 바로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분업화된 일꾼들이 체계적으로 일을 하니 상주 가족들은 오롯이 문상객 접객에 집중을 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허드렛일을 하는 우리보다 출근과 퇴근이 여유로웠다. 아침에 늦게 나와서 우리한테 일찍 나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네거나 저녁에 일찍 들어가며 수고 좀 해주세요 라는 인사로 하루를 마무리 짓곤 했다.
주객이 전도가 되어도 한참 되었다.
----------------------------------
망인의 입관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임원은 우리 팀장에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날 때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고 싶다는 얘기를 했고 그 얘기를 들은 팀장은 과장에게 공짜폰을 하나 개통해올 방법을 알아보라고 했으며 과장은 나에게 누가 공짜폰을 언제 가지고 올 것이니 가서 받아오라는 일사불란한 상명하복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렇게 휴대폰을 받아오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살아계셨을 때도 안 해드렸던 휴대폰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무슨 소용이겠냐 하는 부질없는 효심에 대한 생각과 입관식 때 넣어 드린 휴대폰에서 행여 벨이라도 울리면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섬뜩하겠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영화 끝가지 간다에서도 관 속에서 휴대폰 벨이 울린다.
----------------------------------
각자 자기가 그때 어떤 고생을 했는지 한 마디씩 했는데 한 선배가 "나는 그때 장지까지 따라가서 상여도 멨어"라는 얘기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요새 같으면 갑질 중에 갑질이라며 블라인드에서 떠들석한 얘기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당연했고 회사업무 중 하나라고 여겨졌던 20년 전 장례식 기억을 선배 부친상을 계기로 다시 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