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단자의 삶 '나의 어머니'
사주단자의 삶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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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의 잘생긴 큰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던 19살 어여쁜 아가씨를 본 할아버지께서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보내셨다. 얼굴 한번 보지 않았고 데이트 한 번 못 해본 젊은 그들은 결혼식 날 처음 만났다. 결혼식 후 청년은 부대로 복귀했고 아가씨는 새댁이 되어 남편 없는 시댁에서 살게 되었다. 시누이 4명과 도련님 2명, 시부모님을 모시고 방 2칸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우물에 갔다 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사주단자를 받은 순간부터 삶이 바뀌어 버린 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 얼굴 한 번 못 보고 농사일은 혼자 다 하시고 진짜 힘들어서 우째 살았노?”
“느그 아버지 맨날 술 먹고 소리치고 해가 도망가고 싶어도 느그 땜에 참고 살았다. 그때는 다 그래 살았지.”
웃는 모습이 예쁜 소녀 같은 나의 어머니께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 어머니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신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농사일에 상관없이 술을 많이 드셨다. 아버지 몫의 농사일은 모두 어머니 일이 되었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바쁜 일과였다. 보리농사, 누에 키우기, 벼농사, 밭농사, 소와 토끼 키우기 등 끝이 없었던 일들이 어머니의 주름 속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노?”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못한다’는 말씀보다는 ‘누구든 해야 하니까’로 생각하시고 일을 마무리하셨다. 어머니의 책임감 덕분에 우리 오 남매가 잘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어머니는 멀미 대장이다.
어린 시절 가정의 경제권은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다. 시내로 가서 하는 업무들은 모두 할아버지가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어머니는 멀미를 더 많이 하셨고, 버스 타기 30분 전에는 꼭 멀리 약을 드셨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는 어머니의 멀미를 더 심하게 만들었고 버스 이동 후에는 얼굴색도 바뀌시고 많이 힘들어하셨다. 지금도 어머니의 가방에는 항상 멀리 약이 들어있다.
3. 어머니는 노래를 잘하신다.
밭일을 하시다가 흥얼거리시는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많이 들었다. 고운 목소리로 이미자, 현철, 남진 등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를 잘 부르셨다. 가족이 모여 노래방에 가셨을 때도 ‘나는 못 부른다’ 하시고는 마이크 잡으시고 노래를 부르셨다. 트로트를 들으며 따라 부르시는 어머니와 함께 엉덩이를 흔들고 함께 불러드리면 아주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곱고 부드러우며 따뜻해서 정말 사랑스럽다.
4.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면 어머니께서는 ‘그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시며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어릴 때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살아보니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셨다.
5. ‘사랑해’를 표현하는 경상도 할매다.
“내가 부모 사랑을 많이 못 받아서 너그들도 사랑을 마이 못해줘서 미안타.”
드라마를 보시던 어머니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올해 84세가 되신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자녀들에게 ‘사랑해’를 말로 표현해 주셨다. 주변에 다른 분이 계시면 부끄러우신지 ‘사랑해’ 대신 ‘나도요’로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의 사랑은 지금도 진행 중이시다.
어머니는 딸 부잣집 막내딸로 나를 있게 해주신 감사한 분이시며, 내가 먼 훗날 사랑스러운 할머니로 살아갈 수 있게 선물해 주신 감사한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