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팔부터 결혼까지

by 미뚜리

장마철이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내게 전화가 울렸다.

바로 예전 단짝 친구였다.

너무나 반가웠다.

그래도 잊지 않고 전화를 해주는구나 싶어

너무나 고마웠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기분탓일까?

그 친구는 자기 사는 이야기를

시시콜콜 다 늘어놓았다.


"나 쌍둥이 아들딸 엄마야"

"그래, 잘 지내지?"

"응~나 근데 속상한 일이 좀 있어"

"뭔데?"

"사실은 애 아빠가 택시를 끌어

근데 어려운 일이 생겨서

50만 원이 필요해.

이런 일로 전화해 진짜 미안한데

그래도 한때 너희 오빠가 나 좋아했잖아

오빠한테 부탁 좀 해주면 안 될까?"


난 순간 당황했다.

전화한 이유가 고작 그거라는 게 황당하고

25년 친구에게 배신 당하는 이 기분.

아니, 돈이 급하지 않았다면

전화도 안 하겠지.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랬다.


"그럴 돈 없어"

"너희 오빠 잘 벌잖아, 왜 그러니?"

"몰라서 물어?

우리 우정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게 난 속상하다.

다른 데서 알아봐, 나 바쁘니까.

이런 전화는 하지 말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오빠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지만

특별히 말해줄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일이 없어서 그런지

오빠는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잘 됐다 싶어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늘 버스 안은 손님으로 넘친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전화가 울렸다.

펜팔로 만난 오빠였다.


"4월 30일에 나 춘천 갈 건데 우리 만날래요?"


전화 통화는 여러 번 했었지만

직접 만나는 건 글쎄..

왜 그런지 망설이게 되었고

아무 대답도 하질 못했다.

그러자 오빠는 말했다.


"혹시 싫은 건가요?"

"혹시, 저 시각장애인인 거 아시나요?"

"그럼요. 월간지에 소개 글 보았는걸요"


그래도 보자는 건가?

그래도 되는 건가?

혼란이 많이 될 때

그래 만나서 싫으면 안 만나면 되지 뭐.

결국,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오빠는 날마다 전화를 하고 편지를 보냈다.


4월 30일,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달려와

춘천역에서 렌트카를 빌렸고

결국 우린 그렇게 만났다.

소양댐 가서 청평사를 가기 위한 배를 타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오빠는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우린 구경도 하고

내가 추워 보였는지 잠바도 벗어 주었다.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고양이가 우리 주위를 왜 그런지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닌가

배고파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그냥 신경이 쓰였다.

다시 배 타고 소양댐으로 가 같이 차를 탔고,

집에 바래다줄 때


"책 좋아한다고 한 것 같은데 이거 읽어봐요"


하며 소설책을 건네 주었다.


"네~ 조심히 가세요."


그 후 자주 춘천에 왔었고

가까워졌을 때 오빠는 조심히 말을 꺼냈다.


"나 있잖아 너랑 결혼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

내가 잘할게"


오빠의 고백으로 양가집 인사를 가게 되었다.

오빠가 첫인사로 엄마, 아빠한테 왔을 때

발을 다쳐 수술하게 되면서

짝짝이 신발에 절뚝절뚝.

엄마는 종교가 다르다고,

너무 멀다고 싫어하셨고

아빠는 같은 장애인인 줄 알고

엄청 좋아하신 바람에 쉽게 승낙이 되었다.

나중에 비장애인인걸 아시고

아빠는 실망하셨지만

그래도 다행히 싫어하시진 않았다.

결국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2박 3일이다 보니 지쳐할 때면 업어주고

그런 자상한 오빠와 함께라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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