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가 사라지고
첫 휴대폰을 갖게 된 건
막내 오빠 때문이었다.
자신의 휴대폰을 새로 하면서
번호 하나를 더 받았나 보다.
아마 지금 무선 전화기 크기의 전화였다.
이름은 걸리버.
기능은 단순했지만,
나름 이쁜 듯 싶었다.
그 시절에 휴대폰을 갖고 있는 친구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삐삐였다.
오빠는 물었다.
"학교 공부는 잘하고 있는 거지?"
"응,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나름 재미있고 잘했다 싶어."
"점심은 뭐 먹고 싶어?
우리 짜장면 먹을까?"
"좋지"
같이 밥을 먹으며 옛이야기를 한다.
"네 친구 있잖아, 그 친구 시집갔니?"
"응~ 얼마 전에 갔어"
그러고 보니 그 친구가
소식이 끊어진 지 꽤 오래되었다.
잘 지내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리 서운해도 한 번쯤은 전화해 주지.
오빠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외근 나가서 일하는 것이 더 많다 보니
홀로 가게를 지키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은행 문 닫기 전에는 돌아왔었다.
하루 번 돈을 예금 했어야 했으니까.
오빠가 돌아오는 걸 보고 나는
가게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린다.
매번 버스를 보고도 놓치는 게 일상이다 보니
어느 날 기사가 차 문을 열고
"이거 33번이니까 빨리 타요"
하고 말해주시기도 했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오면
거의 깜깜해진 저녁이었다.
피곤하긴 하지만,
엄마가 인삼 밭에서 일 하시느라
더 피곤하실 것 같아
저녁을 같이 도와주고, 같이 먹는다.
방에 들어가면 습관처럼
라디오부터 틀어놓는다.
흐르는 노래에 장단도 맞추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저번에는 퀴즈를 맞춰서
결국 상품도 탔다.
상품은 중소기업 아이디어 상품들.
그 재미에 엽서를 보내는 취미가 생겼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고추 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에는 부녀회 모임이 있다고 하셨다.
때마침 오빠 가게는 가지 않는 날이니까
엄마를 도와주기로 했다.
고추를 따고 그것을 깨끗이 닦고
그리고 말린 후 갈아서
고춧가루를 만드는 것이다.
엄마가 빠진 저녁 식사를
나머지 가족과 모여서 먹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나는 방에 들어왔다.
오늘 엄마는 늦는다.
난 잠들려는 찰나에 집 전화가 울렸다.
엄마가 신호등을 건너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무릎이 다쳤다는 거였다.
가족은 모두 놀래고 병원을 찾아가 보니
엄마는 피투성이었고 난리가 아니었다.
결국 엄마는 입원을 해야 했고,
무릎 수술을 하게 됐고
통깁스를 해야 했다.
그러고 한달 뒤 엄마는 퇴원했다.
돈 아깝다고 퇴원해버렸다.
엄마는 점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작아지는 걸 느끼자 울보가 되었고,
짜증만 냈었다.
밭에 뭐 심어야 하는데
못한다며 괴로워하셨다.
엄마는 방에서 늘 누워계셨다.
그러다 보니 막내 오빠 가게도 중요하지만
집에서 엄마를 지키며
잡일을 또 도와줘야 했었다.
중간고사도 다가오는데 이를 어쩌지?
시험공부도 못했고,
아빠는 엄마를 더 도와주라고 하셨다.
공부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공부를 못하게 되다 보니
짝짝이 학년이 되고 말았다.
1학기는 3학년 공부를 하고,
2학기는 2학년 공부를 해야 했다.
끝까지 잘 하려고 했는데
점점 자신감이 약해지고
점수도 내려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가정학과였던 학교 생활을
포기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