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갑작 스럽게 하게된 눈 수술

by 미뚜리

병든 시부모와 어린 자식 속의 나

책임감을 갖고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버거웠을까?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시력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세상은 다 지워지고 말았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로지 흰색뿐이었고,

혼자서 화장실 찾기도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자

아이의 아빠도 걱정이 되었는지 병원에 데려갔고

의사 선생님은 고도근시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다.

아픈 시부모님과 어린 자식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 수술비는 아기 아빠 회사에서 해결해 주셨고

수술 역시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기가 보일 수 있었고,

아기 아빠가 보일 수 있었다.


병원 최초 성공 수술이었고

너무나 신기하고 좋았는데

결코 오래 가지는 못했다.

6개월도 안 돼서 재수술을 해야만 했으니까.

재수술을 해도 이전처럼 보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언젠간 해보고 싶었던 눈 수술이었고

그것이 간절했던 순간도 있었고

잘 보일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도 분명 있었으니까.


병원에서는 수술하면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셨지만

주부로서 쉼은 가능하지 않았다.

내가 손이 가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행복했다.

아기를 아주 가까이에서는 볼 수 있었으니까.

그만하면 된 거지.

어쩌면 눈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우리 아가는 친 할아버지와 기다리며 엄마를 반겼다.

어느덧 우리 아가는 이도 많이 나서

조금씩 이유식 먹어 그런지

우유 먹일 때와는 다른 변 색깔에

엄마인 나는 우리 아이가 그냥 이쁘기만 하다.


저녁에 애 아빠는 퇴근해 집에 왔을 때 내게 말을 했다.


"병원에서 왼쪽 눈에 의안도 가능하다 하시네.

실명이라서 신경은 없는데

오른쪽 눈이 움직이는대로 눈동자가 움직인다나."


나는 기대감도 물론 있지만

돈이 꽤 들 거라는 생각에 망설여지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애 아빠 입장은

병든 부모 말없이 모셔준 게 고마웠던 걸까?

나를 설득 시켰고, 그뿐 아니라

친정에도 이것저것 사드리면서

나름의 효를 하는 게 고마워 보였다.


그때였다.

친정 엄마가 전화하셨다.

축 처진 내 목소리를 듣고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다.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라고 말하자, 엄마는 금방 눈치를 챘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응~ 얼마 전 눈 수술을 했어.

성공한 게 내가 최초라 하시.

그런데 다시 재 수술하게 되니 힘드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엄마가 주은이 봐줬어야 했는데..."

"괜찮아. 할아버지가 하루 보셨어.

엄마가 걱정할까 봐 말 한했어.

수술한다는 말 말이지."

"그래 힘들겠구나! 살림과 육아,

그리고 눈 수술. 힘들면 친정에 쉬었다가 가"

"응"


그렇게 모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의안까지 하게 되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예쁜 내가 너무 좋았다.

잘 된 건지도 모른다.

아이 어린이집 보내면 이쁜 엄마들이 많을 건데

나만 장애인인 게 티 나고 하면

창피하지 않을까 하며

마음이 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의안은 적응 기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내 눈이 아니다 보니

원하지 않게 눈꺼풀이 끼거나 할 때가 있기 때문에 말이지.

그래도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건

평생 친정 부모님도 내 눈을 고쳐줘 보려고

많이 애쓰셨던 부분이고,

매번 실패라서 포기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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