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난 어수선한 꿈을 꾸었다.
어느날 친정집에 가보니 거실부터 안방까지 어지럽게 놓였던 쓰레기
"이게 뭐야 청소가 전혀 안 되어 있잖아"
요양사 선생님은 도대체 뭐 한 거지... 혼자 중얼거리다가 잠에서 깨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되던 마음
그때였다.
전화가 울린다.
"아버지야...!"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떡 먹으러 와 요양사 선생님이 떡을 했지 뭐야"
"네~ 2시 이후에 갈게요."
그러자 우리 도우미 선생님은 옆에서 통화는 듣고
이야기하신다.
"아이코~언니 나 신경 써주는구나 꼭 시간 맞추지 않아도 돼 점심 먹고 콜 부르자
가는 것 보고 나도 갈게"
"근데 언니 혼자 갈 수 있어?"
"그럼요. 봄내 콜 기사분이 목적지 문턱까지 데려다주시는 걸"
"그렇구나! 다행이다."
"나가자 언니 차 잡힌 것 같아"
"그럼 조심해 다녀와...!"
"내일 뵐게요."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방에서 걸어 나오시더니 나를 반기신다.
"너다! 야~이리 와 우리 집에 와~"
방을 가리키며 엄마는 그러신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엄마를 가리키며
"저거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어서 이쁜데 단 기억만이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그런 엄마가 치매 되신 지. 어느덧 14년 되었네요. 아버지 없었으면 가능하지도 않는 일이에요.
모든 건 아버지 덕이예요."
난 그렇게 말했다.
"집에 쌀 있니?"
"그럼요."
그때 언니한테 김치 한 통을 주라 했더니 한 포기 준게 꽤나 속상하셨던 걸까?
김치를 떡과 함께 다시 챙겨 주신다.
사실 아버지도 건강하신 건 아니다.
백혈 병으로 시작된 게 현재 혈액 암으로 고생..
부모님 생각하면 마음은 무겁다. 딱히 잘 사는 모습을 못 보여 드려 말이지.
주은이 아빠도 세월에 간경화, 이젠 나이도 있고 하니 직장을 덥석덥석 잡긴 힘든 모든 현실.
그나마 주은이가 잘 커주는 게 내겐 큰 힘이자 에너지 같다.
엄마 마음 누구보다 잘 헤아려 주는듯싶고 낡은 내 칫솔도 이쁘게 바꿔주고 때때로 병원도 같이 가주고 시각 장애인 엄마
딸 덕분에 사는듯싶다.
다음 주 까지던가 '나는야 연기 왕' 말이지.
글쓰기의 시초가 된 게 '나는야 연기 왕'이라는 연극 활동이다. 어느덧 2년이 된 건가 참 빠른 세월이다.
장애인이 연극은 어떻게 가능해 나도 처음에 그 의문이 되었던 부분.
특히나 난 시각 장애인 아닌가, 그래도 서로 서로 도와주신 덕일까 재미있게 잘 활동하고 있다.
작년엔 특히나 나의 시가 노래로 되어 더 기뻤고, 드럼을 쳐주며 같이 활동해 주는 주은이 덕에 무엇보다 든든했던 활동이었다.
올해는 주은이는 빠졌다. 시험 기간이라서. 그래도 끝까지 동행해 주는 주은이가 고맙고 이쁘다.
올해 활동한 것 중에 난 많은 움직임 중 그것이 가장 생각난다.
소리에 따라 우리 몸의 일부는 울리는 것 말이지.
노래를 부름에도 말을 함에도 난 말끝이 자꾸 흐려지는 건 급 호흡이 약간 딸린다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아마 이것을 하게 되면 달라진 내 모습 되지 않을까?
남들 앞에서도 당당한 나의 목소리 말이지 정말 그러고 싶다.
이번 프로그램이 도움이 되길 살짝 바라본다. 연극 활동이.
다음 주면 끝나던가 이어 합창.
올해도 보람으로 꽉 채운듯싶다.
아니, 건강이 허락되는 한 쭉 되는 활동이길 꿈꿔 본다.
운동도 꾸준히 약도 병원도 꾸준히 건강한 50대 주인공이 되길...
올해 첫눈은 언제 올까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또 불편함은 있지만 그래도 아직 소녀의 그 마음은 들뜨는지 기다려지는 첫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