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길거리가 가득한 무주 반딧불 축제와 적상산 전망대의 절경
주말 아침, 여느 때처럼 아이에게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반딧불이 보면 좋겠어. 우리 반딧불이 보러 가자."
기껏해야 키즈카페 가서 낚시 놀이하거나 물놀이터에서 첨벙첨벙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갑툭튀 반딧불이라니?
번뜩 며칠 전에 어린이집에서 받아 온 그림책 한 권이 떠올랐다. 한 아이가 여름휴가 때 반딧불이를 보고 온 장면이 있었다. '그걸 기억하다니 기특하네.'라는 감탄도 잠시.
반딧불이를 지금 어디서 보지? 부랴부랴 검색을 하니 마침 오늘부터 열리는 반딧불이 축제가 있다. 바로 '무주 반딧불 축제'였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다가 3년 만에 열린다니 운이 좋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라 거리도 딱이네. 서둘러 짐을 챙겨 무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무주 방향에 차가 밀린다. '다 반딧불이 축제 가는 거 아냐? 사람 너무 많아서 못 들어가는 거 아냐?' 반딧불이 본다고 잔뜩 들떠 있는 아이 탓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알아보니 '반딧불이 신비탐사'나 '가족과 함께하는 1박 2일 생태탐험' 같이 체험할 수 있는 거리가 여럿 있었다. 아쉽게도 오늘자는 벌써 마감이다. 맘 카페에 들어가니 품절된 표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글이 여럿 있다. 우리만 몰랐지, 아이 있는 집에서는 꽤나 유명한 축제였다. 다행히 반디 누리관이란 곳에서 낮에도 반딧불이를 볼 수 있도록 해놨다는 말에 안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행사장은 활기가 넘쳤다. 특유의 시골 정취에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 좋았다.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할지 몰라 식당 앞에 해도 되나 물어보니 쿨하게 하란다.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시골에서 자란 남편 말에 따르면, 이런 행사 하나가 열리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참여해서 만들어간단다.
이걸 봤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우리는 바로 반디누리관으로 직진했다. 여기 온 목적은 하나, 반딧불이를 보는 것이니까. 표를 구매하고 깜깜한 실내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불빛이 보인다.
"와! 여보, 반딧불이 진짜 많다."
"그거 아니야. 그건 그냥 네온 불빛이야."
반딧불이를 본 적 없는 나는 불빛이 보일 때마다 연신 '이거 반딧불이 맞아? 이거는?' 하고 물어봤다. 그때마다 남편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딧불이는 깜빡깜빡하고 불빛을 냈다가 안 냈다가 한단다. 그럼 반딧불이는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안내하는 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줄 서시면 돼요. 이 안에 반딧불이가 있어요."
우리는 불빛이 아예 없는 더 깜깜한 곳으로 들어갔다. 앞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가늠이 안 되는 어둠이었다. 조금 지나니 눈이 적응했는지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반딧불이였다. 곳곳에 반딧불이를 담은 유리병이 있었다. 깜박깜박 느리게 빛을 내는 반딧불이. 남편은 반딧불이는 자기들이 원할 때 빛을 낸다고 했다.
"불빛이 너무 희미해. 원래 이런 거 맞아?"
유리병 속 반딧불이들은 마치 숨쉬기 힘들어 헐떡이는 것 같았다. 아이는 깜깜해서 무섭다며 아빠에게 안긴 채 꼼짝을 안 했다. 우리는 서둘러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이건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니여.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그나저나 아직 한낮인데, 이제 어디 가지? 밤에 이런저런 행사를 한대서 그것까지 보고 가려니 시간이 뜬다. 다시 검색에 들어갔다. 근처에 전망대가 있다는데 사진으로 보니 경치가 좋아 보였다. 하지만 차로 40분이 걸리는 산길. 남편은 전망대 뭐 볼 거 있냐면서 구시렁대었다.
스위스 쉴트호른 뺨치는 적상산 전망대 절경
전망대에 올라가는 길, 기막힌 반전이 펼쳐졌다. 굽이굽이 산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풍경에 우리는 '우아. 이야' 감탄사를 연발했다. 갈지자로 이어진 길은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올라가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도로가의 울창한 나무가 만들어 낸 어둠 때문에 자동으로 자동차 라이트가 켜지는 것도 신기했다.
"여보, 내가 전망대 뭐 볼 거 있냐고 그랬던 거 미안해."
전망대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자신의 성급함을 사죄했다. 눈앞에 덕유산 국립공원이 그림처럼 펼쳐지니 그럴 만도. 멀리 산들이 켜켜이 겹쳐 그러데이션 된 풍경이 예술이다. 맑은 가을 날씨도 한몫했다. 007 시리즈의 촬영지로 유명한 스위스의 쉴트호른 뺨치는 절경이었다. 웬만하면 셀카 찍자고 안 하는 남편이 카메라를 꺼내 든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담긴 사진을 남겼다.
반딧불이 축제에서 제대로 된 반딧불이는 못 봤지만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대만족이다. 키즈 카페 낚시광인 아이는 야외 행사장(등나무어울터)에서 진짜 물고기 잡기 놀이도 할 수 있었다(아이가 하도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는 바람에 금세 구름 떼처럼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제대로 호객행위를 한 아이에게 주인아저씨는 질릴 때까지 낚시를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5천 원 체험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반딧불이 탈을 쓴 인형과 손잡고 싱글벙글 웃으며 사진도 찍고 반딧불이 풍선도 공짜로 받았다.
해질녘 남대천의 풍경도, 한풍루 별빛 정원의 장식도 멋졌다. 아이는 오늘 반딧불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종알거리다 차에서 그대로 꿈나라로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며 반딧불이 탐사 갔으면 더 좋았겠다 하자 남편이 말했다.
"반딧불이를 자연에서 만나면 뭐가 좋은지 알아? 얘네들이 겁도 없이 내 주위를 반짝반짝거리면서 빙빙 돌거든. 그때의 황홀한 기분을 잊을 수 없어. "
남편은 시골 출신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이 있다. '저 정도 산은 그냥 맨발로 날아다녔지.', '저게 뭔 줄 알아? 머루야.' 등등 자연을 마주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낸다. 아이도 자신처럼 자연에서 자라면 좋겠다고 하면서.
내년에는 부지런을 떨어서 반딧불이 탐사 신청에 꼭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아이도 아이지만 나도 진짜 반딧불이를 만나 남편이 경험한 황홀함을 누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