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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Sep 30. 2023

몽골 | 모래폭풍에 갇혀보셨나요

초원에 누워서 첫키스를 할 거야, 3 weeks in Mongolia


준수가 여권을 잃어버렸다.

아침에 푸르공을 타기 직전, 푸제가 여기 여권 잃어버린 사람이 있냐며, 가이드 단체 채팅방에 한국인 여권을 주웠다는 다른 가이드의 채팅을 봤다고 했다. 육백수 중 다섯은 어제 고비사막에 갈 때 여권을 챙겨가질 않았고, 준수 혼자 여권을 주머니에 넣어갔다고 했다. 짐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자 그 여권이 준수의 여권이라는 게 확실해져 가는 길에 만나 여권을 전달받기로 했다.


여권을 주워준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 너무나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나중에 한국에 오면 술을 사주겠다는 말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심지어 그 프랑스인은 우리에게 여권을 고비사막 정상에서 주웠다고 했는데, 우리는 준수가 전 날 사막 스켈레톤을 해보겠다며 정상에서 윤성빈 선수를 따라하다가 여권이 빠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갈 무렵 사실 여권은 고비사막 입구에서 발견되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때문에 정상에서 주웠다고 거짓말까지 했을까?



그나저나 여권을 전달받으러 갔던 초원은 너무나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몽골'의 모습이었다. 초원에 오래 있고 싶었지만 오래 머무는 만큼 우리가 다음 숙소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최소 이동거리가 5시간인 몽골에서는 서둘러 이동해야했다.


마음은 서두르는데 푸르공이 말을 듣지 않았다. 조금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또 다시 황무지에 푸르공을 주차하고 자유시간을 보내던 중 아침에 봤던 프랑스인의 푸르공이 우리 뒤에 섰다. 푸르공 기사님은 어기를 도와드렸고, 가이드는 푸제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인은 우리에게 모래폭풍이 오고 있으니 빨리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저 멀리 보니 강한 바람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어제 고비사막에서 겪었던 그 바람같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시 차에서 잠에 들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자꾸만 브레이크를 반복해서 밟는 것처럼 몸이 앞뒤로 튀어올랐다. 눈을 떴는데 바깥은 노랗고, 차는 10초도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멈춰댔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글쎄 우리가 모래폭풍에 갇혔단다.  

잠에서 덜 깬 나는 유진언니에게 “거짓말 치지 마" 라고 말한 후 다시 잠에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가늠하지 못했지만 눈을 뜨니 여전히 바깥은 황토색 뿐이었다. 그제서야 유진언니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참을 모래폭풍 속에 있었다고 한다. 아침엔 분명 그렇게 맑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역시 몽골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기는 길을 알고 가는 건지 그냥 밟는 건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앞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푸르공 창문조차 열수 없었다. 창문 틈새로 고운 모래가 스며 들어오는데 여기서 창문을 열었다간 푸르공 안이 전부 황토색이 될 테다. 몽골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땀을 흘렸다. 버티려고 했는데 버텨지지가 않았다. 모두가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준열이는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고 있었고, 나도 편두통과 멀미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푸르공은 계속해서 멈췄다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엔진이 열을 받아서 차가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물을 다 엔진을 식히는 데 사용했지만 열이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결국 어기와 푸제는 아무 유목민의 집에 잠시 들리기로 결정을 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정말 모래폭풍에 갇혀서 날씨가 좋아져 다른 푸르공이 지나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 게르를 발견했다. 푸제는 게르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더니 우리에게 서둘러 내리라고 하였다. 나는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었는데 푸르공에서 내리자 마자 온 몸을 모래로 두드려맞았다. 나는 내 몸에게 움직이란 지시를 한 적이 없는데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가만히 있다가는 저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눈도 못 뜨고 있던 와중 이리 오라는 푸제의 목소리만 듣고 잽싸게 뛰어들어갔다.


몽골 다큐멘터리에서 본 듯한 유목민의 게르였다. 몽골에 오기 전 실제 유목민의 집에 가보는 게 내 소원 중 하나였지만 이런 상황을 예견한 건 아니였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기가 함께 살고 있는 작은 게르는 여러모로 신기했다. 최소한의 공간을 최대치로 활용한 게 유목민스러웠다나. 암튼 웬 땀에 쩐 한국인 여섯명이 갑자기 집에 들어오니 할머니도 여간 당황하셨을 터다. 푸제와 어기가 물을 얻는 동안 할머니가 주신 웰컴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었다. 보통 신기한 일이 아니였다.


갑자기 찾아온 외국인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게 기억에 남아 찾아보니 과거 몽골의 법전에는 ‘찾아온 여행자를 쫓아내면 사형'이라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몽골에서는 여행하다 초원 한복판에 있는 유목민 게르에 들어가도 반갑게 맞아주는 전통이 존재한다.


집에 한 두시간 있었던가, 모래폭풍은 잦아들지 않았지만 이대로 있다간 이 집에서 잠까지 자야할 판이었다. 서둘러 오늘의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현재 시간은 오후 5시, 아직 점심조차 해결하지 못했지만 배고픔 따위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약 2시간을 달려 예약해둔 식당에 도착했는데, 건물 안은 굉장히 조용했다. 아침부터 참았던 화장실을 해결하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12시에 예약한 사람들이 오지 않자 사장님이 집으로 퇴근을 하셨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였다. 저녁이 된 점심은 하나도 특별할 게 없었다. 우리가 아는 ‘몽골'의 양고기, 볶음밥 맛. 입맛도 없는데 이 양고기를 계속 먹었다간 차에서 큰 일이 날 것 같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한참을 차 안에 있었다. 우리가 바양작 숙소에 몇 시에 도착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건 게르가 날아갈 수 있으니 잠시 버스에 타라는 주인의 말이었다.


언젠가 현대에서 만들어진 관광버스는 몽골로 넘어와 숙박 버스로 개조되었다. 일단 누웠다. 거의 12시간을 그렇게 있었으니, 다들 허리가 부서질 것처럼 아팠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화장실같은데 밖에 나갈 수 조차 없으니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밖이 캄캄했다. 게르를 한 번 확인해보라는 말에 유진언니, 준수와 게르에 들렀다. 아무리 버스가 편해도 침대에서 자는 것보단 못할 것이다.




“게르로 가자. 바람도 멈췄고 괜찮을 것 같아"


잠에 빠져있던 백수들도 주섬주섬 일어나 게르로 자리를 옮기며 우리의 시끄러운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인간의 힘으로 약간의 컨트롤도 할 수 없는 자연에 갇혀있어보긴 처음이었다. 늘 비가 쏟아질듯 오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바람이 많이 불면 창문을 닫고 집에 있곤 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염화칼슘을 뿌리고 얼음길을 조심해서 걸었었다. 이 곳은 정말 ‘자연'이었다. 차가 고장나면 이대로 건조한 땅 위에서 말라죽는 건 아닐지 진심으로 걱정했었다. 신기하게 여섯명 모두 짜증조차 나지 않았다. 다들 우리가 짜증을 낸다고 해서 달라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오히려 푸르공 안에서는 적막함이 감돌다가도 유진언니가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꽁치캔 하나로 우리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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