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만난 친. 구.

서른의 태국어 어학연수

by 빠이타이

사람에게는 살면서 몇 번의 터닝 포인트가 온다.

나의 서른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나이 서른에 그렇게 훌훌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크게 후회할 거라는 마음속 깊은 스스로의 울림이었다. 그것 또한 나의 운명 같았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도 그게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수없이 고민한다. 물론 자신이 그렇게 고민한 선택조차도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일단 시작하자는 게 나의 신념이다. 서른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다름 아닌 태국어였다. 그때의 태국어는 번아웃이 온 나에게 힐링이자 쉼 그 자체였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인생에서 태국연수 1년은 그다지 손해 같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어학연수시절, 학교생활에 점점 적응이 하면서 한국에 사는 것 마냥 익숙해져 갔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적응이 되지 않는 게 있었다. 혼자 잘 있다가도 한 번씩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

생각해 보면 외롭다는 건 주위에 사람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얼마나 열 수 있냐 없냐 차이인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서른이라는 숫자 앞에 어른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지만 이 낯선 타국에서는 여전히 아이였다. 한국에서는 으레 마음 저 끝까지 보여도 아무렇지 않은 친구 한 명이 있으니 솔직히 몰랐다. 치앙마이에서 학교 입학만 하면 집만 구하면 학교생활에 적응만 하면 삼시 세끼 챙겨 먹을 수 있다면 다 해결된 거라 생각했다. 교실에 친구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과 허전함이 점점 커져갔다.


어느 날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하면서 카드게임을 하는데 처음 보는 외국인 한 명이 앉아있었다.

남아프리카에 온 키깐이란다. 서로 통성명하고 여느 때처럼 카드게임을 하는데 생각보다 이런 문화생활을 접해보지 못했던 나는 매번 꼴찌였다. 도통 게임의 룰도 모르겠고 재미도 잘 모르겠고 늘 한 박자씩 늦어서 친구들을 항상 기다리게 만들었다. 남아프리카, 일본, 태국, 미국, 체코, 중국 다국적이다 보니 언어가 막 뒤섞여서 나오니 사실 설명해줘도 못 알아듣겠더라. 그때였다. 그 친구는 옆에 오더니 웃으면서 게임은 그냥 즐기면 된다고 승부에 신경 쓰지 말랬다. 내 표정이 아마도 제일 심각했나 보다. 한국인은 어디에서나 심히 진지해진다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 이후로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쉬는 날이면 서로의 숙소에 와서 각자의 나라 음식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고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며 별 이야기도 아닌 걸로 배를 잡고 웃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친구의 나이와 성별 국적까지 초월한 우정이었다.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열네 살 나이 차이와 예의를 중요시 여기는 우리네 관습에 한참이나 벗어나 있는 친구라는 개념이 처음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친구는 나이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 꽁꽁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다. 희한하게도 그 친구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꺼내어 보일 수 있는 한 사람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갑자기 정전이 되고 마침 먹을 물마저 똑떨어진 날이었다. (태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비가 심하게 오면 정전이 되는 게 일상이다) 거기다가 열도 펄펄 나고 몸살까지 겹쳐 옴짝달싹 못했던 그 순간,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도 모르게 핑 눈물이 나는데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게 서럽고 슬프고 아프고 온갖 짜증이 그에게 막 쏟아져 나왔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뚝 전화가 끊겼는데 전기가 끊기니 와이파이마저 끊겼나 보다 했다. 한 30분이 지났나? 문에서 똑똑 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비에 다 젖은 친구가 봉지에 물이랑 약 그리고 먹을 간식들을 잔뜩 사서 온 것이다. 또 눈물이 났다. 얼마나 바보 같아 보였을지 민망함도 나중 일이었다.


동시에 서른에 공부하겠다고 선택했던 스스로 잘했다고 느낄 만큼 감격스러운 날이기도 했다. 태국어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 친구를 만날 수 있었을까? 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 독립적이고 뭐든지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잠시 내려뒀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할 때도 있다. 독립하고 서른이 되기까지 무엇이든 혼자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힘든 순간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힘든 고비도 무사히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서른에 찾아온 선물 같은 사람, 부족한 부분도 못난 모습도 그저 사랑스럽게 지켜봐 주던 나의 천사 키깐. 오늘따라 유난히 그 친구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