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우리 집 "KY" 씨
아들은 점심도 거른 채 오락실에 갔다가, 오후 네 시가 다 되어서야 허기와 피로에 지친 몸으로 돌아왔다.
내가 아들의 늦은 점심 준비를 하는 사이, 다이닝룸 식탁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작업을 하고 있던 남편이 손을 씻고 막 식탁에 앉으려고 하는 아들에게 놀 시간 있으면 방청소나 좀 하라는 잔소리를 시전 한다.
앗! 스탑!!!! 왜 하필 지금?
밥 먹을 땐 멍멍이도 안 건드린다는데...
남편은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상대방이 어떤 마음 상태인지도 살피지 않고 직진으로 달려온다.
놀고 와서 안 그래도 죄책감에 작아져 있는 아이에게 왜, 하필, 지금, 그리 곱지 않은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지 난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밥을 먹고 나서 조용히 타이르면 "네에"라고 받아들일 순한 아이가, 말을 들으려다가도 반발심이 생길 것만 같다. 아빠를 싫어할 것만 같아서 내심 초조하다.
그래서, 아들 앞에 두 팔 벌려 보호하듯 한마디 했다.
"왜 밥 먹으려고 하는 애한테 그래?"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하려 했던 내 말에 남편은 무안했는지 자기가 틀린 말을 했냐며, 애를 그렇게 감싸니까 안된다면서 이번엔 나에게 큰소리를 시전 한다.
아들은 내 팔을 살짝 잡으며 엄마가 참으라는 사인을 보낸다.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아들은 묵묵히 밥을 먹고 나서 아빠에게 한 마디를 하고 방에 들어간다.
"パパ も少しは空気読めよ(파파모 스코시와 쿠우키 요메요(아빠도 분위기 파악 좀 해))"
아들의 무거운 한 방 펀치에 남편은 대꾸도 못하고 입만 아~벌린 채 식탁에 남겨졌다.
아들 말이 맞다.
남편이 만약 회사에 다니거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시되는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사람은 나쁘지 않고 오히려 선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전후좌우 없이 코뿔소같이 돌진하는 사람이라서 사회생활을 했다면 아마 무척 힘들지 않았을까....
그런 사람이 "공기를 읽어야" 살기 편한 일본에 와서 참 고생한다는 생각도 든다.
아들이 말한 "空気を読む(쿠우키오 요무)"라는 말은 직역하면 "공기를 읽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걸 "분위기 파악을 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먼 옛날 공동작업이 불가결한 농경사회였던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이지 않았을까.
남편은 귀가해서 가끔 "아... 그 말을 하면 안 됐는데... 참을 걸...."하고 자책하는 일이 있다. 이럴 땐 어김없이 직장에서 "공기를 못 읽고" 입바른 소리를 탕탕하고 온 날이다.
이런 사람, "공기(쿠우키, K)를 못 읽는(요메나이, Y) 사람"을 일본에서는 "KY"라고 해서 한때 유행어이기도 했다.
남편은 "KY"인 것이다.
갑자기 "KY"는 내가 시키지도, 원하지도 않았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뜬금없이 내 코 앞에 들이민다.
나 방금 커피 마신 거 못 봤나요?
그러더니, 아직 앙금이 남아있는 내 감정 따위 읽을 생각도 안 하고, "저녁엔 생선 구워 먹고 싶다"며 입맛을 쩝쩝 다신다.
그새 노트북에서 생선 구이 레시피를 찾았나 보다.
입담 구수하게, 지금이라도 눈앞에 생선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듯한 현장감 있는 실황 중계를 듣고 있자니 입안에 침이 고인다.
공기를 읽지는 못해도, 마음을 읽는 법은 아는 "KY"이다.
그의 열렬한 생선구이 프레젠테이션 덕분에 냉랭했던 집안의 공기는 어느새 숯불 앞처럼 훈훈해진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KY"이다.
방에서 청소를 하고 있을 아들을 살살 달래, 셋이서 장에 가서 맛난 생선이라도 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