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엄마의 욕심과 일본 ママ [mama]의 상식
"니세판* 입었어? 손수건이랑 티슈는?"
매일 아침 등교할 때마다 딸에게 확인하는 말이다.
내가 물어보니까 딸이 안 챙기는 건지, 항상 아차! 하는 딸을 보니 내가 매일 챙기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90년대 말 처음 일본의 여고생(女子高校生 [Joshi Koukousei] JK)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당시 입시에 찌들어 있는 한국 학생들과는 달리, 여기 여고생들은 메이크업에 네일, 화려한 헤어 스타일과 과감한 교복 패션으로 무리 져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대학생들보다 더 청춘을 구가하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가 다녔던 학교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시부야 근처라서, 화려한 JK들을 쉽게 자주 목격할 수 있던 것도 있었겠지만, 보면서도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한테 혼나지는 않을까, 아니 학교에 가긴 하는 걸까 두근두근했었다.
지인들에게 JK에 대해 물어보면, 일부 학생들의 이야기라고 웃어넘겼지만, 당시 나는 JK뿐만이 아니라 일본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당당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길거리 흡연코너에서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맞담배를 당당히 피우기도 하고, 미혼의 OL(Office Lady:회사원)들이 부모에게 독립해서 혼자 원룸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당시 한국 정서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반대로, 내가 여기서 거의 30여 년을 생활하는 동안 한국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변했다.
국내에 있으면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민첩성과 유연성은 대단하다.
특히 여성들의 사고와 행동의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무엇이 그녀들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었나....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난 그 중 하나로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2001)라는 영화를 자주 떠올린다.
이 영화를 전후로 한국 여성들의 바람직한 여성상이 재탄생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엽기적인 그녀"이전의 바람직한 여성이라고 하면 "겨울연가"의 "유진"(최지우)같은 캐릭터가 아닐까. 온갖 고난 속에서도 잡초처럼 일어나면서도 가련하고 청순함을 잃지 않고 희생과 인내의 아이콘.
우리 사회에서 바람직한 "여성성"으로 칭송받던 이런 캐릭터가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전지현)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당시, 내가 보기에 "그녀"는 황당할 정도로 현실성이 없는 캐릭터였다.
술에 취해 비몽사몽이 되고, 자신의 정의에 따라 거침없이 행동하고, 남자를 자기 맘대로 리드하고, 거기에 폭력까지....
영화가 전개되면서 "그녀"의 행동에는 다소(?) 근거가 있고,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고 이해하는 "견우"로 인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곁에 두기엔 참 버거운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그녀"의 당당한 행동과 태도는 멋진 한국 여성의 표상이 되어 있었고,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녀"와 같이 자기주장이 확실한 캐릭터의 주인공들이 등장해 동경의 대상이 되어 갔다(전지현 님의 아름다움이 한몫을 했겠다).
그래서, 내가 학기 중에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한국 영화 중에 "엽기적인 그녀"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가 로코인데, 한국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원조라고 하면 역시 "엽기적인 그녀"이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 여성 이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여 주기 전에 항상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한국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가요?"라고.
그러면 많은 학생들이 한국 여성의 이미지를 "기가 세다(気が強い [kiga tsuyoi]*)"혹은 "걸 크러쉬"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말에는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적극적이며 자립심이 강하다는 긍정적 측면과 고압적이고 지기 싫어하며 자기중심적이라고 하는 부정적 측면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나는 다시 학생들과 이야기한다.
긍정적 측면이든 부정적 측면이든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한국 여성의 이미지의 출발은 바로 이 영화일 수도 있다고.
한국 여성의 이미지가 약 2, 30년 사이에 이렇게 현저하게 변한 것에 비해, 일본의 여성 이미지는 그리 변한 것 같지 않다.
일본에서는 "여자력(女子力 [joshiryoku])"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 여성스러운 매력과 감각을 생활에 반영하는 능력을 말한다.
"여자력이 높다(高い [takai]) 혹은 낮다(低い [hikui])"라고 해서, 여자력이 높은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섬세한 준비성(가방 안에는 항상 손수건, 티슈, 반창고, 바느질 세트 등을 넣어 다님), 요리나 테이블 매너, 외모 가꾸기(네일, 메이크 업), 상대방의 기분을 세심하게 살피는 리액션과 상냥한 말투 등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경우를 "여자력이 높다"라고 해서 바람직한 여성의 척도가 된다.
물론, 이 개념에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부지런함, 타인 배려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 혹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보이지 않는 굴레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한국 여성의 이미지인 "기가 세다"와 일본 여성의 이미지 "女子力",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 좋고 나쁘고는 없다.
그리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도 피해야 할 것이다.
다만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딸아이의 여성으로서의 경제적・ 정신적 자립을 진심으로 응원하면서도, 여자력이 높은 모테조*([motejo]가 되기를 원하기도 하는 나의 이 모순된 이중 잣대를 좀처럼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 니세판(偽パン)은 교복이나 짧은 치마 안에 입는 속바지를 말하는데, 가짜라는 의미의 니세모노(偽物)와 속옷의 팬티(パンツ)의 줄임말이다.
⁑モテジョ([motejo] 는 モテる女性 [moteru josei]의 줄임말)는 인기 있는 여성을 말한다. 늘 미소로 매력을 발산하고 복장이나 용모가 단정하고 청결함을 유지하며 정중한 말과 예의 바른 행동이 몸에 배어있는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