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와 변화구, 당신은 어느 쪽?

"희망사항"과 "トリセツ", 여러분은 どっち( [docchi])?

by 혜준

솔직히, 1989년 노영심이 작사한 "희망사항"은

내 청춘의 "여성상"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이렇게 해야 좀 괜찮은 여자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계산을 깔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내숭 떤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일부러 독하고 쓴 술을 마셔 보기도 하고

지저분한 식당에서는 까탈스럽다고 할까 봐

털털한 척 와구와구 먹어 보기도 하고

남자들 앞에서도 꼬리 친다고 할까 봐

오빠가 아닌 "선배"로 부르며 거리를 두었다.

애교 있고 생글거리는 예쁜 여자아이들을

곁눈으로 한심하게 보면서, 맘속으로는 부러워하던

나의 다소 일그러진 "여성상".

생각해 보니 이런 "여자"의 좀 더 레벨 업 된 버전이

"엽기적인 그녀"(2001)인 것도 같다....


이런 내가 일본에 와서 본 이상적인 여성은

나를 완전히 거꾸로 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조금은 내숭을 떨어야, 다소 까탈스러워야,

싫어도 여지를 남겨야, 애교를 흘려야

괜찮은 여자로 여겨지는 사회인 것 같았다.


다음의 두 노래는 한일 양국의 여성이

남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마음이 끌릴까.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읽어(들어) 보시길 바란다.

첫 번째는 브브걸의 멤버들이 개사해 리메이크한

"희망사항"(2025)이고,

두 번째는 니시노 카나(西野かな)가 2015년에 작사, 작곡해 발표한

“トリセツ*"([torisetsu] 사용설명서)라는 곡이다.


희망사항(2025)

브브걸 (BBGIRLS) - 희망사항 (Feat. 변진섭)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

나의 맨얼굴이 예쁘다 해주는 남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 주는 남자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중략)

편한 추리닝을 입고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남자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남자

웃을 때 목젖이 섹시한 남자

편한 운동복을 입고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남자

술을 마셔도 연락이 잘 되는 남자

보고 싶단 한마디 말에도

집 앞으로 달려오는 남자

(중략)

내가 울적하고 속이 상할 때

그저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되는 남자

나를 만난 이후 소개팅을

한 번도 한 번도 안 한 남자

(생략)


사용설명서(トリセツ)(2015)

西野カナ『トリセツ』MV Full

https://youtu.be/tPv4HacL_FA?si=wEWoCpgVNqormv8e

이번에 이런 나를 선택해 줘서 정말 고마워.

사용하시기 전에 이 취급설명서를 잘 읽고

항상 제대로 다정하게 사용해 줘.

단 하나뿐인 한정판이라 반품이나 교환은 안 돼요.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질 때가 있어요.
이유를 물어도

대답은 안 하지만 방치하면 화를 내곤 하죠.

늘 미안해.

하지만 그럴 땐 질려하지 말고

끝까지 내 곁을 지켜주기로 해요.

(중략)

정기적으로 칭찬해 주면 오래갑니다.

"손톱이 예쁘네" 같은

작은 변화도 놓치지 말고 눈치채 줍시다.

나를 잘 지켜봐 줘.

하지만 "살쪘네" 같은

쓸데없는 건 모른 척해 줘도 괜찮아.

(중략)

혹시라도 내가 조금 오래돼서

다른 사람에게 눈이 갈 때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려줘.

(중략)

의외로 꽃 한 송이에도 설레곤 해요.

아무것도 아닌 날의

소소한 선물은 효과적이죠.

센스는 중요해.

하지만 짧더라도 잘 못 썼더라도

편지가 가장 기뻐.


혹시라도 눈물을 흘리면

다정하게 닦아주고

세게 꼭 안아줘.

당신만이 나를 고칠 수 있으니까.


가끔은 여행도 데려가 주고

기념일에는 근사한 저녁 식사를

"나랑 안 어울려"라고 말하지 말고

멋지게 에스코트해 줘.

넓은 마음과 깊은 사랑으로

전부 받아들여 줘.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런 나지만 웃으며 용서해 줘.

언제까지나 소중히 대해줘.

영구 보증이 되는 나니까.



어떻습니까?

직구처럼 솔직하고 적극적인 표현과

변화구처럼 뱅뱅 돌려 말하는 수동적 표현,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맘에 드실까요?


사족(蛇足(だそく [dasoku])일 수도 있지만,

"トリセツ(사용설명서)"는 일부 일본 남성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대요.

이유는, 여성이 지시하는 듯한 느낌에 대한 거부감과

"図星"였기(ずぼし [zubosi]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라고 해요.

이제껏 여자들은 모를 존재라고 대충 넘어갔던 일본 남성들에게

니시노 카나의 "トリセツ"는 더 이상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일종의 위협으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상냥한 어조로 "영구 보증"을 약속하는 여성의 고백조차 위협이라고

비난을 받는 점에 대해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도 궁금합니다.

일본 남성들이 "희망사항"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커플이 매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갈 듯도 합니다.


*トリセツ (取扱説明書:とりあつかいせつめいしょ [toriatsukaisetsumeisyo]) 취급설명서, 사용설명서의 줄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