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드라에서 온 손님2.

2. 회생

by 늦은구름

몇 분간 들여다보고 나서 자리를 떴다. 기상 후에는 공원에 물을 받으러 가는 게 일과의 첫 번째 순서

였다. 공원 중턱에 있는 운동기구에 가서 체조와 스쿼트 윗몸일으키기 등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과정

이 정례화 되어있었다. 몸도 가벼워지고 밥맛도 좋으니 오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위해서도 그

만한 운동은 필수인 셈이다. 유리병 속의 검은 물체는 아직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 두고 보자 하고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았다. 도대체 저 녀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곤충이 나돌아

다닐 때도 아닌데, 더군다나 성충이라면 겨울을 지냈다는 얘기가 된다.


결코 중부지방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혹시 바람 타고 열대지방에서 온 것은 아닐까?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태풍은 봄에 오지 않으니 실어 나를 바람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행기는

어떤가. 어떤 계기로 해서 화물에 묻어왔다면 말이 되는 거다. 화물칸에 있었다면 문에 틈이 상당히

크게 벌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어불성설이다. 조종석에서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아무튼 높은 데서 떨어

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꽤 큰소리를 내며 떨어졌다는 게 작은 구덩이가 생겼으므로 증명되는 거다.


만성 씨는 방안을 서성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남편이 크지도 않은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못마땅했다.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 모양인데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았다. 웬만하면 참는 게 집안

을 조용하게 유지하는 좋은 방법인 걸 알고 있었다. 대화에 반말은 들어가지 않아도 언쟁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부부가 성미가 별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사십 년을 넘게 같이 살아왔으니 그만한 생활의 지혜는 일찍이 얻었던 바였다. 만성 씨는 고집이 있으니 주로 참고 넘어가는 것은 정여사 몫이었다.


늙으면 집안의 주도권은 대개 부인에게 넘어가는 게 보통인데 만성 씨는 기를 쓰고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는 편이었다. 밥 얻어먹는 거는 정 여사가 심통을 부리지 않는 한 무난하였다. 삼시 세끼 집에서 먹

자고 하면 간이 배밖에 나왔다고들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 규칙은 사회 통념처럼 지켜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만성 씨 집에서는 아니었다. 사십여 년을 벌어서 가정을 지탱해 왔는데 이제 와서 끼니를

얻어먹는다고 표현하는 것부터가 안된다는 거였다. 언젠가 정 여사를 앉혀 놓고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지

지 않으냐고 따져 물은 적이 있었다.


정 여사는 남편의 조리 있는 말에 긍정적인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끼니를 가지고 나가서

먹으라는 둥 꼭 집에서 먹어야 하겠느냐는 둥 하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가끔은 나가서 동네

식당에서 먹기도 했다. 물론 정여사를 데리고 가는 때도 있다. 만성 씨는 도서관에 간다고 집을 나섰다. 도서관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곤충도감을 빌려 산에서 가져온 것과 비슷한 곤충을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갑충과 닮았으니 갑충을 주로 찾아보았다. 많기도 하지만 생김새가 다양했다.


크기부터 제각각일 뿐 아니라 색깔도 모양새도 그렇게 종류가 많을 줄은 몰랐다. 무늬도 여러 가지인

게 놀라웠다. 조물주가 많이도 만들어 놨다고 말들 하지만, 만성 씨는 진화론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으니

턱도 없는 소리이고 이 종들은 수 억년을 살아오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적절하게 진화하여 오늘에 이르

렀을 것이다. 조물주가 있다고 한 들 많고도 많은 생물들을 이처럼 다양하게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가?

현재까지 기록된 곤충은 약 80만 종에 달해 동물종의 약 4분의 3을 차지한다고 했다.


창조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인 거다. 다시 한번 생명의 신비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지구상에는 많고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갑충 한 종만 가지고 봐도 무지하게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종류를 찾았고 찾았고 그것은 풍뎅이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근사치로 생각 되었다. 풍뎅이는 완전 변태 라고 했다. 그런데 집에 있는 녀석이 암놈인지 수놈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암 수 양성중에 하나라고 한다면 알을 낳기 위해서는 한 놈이 더 있어야 한다.


도감에 똑같은 외모는 없었으니 거기에서 걸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새로 발견된 종이란 말인가?

의문은 의문을 낳고 끝이 없었다. 한국에 없는 종이라면 아열대와 열대지방에는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도감 한 번 찾아보고 새로 발견된 종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만성 씨는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찾아본

다. 외국의 도감을 뒤져보아도 같은 녀석은 찾을 수 없었다. 영어는 짧아도 모양으로 찾는 데야 어렵지

않았다. 외국 것을 찾는 데는 광범위하여 질려 버릴 지경이었다. 인터넷에서 헤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현재로서는 관찰이 중요하다는 걸 확인하고 자주 관찰하기로 했다. 이들이 지났어도

움직임이 전혀 없다. 좋다 더 두고 보자 하고 조금 느긋하게 마음먹고 또 하룻밤을 보냈다. 3일째

아침에 보니 검은 녀석은 아주 느린 움직임을 보였다. 한 참을 들여다보아야 알아챌 수 있었다.

만성 씨는 쾌재를 불렀다. 이 녀석이 살아 있는 게 확인되었으니 지금부터 관찰 시간을 늘려야겠다

고 작정하고 넣어준 풀을 확인하였다. 풀이 시들어서 바닥에 깔려 있는데 일부가 잘려 있는 게 보였다.


즉시 밖에 나가 싱싱한 풀을 뜯어왔다.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사용하여 가만히 남은 풀을 꺼내고 새

풀을 넣어 주었다. 앞으로 풀을 왕성하게 먹어 치우면 본래의 습관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녀석은 산에 떨어지기 전에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풀을 잘 먹는 것부터가 그런

추측을 가능케 했다. 곤충은 대대로 먹어오던 것이 아니면 먹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동물이

그러하긴 하다. 이 곤충의 습성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곤충은 아무

것이나 잘 먹는다는 가정하에 전에 살던 곳이 열악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깨어나긴 했어도 의문은 더 늘어났다. 풀을 먹는 걸 확인하였으나 곤충 생태 자료에는 장수풍뎅이는

수액을 먹고 산다고 했는데, 물론 똑같은 종은 아닌 게 맞지만 비슷한 성질을 가졌다면 먹는 것도 비슷

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선다. 좀 더 본 다음에 다른 것도 넣어 줘 봐야 할 것 같다. 나뭇가지나 막 피어 나는 나뭇잎눈 또는 꽃도 해당이 된다. 식성을 파악한 다음에는 다리 머리 등껍데기 등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곤충연구소에 넘겨주더라도 가능한 한 여러 가지 생태를 관찰하면 받는 측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만성 씨 자신의 관찰력을 시험해 보는 계기도 될 것이다. 가슴이 가볍게 뛰는 걸 느낀다. 얼마 만이냐?

무얼 해보겠다고 하여 머리를 쓰고 눈으로 점검하는 행위가 늙은이의 활력을 저 깊은 곳에서 꺼내 온

것이라 여긴다. 이 얼마나 벅찬 일인가? 입부분이 처음엔 안 보였었는데 움직이면서부터 턱이 앞으로

나온 게 보였다. 움츠릴 때는 몸 쪽으로 숨겨져 있었던 거다. 유리병을 조금 돌려 주둥이를 보려고 해도

잘 안 보여서 돋보기를 가져다 보았다. 확대해서 본 입의 모양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만성 씨는 험하거나 징그러운 곤충은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 시골에서 풍뎅이를 자주 봤었는데 여름에는 떼로 날아다니며 길가의 나무에 또는 억센 풀에

앉아 있는 걸 봤었다. 동네 아이들은 그 풍뎅이를 잡아서 머리를 배배 틀어서는 뒤집어 놓고는 '돌아라

쓸어라' 하면서 놀던 기억이 있다. 풍뎅이는 날갯짓을 빠르게 하여 정말 땅 위에서 마당 쓸 듯이 빙빙

돌았다. 좀 불쌍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의 놀이에 같이 재미나게 놀았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풍뎅이는 뿔이 없었다. 입니 날카롭지도 않았다. 사마귀는 포식자라 메뚜기를 잡으면 목을 잘라버리고 몸통을 씹어 먹는 걸 자주 보는데 이 녀석도 그런 류의 곤충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렇다면 풍에는 입을 대지 안을 터인데 이상하지 않은가. 잡식인가? 아직 잡아 다 줄만한 곤충

이 나오지 않았으니 식성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하여튼 무얼 먹는다는 건 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행동이니 관찰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만성 씨는 인터넷을 뒤져서 곤충과 관계되는 연구단체를 찾아보았다. 연구소라고 이름 붙은 데는

있으나 들어가 보면 상업적인 활동이 주가 되는 것으로 보였다.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곳을 알아보니

곤충학회가 있었다. 그러나 학회는 연구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주된 활동으로 보였다. 며칠

간을 인터넷에서 찾고 연락하였으나 만족할만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결국 당분간은 직접 기르면서

관찰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정을 했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야 못할 것이 없지만 이 알 수 없는

곤충을 깊이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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