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드라에서 온 손님 3

이름을 짓다.

by 늦은구름

비디오가 필요하고 더 세밀하게 연구하자면 현미경도 필요하다. 거기에 파고 들어가는 기법도 모르고

있다. 여하튼 해보는 데 까지 해보면서 차선책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비디오카메라는 아들에게 하나 사

달래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카메라 달린 현미경은 좀 비쌀 것이다. 일단 외관상으로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려면 비디오카메라가 필수다.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좀 바쁘다. 아들에게 전화하여 사정을

얘기하고 비디오를 부탁했다. 고속촬영 기능이 있는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것은 주머니 사정을 따져보니 결국은 마나님을 구워 삶아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며칠 동안 눈치

를 보다가 사실을 털어놓았다. 가져갈 기관이나 연구자를 아직 못 구했다는 것. 그래서 얼마간 집에서

관찰해야 한다는 것, 등산장비등을 넣어둔 공간을 정리하고 거기에 두고 관리하겠다는 것. 그러니

자기가 집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어쩔 수 없다는 것과 용돈이 필요하니 얼마간 지원을 부탁한다고 했다.

정 여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집안에만 붙어 있는 것에 더해 용돈을 올려 달라 니? 그렇지 않아도 요즘 영감이 주야장천 베란다를

드나드는 게 못마땅한 판인데.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정 여사는 표정을 고치고는 말했다.

"당신 퇴직하면 나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말 했어요 안 했어요?" "내가 당신을 언제 귀찮게 했어

요?" "지금 귀찮게 하고 있잖아요?" "이건 당신을 괴롭히는 게 아니고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한 거

잖아요? 내가 당신에게 무얼 가져와라! 무얼 해달라! 한 적이 있어요?"


정 여사는 얼른 대답을 못한다. 영감이 할 수 있는 일은 시킨 적이 없었다. 즉시 댓 구를 해야 남편의

요구를 물리칠 수 있는데 이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당신의 몸이 불편한 것을 아는 터에 당신을

괴롭히는 일은 할 수가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걸 실천해 왔어요. 뭐 이런 말을 하면 잔소리

밖에 안되니까 그만둡시다. 당신이 용돈을 주기 싫다는 거 충분히 알았으니 됐어요. 신경 쓰지 말아요.

단, 내가 푼돈이라도 생기면 빼앗을 생각은 말아요." 하고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수입에 관해 손대지

못하게 다짐을 해 두었다.


"알았 수. 행여 그런 소식이 있기를 바랄게요." "소식은 듣고 싶은 게요?" 하며 빙긋이 웃었다.

괜한 말싸움이라도 집안에서 대화할 일이 별로 없던 차에 잠시 말을 주고받은 것이 어찌 보면 다행

이다 싶기도 했다. 등산장비를 과감히 버리고 나니 공간이 생겼다. 유리병을 선반에 올려놓으니 관찰

하기도 편했다. 만성 씨는 우선 이 녀석의 이름을 지었다. 광교산에서 발견했으니 '광교풍뎅이'로 했다.

광교풍뎅이 관찰 계획을 세웠다. 먹이를 다양하게 주어 볼 것이다. 며칠 굶기기도 해 볼 것이다.


광교풍뎅이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열대나

아열대에서 살았다면 먹이가 일정할 것이다. 북극이나 남극에서 살았다면 곤충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먹이를 심하게 가려서는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되었다. 가당 큰 의문은 이 녀석의 성별이었다.

수놈인지 암놈인지 구별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였다. 따라서 자손을 볼 수 없다면 당대에서 끝나는

것이다. 연구할 사람에게 양도할 때엔 그 점을 분명하게 강조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 녀석에 관한 연구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의문이 많은 광교풍뎅이가 이 개체 하나

에서 끝난다면 너무 허망한 것 아닌가.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전 세계에 널리 알려서 같은

종이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 게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 풍뎅이가 풀을 먹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왕성하게 먹어 치우는 것 말고는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그로부터 3일 후에 마트에서 번데기 통조림을 사다가 한 개를 물에 헹궈서 물 묻은 채로 주었다.


의외로 잘 먹었다. 이 녀석이 단백질이 필요한 모양이라고 판단했다. 하루에 두 개를 거뜬히 먹어 치

웠다. 메뚜기나 사마귀를 넣어 주고 싶지만 아직 산야에 나올 시기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먹이를 끊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녀석의 건강은 회복되었다고 판단했기에 먹이를 끊어서 생태를 관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날 사육통을 청소하기 위해 새 통으로 옮겨야 했는데 적잖이 걱정되었다.

발에 날카로운 가시가 여러 개 있어서 찔리기 쉬운 위험이 있었고, 동작이 빨라서 통 밖으로 튀어 나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죽장갑을 찾아 끼고 녀석을 잡아 새 통으로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심하게 움직이며 저항

했다. 만성 씨는 긴장하면서도 침착하고 재빠르게 손을 썼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사육통을 열었을

때 냄새가 심하게 났다는 것이다. 번데기를 먹어서인지 배설물에서 나는 악취였다. 보통 때는 잘 나지

않았었는데 뚜껑을 활짝 열자 냄새가 확 퍼지면서 확실하게 맡을 수 있었다. 즉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마누라가 맡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광교풍뎅이는 기운이 넘치는지 황동도 활발하고 빨랐다. 앞으로는 사육통을 높이 들어 녀석의 다리며

배 입 등을 볼 것이다. 처음에 위에서 내려다보던 바와는 다르게 턱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고 그걸 사용

하는 동작도 공격적인 걸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똥을 어디에 보관한단 말인가? 보관한다 해도

시간이 갈수록 부패할 것이기에 그 점 또한 걱정거리였다. 만성 씨는 녀석을 받아 사육하고 연구할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 있긴 한데 돈이 드는 일이라 아예 제쳐 두고 있다.


만성 씨는 지난번에 연락해보았던 전화번호로 걸어보았다. 한 군데에서 관심을 나타내었다.

"여보세요. 거기가 ㅇㅇ연구소입니까?" "네, 맞습니다." "예, 지금도 제가 말씀드린 곤충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으신가요?" "네, 사실은 관심이 있긴 있습니다. 그 곤충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이 곤충을 자세하게 설명한다는 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생김새는 풍뎅

이를 닮았는데 입 부분이 날카롭게 되어있고, 한 가지 특징은 식물성이나 동물성 먹이도 다 먹는다는

것입니다. 얘는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군요. 흥미를 갖게 하는 말씀이긴 합니다. 하고 있는 일이 좀 많아서 먼저번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대답했습니다만. 무엇을 새로 시작한다는 게 각오를 가지고 달려들어야 하는 거라 쉽게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르신께서 좀 더 관찰을 하시고 자주 연락을 취하면 안 될까요? 어정쩡하게 대답

하는 게 오래도록 길러주어서 결과를 획득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연구소장님의 말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많아서 인지는 몰라도 얘가 단지 한 마리

뿐이기 때문에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고 성별도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마냥 보기만 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언제 먹는 걸 멈출지 모르는 겁니다.

특히 한 점이 있는 생물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사육하면서 연구해서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가지는 얘와 같은 종이 없는지 해외에도 알아봐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제가 풍뎅이와 닮았다

고 했는데 억센 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곤충도감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습니다만 비슷한 곤충은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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