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드라에서 온 손님 4

경이로운 순간

by 늦은구름

"네 알겠습니다. 저도 준비할 사항이 있긴 합니다.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예,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한 사람이지만 연락이 되고 상대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만성 씨는

고무되어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남에게 넘기지는 않을 터인

데, 아쉽기는 하지만 과욕을 부려서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시원스레

넘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기간이 얼마나 될지 알지 못하지만 기록은 철저하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아들이 사준 비디오카메라도 계속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반이 지났다. 만성 씨는 광교

풍뎅이를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조카들에게 전화하는 것도 잊은 지가 꽤

되었다. 광교풍뎅이는 먹새가 좋아 넣어 주는 대로 먹어 치웠다. 그리고 보니 등딱지가 약간 부풀어 오른

걸 발견 하였다. 긴장되나 평정심을 유지하며 더욱 자주 들여다보고 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이제 산은

왕성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고,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아름답게 채색하여 주는 듯하였다.


그간 풍뎅이 때문에 산에 가는 것도 미루어 왔는데, 비디오카메라가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 내일은

다녀와야 하겠다고 작정한다. 의욕에 찬 생활 사이에도 건강은 챙겨야 하는 것이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법이다. 정 여사에게 한 번 넌지시 떠본다. "당신이나 다녀오세요. 나는 몸

이 무거워서 못 가요."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알았어요. 산에는 못 가더라도 자주 움직이세요. TV

만 보지 말고요." 정 여사는 댓 구도하지 않는다. 내심 못마땅한 거다.


몸이 전 같지 않은데 어떻게 움직이라는 건지. 만성 씨는 마트에 가서 간식거리를 사 왔다. 불편한 마누

라를 재촉할 필요가 없었다. 점심은 사 먹거나 간식으로 때우면 되는 거다. 연구소장으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날이 거듭 될수록 초조 해져 갔다. 이 사람이 자신이 없는 걸까? 말해준 대로 믿지 못하는 걸까?

궁금하지만 전화는 되도록 삼갔다. 재촉하는 걸로 알면 앞으로 일을 추진하는데 좋을 것이 없었다.

만성 씨는 현재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본다. 광교풍뎅이의 존재가 국내나 외국에 다른 개체가 있는가?


이를 알아보려면 널리 알려야 하는데 애초에 국내의 연구소를 수소문한 것은, 기왕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라면 국내에서 연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국내에 널리 알리려면 언론을 통

해서만 가능한데, 거대 언론은 관심도 없을 것이고 유튜버들에게 알리는 건 어렵지 않으나 그들은 연구

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맡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외국엔 영어가 짧으니 그 또한 어려울 뿐 아니라 시간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한 가지가 있을 뿐이다. 저 녀석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자신이

기르는 방법 밖에 없다. 자신에게 기계가 있다면 좀 더 여러 가지를 연구해 볼 수 있을 텐데.


결론은 아쉬움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화로 확인하자 하고 ㅇㅇ연구소에 전화를 했다. 소장

은 연락을 못 드려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동안 바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넘겨줄

의향이 있느냐고 했다. 만성 씨는 기다리지 않고 답했다. "소장님의 사정을 알겠습니다. 재촉하는 것

같아서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인수의향이 확실하시다면 내 말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광교풍뎅이의 상태는 정상으로 보이고요, 얘가 등딱지가 약간 부풀어 올랐어요.


내가 보기엔 병은 아닐 것 같고, 그래서 상상을 해봅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이고요. 얘를

가져가시려면 준비를 미리 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연구소에 가서 갑자기 어떤 변화가 닥치면 소장

님도 당황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입니다." "뭐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곤충이야 다 거 기서

거기이니까요. 어르신께서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한데, 준비라면 무얼 말씀하시는

지요."

"첫째로는 장소입니다. 다른 종들과 함께 취급하면 분위기가 산만 해지지 않을까 싶은 거고. 뭐 광교

풍뎅이를 특별취급해 주시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만, 혹시 새로운 종으로 밝혀지면 특별취급도 필요

한 것이겠지요. 국내 곤충도감을 다 뒤져 보아도 같은 종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소장님이 조사

하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새로운 종이라는 확정이 되기 전 까지는 이 녀석의

사육기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먹이가 식물성 동물성을 가리지 않고 있으니 먹이 실험도 필요할 것이

고요. 다른 종들과 결투도 시켜봐야 할 거교요. 그러니 비디오카메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장소는 별도로 없지만 만들면 될 것입니다. 비디오카메라는 고급은 아니어도 쓰던

것이 있습니다. 그걸 활용해야지요. 어르신의 세밀한 고려에 놀랐습니다. 그러면 언제 가면 될까요?"

금주내고 오세요.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인계하고 싶습니다. 전문가가 사육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출발하실 때 미리 연락 주세요. 여기서도 준비해야 하니까요." "예, 여기서 출발하면

두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예,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때 뵙지요."


대화를 마치고 만성 씨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다행하게도 곧 인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확실히 나이는 못 속이는 것이다. 처음엔 의욕이 솟아났으나 거듭되는 의문으로

머리가 피곤 해졌다. 자신은 그저 의문을 확대하고 상상하는데 그친다는 한계를 깨닫고 나서는 한 없이

무력해지기도 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마침 사육통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광교풍뎅이는 자꾸 벽을 기어

오르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준비해 두었던 가지가 달린 굵직한 나무토막을 넣어 주었다.


풍뎅이는 기다리지 않고 나무토막에 올라 발로 잡고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때 정 여사는

남편에게 식사하라는 통보를 한다. 대답이 없자 다시 좀 큰소리로 말했다. "저녁 들고 들여다보던지

말던지 해요!" 만성 씨는 돌아다보지도 않고 "밥 먹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중요한 시간이니

먼저 들어요."라고 대답했다. 정 여사는 대뜸 "두 번 차리기 싫어요. 지금 아니면 없어요."

꽤 가시가 돋친 말이었다. 듣기에 불편하였지만 지금 마누라와 입씨름할 시간이 아니었다.


광교풍뎅이는 한 참을 떨더니 등딱지를 위로 추켜올리고 날개를 떤다. 날라 오르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안았다. 날개를 피고 있다가 떨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더니 등에서 무언가 누르

스름한 것이 하나 떨어져 나왔다. 그것은 육각형이면서 머리는 더 길쯤하고 각 부분이 부드러운 곡선

으로 되어있었다. 만성 씨는 침을 삼켰다. 얘가 무성생식이란 걸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었다. 입가에

웃음기가 번진다. 그렇게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까지 떨어지고 서야 몸 떨기를 멈추고 날개를

접더니 등딱지도 접어서 전과 다름없는 모양이 되었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 이상 무어라 표현할 바를 몰랐다. 분리하여 생식하는 동물이 있긴 한데,

이렇게 모체의 몸에 붙어서 자라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 기묘한 생명의 탄갱 순간을 보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밥은 먹어야 하겠는데 다음에 벌어질 상황이 궁금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관찰 노트에 날짜와 시간과 상태를 기입했다. 그리고는 밥상 앞에 앉았다. 국은 이미 식어

있었다. 마누라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그동안에 사육통을 확인한다. 모체는 가만히 나무에 매달려 있고, 떨어져 나온 작은 새끼들은 꼼지락

걸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선 밥부터 먹자 하고 국을 가져다 놓고 먹는다. 정 여사는 다 먹고 일어

섰다. 만성 씨는 밥맛인지 쌀 맛인지 모른 채 저녁을 다 먹었다. 원래 만성 씨는 배고픈 것을 참지 못

했다. 평소의 습관을 잘 아는 정 여사가 걱정하는 것도 그것이었다. 허기가 졌을 터인데도 무엇에 열중

하여 끼니를 놓칠까 봐 채근을 한 것이다. 제때 끼니를 차려주지 않으면 몇 번이고 언제 되느냐고 묻는

것에 익숙한 정 여사였다.


양치질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바로 사육통에 붙다시피 서서 작은놈들이 꼼지락거리는 걸 지켜본다.

모체는 아직도 나무에 붙어 있었다. 상당한 에너지를 썼기에 기운을 차리느라 가만히 있는 모양이었다.

새로 나온 개체를 모체와 함께 둘 것인가 분리하여 따로 둘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모체가 새끼를 잡

아 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새끼가 모체를 먹으려고 달려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끼는 작을 뿐

더러 어미는 딱딱한 갑옷에 싸여 있으니 잡아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성 씨는 마트로 한 걸음에 달려가 적당한 플라스틱 용기를 일곱 개 사 왔다. 뚜껑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었다. 통에는 번호를 적었다. 개체 하나씩 넣고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소장이 취급

하기 간편하게 해 두는 것이다. 밖에서 뜯어온 풀을 넣어 주었다. 새끼들은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다.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먹는 게 틀림없었다. 어미의 식성을 닮았을 터이니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 모체의 행동이 궁금했다.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만성 씨는 아차 싶었다.


얘네가 일곱이 나왔는데 그렇다면 모체의 등에서 일곱이 자랐다는 것 아닌가? 그 자리가 있을 거였다.

비디오 기록을 컴퓨터에서 확인한다. 등껍질을 들었을 때의 장면을 자세히 보니 날갯짓하기 전에 분명

하게 여섯 개의 육각형 무늬가 하나의 육각형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일곱 마리가 나온 것이다.

아까는 흥분하여 그걸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거다. 연구소장에게 전화하여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알려주면 소장은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좋아하겠지만 어쩐지 지금 알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딱히 그 이유를 내 세울 것은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 놀랄만한 상황을 더 겪고 난 다음

에 전해 줄 생각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넘겨주고 나면 자신에게 남는 건 기억뿐이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불현듯 일어났다. 그러나 곧 이런 마은이 집착이란 생각을 한다. 이 나이에 집착에 빠지면 안

되지 하는 자각이었다. 그래 처음 계획대로 해야 하겠다. 고민 끝에 새로 나온 개체들은 다른 사육통에

옮겼다. 두 마리씩 넣고 한 마리는 한 통에 넣으니 통 네 개면 충분하였다. 풀도 넉넉하게 넣었다.


모체는 밤이 되어서야 조금씩 움직였다. 만성 씨는 특식을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번데기를 두 개

넣어 주었다. 아마 입맛이 당길 것이다. 동물이면 기운 빠졌을 때 먹어야 한다. 밤 동안에 모체와 새끼

풍뎅이들은 필요한 행동을 할 것이고 내일 아침이면 결과가 나와 있을 것이다. 오늘은 특별한 경험을

한 날이었다. 가끔 이렇게 가슴 뛰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맨날 들리는 건 정치인들의

권모술수나 어디에서 누가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였다는 뉴스가 자주 나오니 말이다.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우울해지는 시간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아무쪼록 밝은 뉴스가 많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은 꿈도 꾸지 않고 단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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