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드라에서 온 손님 8.

확신

by 늦은구름

포장재가 녹아서 풍뎅이가 움직이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김 정식은 교내 식당으로

만성 씨를 안내했다. 음식은 먹을 만했다. 연구실은 조용한 가운데 사람도 많지 않았고 연구라는 활동이

소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안었기에 분위기는 한 마디로 연구소 다웠다. 만성 씨가 다닌 직장은 항상

시끄러웠던 터라 이런 조용한 곳에서는 졸리 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었던 포장들이 한 꺼풀씩

녹아서 물기가 흘렀다. 주머니를 벗기면 사육통인데, 열자면 움직여햐 하니 조심스러워 손대지 않기로

했다.


결국은 오늘 내로 속 포장을 풀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김 정식 씨에게 가까운 곳에 하루 묵을 곳을

물으니 자기가 자취를 한다고 같이 가잔다. 그런 것까지 신세를 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김

정식도 물러서지 않고 어르신께서 이렇게 직접 오셨으니 얘기도 나눌 겸 자기 숙소로 가자는 것이다.

노인네가 가도 되겠느냐고 하자 신경 쓰지 마시라고 한다. 카메라가 조금 마음이 안 놓였지만 다른 방법

이 없었다. 김 정식은 한사코 염려 말라고 했다.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김 정식은 비교적 익숙한 솜씨로 사가지고 간 재료를 조리했다. 남자라고 해서 조리를 못 하란 법은 없

는 건데 평소에 해보지 않으면 식재료를 보고 당황하게 마련이다. 재료에 맞게 척척 해냈다. 그 음식이

조금 어설프다 해도 만성 씨에게는 상관없었다. 늘 하는 얘기가 있다. '나는 잡식 동물이다. 웬만하면 다 먹

먹을 수 있어.'가 그의 주장이었다. 굴러 다니던 때엔 한 끼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입은 언제나 고마워했고 그렇게 살았다. 의외로 요리 솜씨도 좋았다. 자취하면서 터득한 기술이리라.


앞으로 결혼하면 부인에게 사랑받을 거라고 해줬더니 정식의 대답은 긍정반 부정반이었다. 아내가

고마워하면서 먹어주면 기쁠 것이고 까다롭게 굴면 해준 사람도 맥이 빠질 거라는 거였다. 맞는 말이다.

조금 부족해도 맛있었다고 하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정식은 만성 씨에게 말을 놓으시라고 했다. 첫 대면

인데 반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저에겐 할아버지 같으신 분이니 당연히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광교풍뎅이로 갔다. 이름은 광교산에서 발견되어 그렇게 지었다고 하고,


그 녀석이 어디에서 왔는지 상상을 해보았다고 하며 외계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자, 정식은

"저도 외계에서 왔다고 하기엔 조건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저 태양계에서 가자 가깝다는 센터 우리 별을 떠올려 보았는데 아니라고 방향을 틀었네. 애당초에

내가 생각했던 과정이 학자들의 연구와 전혀 들어맞지 않았어."

"그렇습니다. 그럼 다음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정식은 뜸 들이지 않고 물었다.

"북극을 떠올렸어요. 극한대 지방에 살다가 빙하기가 도래하자 온갖 수단을 다하여 살려고 발버둥 쳤

겠지. 추워지면서부터 녀석들은 서서히 추위를 대비해서 몸이 변해갔을 것이란 추측이야."


걔 네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그것이 유전적으로 내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야. 그러다가 극심한

추위에서 먹이도 찾을 수 없게 되자 얼음 속에서 동면을 하기 시작했다고 보네."

어르신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그럴듯합니다. 저는 그렇게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말이네. 빙하기가

지나서 다시 활동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니

말이야." 하며 몹시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고뇌하는 모습이 되었다.


"네, 분명하게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면 비행기를 타고 있다가 떨어지게 된 거라고 할 수가 있는데,

어떻게 비행기에 탔는지 연결하기 어렵습니다."

"화물에 묻어서 비행기에 탔다고 하면 비행기문에 조금 틈이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 건 있을 수 없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풍뎅이가 빠져나올 정도의 틈이 벌어졌다고 하면 비행기는 벌써 난리가 났겠지요. 기내

압이 떨어져서 조종실에 신호가 뜰 떼니까요.


"하긴 내가 광교산에 있을 때 진간 비행기는 고도가 한 3 천은 되었을 거야. 실내압이 떨어지면 민감한

사람은 알아차릴 거야.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걸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나의 주장을 내려놓을

생각은 전혀 없네. 내 믿음은 확고하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어르신의 말씀을 존중합니다. 그때가 곤충들이 나올 시기가 아니었던 것이 확실하니까요. 그리고 놓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깨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가 없습니다."


누가 그걸 연구하겠지. 내 말이 허구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야. 그건 그렇고 정식이 학생

이 앞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해" 만성 씨는 정식에게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나는 학문의 연구와는 거리가 멀긴 해도 알고 싶은 것은 아주 많아요. 저 풍뎅이는 턱이 나왔다가 들어

갔다 하거든. 필요에 따라 먹이를 잡을 땐 나오고 쉴 때는 들어가는 거지. 그래야 조금이라도 몸의 열을

빼앗기지 않을 테니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할게. 등에서 새끼를 길러서 떼어내는데, 그렇다면 몸속에서

영양을 보내주는 탯줄 같은 것이 틀림없이 있을 거야. 그 줄이 어느 기관에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것.

나르는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건데, 사육환경을 넓게 해 주면 나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거로

생각되네. 또 다른 종과 먹이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싸우는가? 배고프면 눈앞에 있는 큰 동물에게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이라고 짐작하네.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오래 살아온 종이라면 충분히 그럴 거라고

짐작할 수 있거든."

정식은 노인의 얘기를 들으며 이분은 상당히 깊은 상상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자기가 아직 계획하고

있지 않은 것을 이미 생각하여 말해주는 바를 매우 고맙게 생각하였다.


"물에도 빠쳐서 어떻게 물 밖으로 나오는지도 봐야 할 행동이고, 먹이를 극히 제한해서 공급했을 때

동종끼리 도 잡아먹는지. 사마귀처럼 말이야."

정석은 "예, 알겠습니다. 지금 적고 있습니다. 혹시 까먹을 까봐서요."

"그런데 정석이는 실험을 철저히 하면서 그 기록을 유튜브에 올릴 생각은 하지 않았나?"

정석은 바로 대답을 못했다. 아직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르신 말씀 알겠습니다만 아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곤충학회엔 가입되어 있나?"

"네, 가입했습니다. 석사급은 대개 다 가입합니다."

"내가 몇 가지를 물어봤네만, 정석이 이미 다 알고 진행 중일 거라는 거 짐작하고 있어. 노파심에서 이것

저것 늘어놓았네 그려. 앞으로 좀 바쁘겠네. 논문 쓰랴. 유튜브 하랴. 사람은 바쁜 게 좋다고 생각해.

일이 없으면 늘어져서 그 게 사람 사는 게 아니지. 내가 가끔 전화를 해도 될까?"

"네, 전화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학생들도 어르신 같은 분이 시혜를 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혜랄 것이 없네만, 나는 광교풍뎅이가 궁금해서 하겠다는 것이고, 정석학생의 연구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나 알고 싶거든. 늙은이가 알고 싶은 것도 많아 탈이야."

"보통 어르신들은 편히 지내시는 걸 즐기는데 어르신께서는 그렇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집 사람에게 늘 쓸데없는 거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 사람이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면 어디 그게 사람

인가? 세상을 살아가자면 관심 가는 게 있는 게 아닌가. 난 노인정에서 고스톱 치고 싶지는 않네."


밤은 깊어가고 할 얘기는 많았으나 두 사람은 잠을 청했다. 이튿날 1호 풍뎅이는 깨어나 있었다. 정석

에게 혹독한 실험을 했으니 단백질을 좀 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수원에서는 번데기를 주었었다고 알려

주었다. 정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야 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광교풍뎅이는 전부 인계되었다.

혹 정석이 너무 바빠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성장을 억제하는 것도 필요할 거라고 해주었다.

이제 다섯 마리가 되었는데 새기들이 늘어나면 관리하기도 벅찰 수 있어서였다.


정석은 알겠다고 했다. 만성 씨는 인사하고 학교를 떠났다. 정석이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으나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집에 돌아온 만성 씨는 광교풍뎅이의 기록을 점검하고 정리해 두었다.

한 편 제일대학교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전화하지 않기로 했기에 잘하고 있겠지

여기고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해가 되었다. 가끔 C대학에 연락해 보는 것 외에는 만성 씨의 일상은

독서와 등산 그리고 음악을 듣는 거로 이어졌다.

기력도 조금씩 달리는 것 같아 더 주의를 기울여 움직였다. 아내는 요즘 부쩍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

져서 걱정이다. 같이 산책을 나가자고 해도 싫다고만 했다. 다 귀찮다는 것이다.

때로는 잔소리를 해서 움직이게 하기도 했다. 식사 준비도 도와주는 횟수가 늘어갔다.

노쇠하면 힘 없어지는 걸 어쩌겠나 싶기도 했는데 좋다는 약을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 주기도 했다.

제일대학 쪽은 어찌 되어가나 생각해 보았다. 일류 대학이니 잘하고 있겠지 하면서도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건 광교풍뎅이를 받아간 인물로부터 시작되는 불신의 기미였다.


그래서 전화도 하지 않았다. 공연히 전화했다가 돌아오는 답에 어쩌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피해

의식 같은 것이 발동했던 것이다. 아마 만성 씨 자신이 대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탓일지도 몰랐다.

뭐 그건 그런대로 두면 될 것이라고 하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한 편 C대학에 전화하여 김 정석에게 광교풍뎅이의 사육이나 연구에 문제는 없느냐고 가끔 물었다.

그 질문도 어떻게 보면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석은 "제가 고되어서 그렇지 문제는 없습니다. 어르신께서 염려하시는 건 철저하게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시간 나시면 한 번 오셔서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어르신의 조언도 들을 겸 해서요."

"그런가? 어련히 잘하고 있을 까마는 사람의 일이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가 종종 생기게 마련이거든.

하여튼 이상 없다니 안심이네. 건강은 어떤가?"

연구에 몰두하지만 말고 건강도 챙기라는 의미였다.

"네, 건강합니다. 잠을 조금 덜 자는 방법으로 하고 있는데 아무 이상 없습니다. 어르신께서 염려해

주시는 덕분인가 합니다." 예의도 바르다.


"건강을 잃으면 연구도 명예도 돈 버는 것도 다 헛것이 되는 거야. 그럼 수고하게. 언제 한 번 갈 게."

"네, 그러셔야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두 번 해가 바뀌어 봄철이 되려고 하는 때였다. 하루는 tv뉴스를 보다가 곤충의 피해가 우려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곤충이라고 하니 관심이 생겼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발표되지 않은 종류의

곤충이 나타났으면 이 것이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자라고 있는 채소를 먹어서 농사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곤충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광교풍뎅이 같이 생긴 것이 아닌가? 그 화면을 보는 순간 만성 씨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아 얼굴이 굳어졌다. 옆에 있던 정 여사는 남편의 표정을 보고는 내심 걱정을

하지만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이럴 때 말을 잘못하면 화를 내기 쉽다.

제일대학에 전화는 하지 않았다. 벌써 일이 벌어져서 거기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을 것이며

사고의 원인을 찾는데 분주할 것이고, 거기에 전화한다는 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게 뻔했다.


만성 씨는 고민에 빠진다. 인수자에게 거듭 위험의 가능성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일단 문제의 곤충을

준 것만은 사실이므로 자기와 무관 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관리했길래 풍뎅이가 탈출하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수한 사람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한 구석에 깔끔한 마무리가 안 되어 있음을 느꼈었다. 그 건 일류대학의 학생이라는 프라이드에서

묻어나는 교만함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더 자세한 내용을 말해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혹 더 많은 말을 했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말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니

이러한 탈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가져간 이후로 전화도 하지 않았다. 무슨 감정

같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못 배웠지만 자존심은 강했다. '내가 뭐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며 관계를 이어

나가겠는가? 후회도 했지만 이제 다 지나간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었다. 아무튼 사달이 났으니 어떻게

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급한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금세 나올 리 없었다. 사태가 흘러

가는 추이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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