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실험
만성 씨는 전 직장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한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김 창한 씨! 오랜만이오.
그간 별고 없으시고?" "네, 잘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세요?"
"덕분에 잘 있어요. 아직 걸어 다닐 수는 있으니 건강하다고 해야지요. 허허."
"그런데 어떤 일로 전화하셨어요?"
"아, 예, 다름이 아니고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서 했는데, 한 번 찾아가서 얘기 잠깐 해도 되겠어요?"
"무슨 부탁인데요?" "아주 작다면 작은 부탁인데, 언제 근무합니까?"
"뭐 주간 근무이니까 내일도 근무하지요."
"그래요? 그럼 내일 내가 찾아가지요. 잠깐이면 돼요. 부담 갖지 마세요."
"알았습니다. 내일 만나죠."
퇴직한 다음에 다른 일을 하다가 본래의 전공을 살려 냉장회사에 취직을 한 사람이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노령에도 취직을 한다는 사실이 대단하였다. 계약직이던 임시직이던 쉬운 일이 아닌 게 현실이다.
퇴직 후에 누구에게도 부탁을 한 일이 없었는데 이 번엔 어려운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있는
회사엔 -40도의 냉동창고가 있었다. 며칠만 넣었다가 꺼내면 되는 것인데 회사에서 알면 당연히 안된다
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담을 무릅쓰고 부탁하려는 것이다.
냉동창고 한 구석에 두었다가 꺼내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측에서 쉽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다음날 영동고속도로 양지 진입로를 훨씬 지난 곳에 있는 냉동창고로 갔다. 김 창한 씨는 정문으로 마중
나왔다. 늘그막에도 일터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반갑게 인사하고 나서 부탁의 내용을 말
했다. 아누 단단히 몇 겹으로 싸 놓았으니 어떤 문제는 없는 거라고 했다. 부담이 되면 거절해도 괜찮다
고 헸다. 잠깐 보더니 알았다고 두고 가라고 했다. 3일 두에 오겠다고 했다.
내용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커다란 곤충이라고 하고 영하 40도에서 살아남는지 실험을 하는 거
라고 해주었다. 그는 엷은 웃음을 흘렸다. 노인네가 별 실험을 다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삼일 뒤에도
김 씨가 근무라니 잘됐다. 3 일 뒤에 맡긴 것을 찾아왔다. 김 씨에겐 고맙다고 하고 식사 한 번 하자고
했다. 만성 씨는 욕심에 가능하다면 액체질소에 넣어보고 싶은데 방법이 당장엔 없었다. 자기의 가설이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광교풍뎅이가 한 마리뿐이라면 극저온의 실험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끼도 나왔으니 개체 수
가 늘어났고, 극저온의 실험이 세계에서 처음이 아닌 것이다. 몇 해 전에 물곰이라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동물을 우주에 까지 가지고 가서 실험한 것이 뉴스에 나왔었다. 그 녀석은 거뜬하게 살아났다고 했다.
물론 구조의 차이가 있긴 한데, 광교풍뎅이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녀석이라면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다시 사육통을 사용하게 됐다.
광교풍뎅이를 봉함에서 풀고 깨어나는데 얼마나 걸리는가 시간을 재어 보았다. 만성 씨는 자기의 실험
이 타당하다는 것이 입증되면 그다음엔 어디에 부탁을 할까 궁리하다가 C대학에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당장은 어려웠다. 이제 풍뎅이 가져간 지 얾 되지도 않았기에 시일이 얼마간 지난 다음에 알아
보기로 했다. 만성 씨는 산에 가서나 집에 있거나 풍뎅이가 어떻게 광교산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게 일이 되었다. 외계에서 왔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머나먼 우주 어디에선가 왔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센터 우리 별이 4.2광년
이라는데 멀기는 멀다. 빛으로 4년 하고도 석 달이 더 걸린다는 얘기가 된다. 지구에서 인간이 화성을
가자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 속도로 간다면 얼마가 걸릴까? 이 건 상상이 좀 힘든 거리긴 하다.
그러나 일단 프록시마 센터우리를 기준으로 하여 얘기를 시작하자. 센터 우리는 행성을 가지고 있는데, 세
개중 중간 거리를 돌고 있는 센터우리 b가 골디락스 존이라고 한다. 별에서 너무 멀면 물이 얼은 상태로
만 존재할 것이고 너무 가까우면 물이 전부 증발해 버릴 것이다.
골디락스 존은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런데 센터 우리 별에서 강력한 방사선이 방출되고
있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상상을 해 가다가 천문학자들이 알아낸 사실을 정면
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거기서 막혔다. 허, 참! 저 녀석이 나를 어지럽게 하는구나. 그래도 만성 씨는 상상
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달에서? 화성에서? 걸핏하면 사람들은 화성을 들먹이곤 하는데, 화성에선 설령
생명체가 있다고 해도 지구까지 도달할 운반체가 없을 테고 풍뎅이 혼자 날아올만한 근거가 매우 희박
하다.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지구 내에서 장소 이동만 한 것이다. 지구의 빙하기가 만 년 주기로
온다고 한다면 지역을 지적할만한 곳은 북극권이 된다. 북극권의 어떤 지역이 만년설이 녹아서 생물이
살 만한 환경이 되었을 때 풍뎅이는 거기서 살았다. 수천 대를 이어서 살아왔다고 봐야 한다. 그러다가
빙하기가 다시 도래하여 차차 추워지자 풍뎅이는 혼신을 다하여 살아남을 수단을 터득했을 것이다.
자연히 대를 이어 내려올 때 유전인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하나 둘 갖추게 되고 자손들에게
물려주었을 것이다.
그 건 당연한 과정이라 할 것이다. 환경이 열악했으니 살아남기 위해 공격성이 강하게 되었고, 따라서
주변의 생물들에게 강하게 군림하게 되었고, 어떤 종도 광교풍뎅이를 건 드리지 않게끔 강해서 열악한
세계에서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남쪽으로 가면 좀 더 따뜻한
지역이라 살아가기가 수월 했을 텐데 왜 이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대대로 살아온 지역 밖에는
몰랐다고 해도 움직이는 생물은 저절로 옮기는 재간이 있는 것인데 얘네들은 그걸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식물을 보아도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넓게 퍼져 살아왔는데. 그럴듯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녀석들은 오로지 살던 곳에서만 견디어 보려 한 것일까?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떠날 수 없었던
것일까? 말하자면 이 녀석들만 아는 그리고 필요로 하는 무엇이 있었을지 모른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빠져 있던 만성 씨는 광교풍뎅이가 있는 사육통을 본다.
저 녀석이 어쩌면 내가 계획하고 있는 실험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만성 씨는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눈에 띄어 자기에게 존재를 알린 풍뎅이에게 주검을 준다
는 것이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미물일지라도 하나의 생명이 순식간에 목숨이 끝난다
는 사실은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상상을 증명하려는 결정이 오늘의 난제를 가져온 것이
다. 광교풍뎅이에게 미안했다. 존재란 없어지기도 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낀다. 달리 생각하면 허무한
것 아닌가? 하지만 곧 생각을 고친다. 모든 생물은 최선을 다하여 생을 영위해 가며 자손을 퍼뜨리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광교풍뎅이도 그런 원칙을 잘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엔 허무가 끼어들 틈이 없다. 허무란 인간의 의식 세계가 넓고 깊어서 생각해 낸 거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실험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아파트 앞 큰 거리의 가로수는 무성하여
키가 30미터는 될 성싶다. 모든 산 것들은 힘차게 일하고 뻗어 나가고 있는 철이다. 그 속에 나는 무얼
한다고 꿈틀대고 있는 것인지. 어느새 착 가라앉는 내면의 의식을 발견한다. 내려앉기 시작하면 한 없이
주저앉아 일어날 줄 모르는 허약함을 알고 있으나 어쩌랴. 때로는 그런 시간도 필요한 것이라고 스스로
핑계를 댄다.
만성 씨의 사고를 방해하고 괴롭히던 실험은 예상대로 결과가 나왔다. 풍뎅이는 멀쩡하게 깨어났다.
영하 40도를 이겨내고 살아난 것이다. 나름대로 한대자방에서 온 게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것이 끝이 아님을 내면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더 극저온에서 실험해야 한다는 애초의 계획이 아직
살아있는 거다. C대학교로 연락했다. 가져간 지 두 주가 났다. 김 정석이 받았다.
"김 정석 씨 맞아요?" "네, 김 정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반가워요. 그래 광교풍뎅이는 잘 살고 있나요?"
"네, 많이 컸습니다. 등 부분 색깔도 진하게 변했고요."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내가 전화한 것은 다름이 아니고 뭐 좀 부탁하려고 하는데--"
"무슨 부탁이신데요?" "혹시 실험실이나 같은 과 내에 액체질소 취급하지 않아요?"
"여기는 없습니다만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내가 모체 한 마리를 가지고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실험을 해 보려고 하는데. 액체질소가 필요합니다."
김 정석 씨가 좀 알아봐 줄 수 있겠어요? 작은 통이면 충분하고 한 시간 동안 아니 반 시간만 담그면 돼요."
"네, 그럼. 제가 알아보고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액체질소를 쓰는 곳이 있을 것도 같아서요."
"그래요? 있다면 다행이겠네요.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합니다. 액체질소에 담글 것의 크기는 사방 10
센티미터 정도가 되는 육 면체로 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드리겠습니다."
"부탁할게요. 수고하세요."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부탁한 것인데 긍정적으로 대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반드시 실험을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긴 하다. 그냥 대학교에 넘기고 '이런 실험을 해주기 바란다. 그래야 얘가
어디에서 왔는지가 확실 해진다는 의견을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기왕에 내가 발견한 것이고
또한 궁금해서 못 견디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요 것만큼은 내가 확인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억제당했던 연구에 관한 갈망이 살아 나왔던 거다.
산은 언제나 거기 있고 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 녹음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짙푸른 녹색은
여름의 열기와 함께 사람을 헐떡이게 할 것이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쁠 것도
없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였다. 김정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생물공학연구실에서 액체질소를
사용하는데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성 씨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내일 가면
되느냐고 물으니 가능하다고 했다. 수일 내로 사용한다면 가능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럼, 내일 일찍 출발하겠습니다. 내일 만나요."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마워요." 바로 배낭에 짐을 꾸렸다. 광교풍뎅이에겐 미안했지만 할 수 없다. 과감하게 포장
을 시작했다. 종이 몇 겹으로 싸고 지퍼 팩에 넣어서 수건으로 싸고 묶었다. 다시 작은 통에 신문지를
구겨서 충격에 견디도록 했다. 테이프로 마무리한다. 정여사에게는 며칠 걸리지 모른다고 하고, 가면
전화하겠다고 했다. 정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고속터미널에서 김 정석의 차로 C대학교로 갔다. 교내는 널찍하고 깨끗한 건물들이 여러 동 있었다.
마침 진 교수가 있어 인사를 나눴다. 친절하게 대해주어 고마웠다. 김 정석과 함께 액체질소가 있는 연구
실로 가서 짐을 꺼내고 바로 국자에 포장된 걸 얹어 액체질소 통에 넣었다. 30분을 잡았다. 빌려 쓰는
처지여서 시간이 더디 가는 것만 같았다. 김 정식과 그간의 얘기를 나눴다. 아직 날개 짓은 하는 건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비디오로 촬영하느냐고 물으니 그 생각을 못 했다고 한다. 당장 구해 보겠다고 했다.
그 정도는 되어 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시간이 되어 포장물을 꺼냈다. 몹시
조심스러웠다. 자칫하면 부숴 져서 실패로 끝날 수도 있었다. 가져간 주머니에 담았다. 연구소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넘어져도, 부딪쳐도, 떨어뜨려도 안 되는 것이다. 천천히 걸어서
김 정식이 연구하는 실험실에 도착한다. 한숨을 돌렸지만 끝난 게 아니니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김 정식과 상의하여 통째로 그냥 시간이 걸리더라도 녹을 때까지 두기로 했다. 김 정석은 어디서 급하게
비디오카메라를 가져오더니 새끼들이 있는 사육통에 맞추어 카메라를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