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기보살(연재 소설)
서서 또는 앉아서 염불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살아서 절에 다니지 않았지만 늦으나마 여기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기도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들이 그저 신음을 내뱉고 있는 것이
안타깝게 보였다. 그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하면 무어라 할까? 아마 욕이 돌아오고 발길질로 응답할 것이다.
이렇게 암흑 속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때 뒤에서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다보니 열 살이 채 안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고 있었다.
지운이 왜 그러느냐고 엄마를 놓친 것이냐고 물으니 아이는 "네, 엄마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여기 올
때는 같이 왔는데."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지운은 생각한다. 여기가 지옥인데 왜 아이가 왔을까? 참
이상 하기도 하다. 어떤 남자 하나가 아이에게 다가와서는 험악한 표정으로 윽박지른다.
"야! 여기가 어디라고 울어대는 거야. 엄마를 불러대면 네 엄마가 생겨나냐?" 하면서 아이를 때린다.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면서 "엄마! 엄마!" 하고 외치고 있었다.
지운이 안 되겠다 싶어 아이를 보호해 주어야 하겠다고 아이를 막고 나섰다.
"왜 이러시오. 이 아이가 좀 울었다고 그렇게 패면 어떻게 해요?" 아이를 자기 앞으로 당기고 두 팔로 감싼다.
그 남자는 식식거리면서 조금도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말했다.
"이 늙은이가 왜 나서는 거야. 이 애가 당신 손자라도 되는 거야? 비켜"
소리 지르며 지운의 뒤에 있는 아이를 잡으며 거칠게 다가섰다. 지운은 "안돼, 아이에게 손대지 마시오."
하며 막아섰다. 그러나 남자는 지운을 잡아 옆으로 내동댕이친다. 지운은 하릴없이 넘어져 구른다. 그러나
바로 일어서서 아이를 잡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힘이 달려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거칠고 우악스러운 남자는 지운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 있던
영혼들이 지운에게 달려들어 폭행에 가담했다. 고통뿐인 시간에 폭력이라도 써서 고통을 잊어보려는 것일까.
갖은 욕을 하면서 지운을 발로 차고 지지 밟았다. 지운은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이를 감싸고 뭇매를 감당하였다. 한 참 난리를 치던 무리들은 제풀에 지쳤는지 물러섰다.
지운은 잠시 꼼짝 못 하고 있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지운은 상체를 일으킨 다음 아이에게 물었다.
"얘야, 괜찮으냐?"
"할아버지 덕분에 괜찮아요. 할아버지, 다친데 없으세요?" 하며 지운을 걱정한다. 지운은 힘없는 목소리로
"나는 괜찮다. 여기서는 우는 것도 안 되는 모양이다. 저쪽으로 가자"
일단 그곳에서 멀어지기 위해 움직였다. 여기 지옥에 떨어져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밟히고 했는데 이번처럼
험악하게 폭력을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영혼에게도 아픔이 심하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아프지 않다면
지옥이 아닐 것이다. 온갖 고통을 주기 위해 여러 군데의 지옥이 만들어져 잇는 것이니까. 얼마쯤 걸어가서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아이는 걱정이 되어 지운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지운은 한 가지 일이 생겼다.
이 아이를 지키는 것이 새로운 일이고 중대한 임무인 만큼 사력을 다해 지켜 주겠다고 결심한다.
막막 하기는 해도 마음을 굳히니 조금 힘이 솟아났다. 뉘 집의 자손인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를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지운이 아이에게 물었다.
"너 이름이 무어냐?"
"법기라고 합니다."
"법기라--- 이름이 특이하구나. 하여튼 앞으로 법기라 불러야 하겠구나. 나는 지운이라고 불러라."
"네, 알았습니다. 지운 할아버지" 하고는 웃었다.
이름이 저나 할아버지나 별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지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은 지상에서나 볼 수
있는 해맑은 웃음이었다. 지옥에 와서 처음 보는 아이의 순수한 미소를 보고 '이 순간만큼은 지옥이 아니다'
하고 혼자 조용히 찬사를 보낸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운은 따라 웃는다. 예서도 웃는 순간이 오다니 희한
하기도 하여라. 지운은 두 손을 합장하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몇 번을 되풀이하여 중얼거렸다. 이를 본
아이는 지운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누구에게 기도하셨어요?"
"부처님께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했지"
그러자 법기 소년은 지운을 따라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부처님, 아미타볼, 관시음보살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저절로 부처님을 찾았다. 지운은 법기에게
"여기 오기 전엔 절에 다닌 모양이구나."
"네, 부모님이 절에 다니셔서 따라다녔어요." 하고 대답했다. 지운은 마음이 차분 해지며 명상이 하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부터 명상을 하련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온갖 잡념이 일어나서 견디기 힘들어."
"네, 할아버지, 저도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무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무어라도 해야 되지 않겠니?"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는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영이 달라졌다. 눈을 뜨면 수 없이 퍼져있는 영혼의 군상들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것은 죽은 아내의 모습과 아이들-- 아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슬퍼하면서도 일상을 살고 있겠지. 그래야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아가야 하니까. 아무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떠나온 저 세상의 일들이 들고일어났다. 그 상념들은 귀로 들리는 괴로운 군상달의 신음과 뒤
섞이면서 묘하게 지운의 머리를 휘감아 가고 있었다. 눈을 떠본다. 법기는 반듯하게 자리 잡고 앉아 합장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암송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조각으로 보였다. 전에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광경
이었다. 티 없이 맑은 영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 상황이 지옥이 아니라 천상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
이라 느껴졌다.
아이의 순수한 기도는 매우 어려운 청원도 이루어질 것 같이 여겨졌다. 이 순간이 되도록이면 길게 이어지기를 빌었다. 그러나 곧 지운의 염원은 스러지고 말았다. 양쪽 벽면에 횃불이 켜지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퍼져갔다. 법기 소년도 눈을 뜨고 가만히 횃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횃불은 두 개만 있었고, 곧 천정과 벽이 맞닿은 곳에서 가는 밧줄이 내려왔다. 영혼들은 더 크게 소리를 낸다. 그 밧줄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도구임을 알고 있었다.
법기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밧줄 있는 데로 가봐요."
"나는 가고 싶지 않다. 나 같이 힘없는 늘은 이는 저기 가면 밟혀서 깔리고 말 거야. 그렇지 않겠니?"
"그래도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아이는 재촉하듯 쳐다본다. 지운은 아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생전에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거의 가지 않았단다. 그런데 여기서 저 밧줄에 달려들겠나?
네가 가면 되겠지만 너는 너무 어리다. 밟히기 십상이지. 너에겐 권하지 않겠다."
밧줄이 땅에 닿기 무섭게 영혼들은 다투어 밧줄에 매달렸고 올라가다 떨어지고 무더기로 떨어지기도 했다.
승자가 없는 게임으로 보였다. 하나 같이
'나는 양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절대 물러나지 않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밧줄은 모두가 양보하는 마음이 있어서 차례로 올라가야 끊어지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한 발짝 물러서서 양보할 마음 가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밧줄에 달려드는 모든 영혼들이 이런 마음이라면 전원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건 밧줄을 내려 보내 준 존재의 희망일 뿐이었다. 지옥은 그렇게 선한 존재들 다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올라가다가 한 무리가 떨어지고 아우성이 계속되다가 밧줄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고
말았다. 두 군데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묵직하게 단말마가 들리고 소동은 끝났다.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르는 채.
지운과 법기소년은 멀리서 이 아수라장을 바라보았다. 지운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 것이 한계일지 몰라."
지장보살이 왔을 때, 밧줄이 내려왔을 때 기회는 두 번 주어졌었다. 왜 사람들은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내지
못할까? 그런데 나는 저들을 비판할 수 있는 거냐? 조금 전에 보았던 상황을 조금은 예상하고 달려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그 무리에 끼지 않았다고 하여 저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많은 영혼들을 설득할 능력도 없고 설득할 자신도 없는 하나의 무력한 영혼에 불과한 자신이 한없이
왜소하게만 느껴졌다. 법기가 지운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무얼 그렇게 생각하고 계세요?"
"내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는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말이다."
아이에게 말하기에 어려운 문제 같기도 했다. 순간 지운은 기력이 소진된 사람처럼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오지랖 넓은 것 아닌가?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수로 남을 설득 한단
말이냐. 그야말로 웃기는 얘기다. 정신 차려 이 노인네야!' 자신을 질타한다.
이때 법기는 아이답지 않은 말을 한다.
"할아버지,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희망은 항상 있는 거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지운은 아이가 기특하여 한 마디 한다.
"그래, 희망이 있지. 법기는 기특하기도 하네." 아이가 묻는다.
"할아버지 무슨 죄를 지었어요?"
"나도 잘 모르겠다. 살면서 이런저런 죄를 지었겠지. 막연한 대답이긴 하다마는, 남에게 피해 주는 짓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심한 말을 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단다.
지금 생각하니 그 사람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고 부끄럽기도 하구나. 참회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참선하는 자세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이는 잠시 지운을 보더니 다가가서 작을 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아까 밧줄이 내려왔을 때 사람들이 몰려 들어서 가운데는 비어 있는 것 같아요. 저기 보세요."
사람들이 드문 곳을 가리킨다. 지운이 아이의 손끝을 보니 정말 희미하게 듬성듬성한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다는 것이냐?"
"저리 가면 먼저번에 지장보살님이 나가셨던 보이지 않는 장막으로 갈 수 있을 거 에요."
이 말에 지운은 다시 한번 그쪽을 바라본다.
"우리도 나갈 수 있을까?"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갈 수 있어요. 할아버지, 지금 가요." 지운의 팔을 잡아 이끈다.
지운은 진가 민가 하면서 따라간다. 밧줄에 매달렸던 영혼들이 아직 넓게 흩어지지 않아서 공간이 있었다.
모여있는 무리들은 아직도 무너져 내릴 때의 충격으로 신음하며 쓰러져 있었다. 지운과 법기는 조심조심 사람들 사이를 걸어갔다. 보이지 않는 장막까지 얼마나 먼지 알 수가 없어서 마냥 걸어간다. 사람들이 점점
드물게 보였다.
뒤를 돌아다보니 가까이는 보였으나 멀리는 어둠 속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다. 지운이 있던 곳은 어느 쪽
이었는지 얼마나 먼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지운은 갑자기 자신과 아이가 험악한 곳에서 간신히 벗어났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심연으로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저 무리들 안에서 느꼈던 외로움과는 다른 고독 같은 것이 밀려왔다. 하지만 곁에는 법기가 있다.
자기가 아이를 지켜 주겠다는 책임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니 오히려 지운 자신이 든 든 해지는 거였다.
하나 보다는 둘이 낫다는 이치일 것이다. 법기가 지운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그래 가보자, 가면 무엇이 있으려는 지 모르겠지만." 하며 법기를 따라갔다. 법기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그것은 희망이 있다는 의미였다. 더 어두워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위가 조금 밝게 보였다.
"법기야 환 해진 것 같지 않니? 네 말대로 했더니 무언가 달라졌네." 둘은 계속 걷는다. 어딘지는 몰라도
자꾸 가면 희망이 보일 것 같았다. 차츰 환 해져 왔다. 빛은 지운에게 힘을 주었다.
법기가 잡은 손을 놓더니 앞으로 달려갔다. 완만한 언덕을 계속 올라간다. 법기는 벌써 보이지 않았다. 지운은 숨이 찼지만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할 때와 같이 벅찬 감격을 가슴에 안아보고 싶었다. 곧 둥글고 넓은 파란
하늘이 보였다.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뒤를 돌아다본다. 어둠 컴컴한 동굴이 저 아래에
있었다. 지운은 '내가 저 안에서 나온 건가?'
정말 나는 하늘을 보는 것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보았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넋을 잃고 서 있다가
자기가 지옥을 거쳐 나온 것은 자신이 이승에서 죄를 지었으므로 벌을 받은 것임을 확인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 분의 어머님과 아내에게 너무도 죄송하다는 죄책감에 울음을 터뜨린다. 기쁨에 환호해야 할 순간에 울어야 하는 자신을 어쩌지 못했다. 참았던 울음인가 한꺼번에 터진 물처럼 멈추지 않고 소리쳐
운다. 운다고 과거가 다시 오지 않는다. 지운은 울음을 그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법기가 보이지 않았다.
"법기야! 법기야! 어디 있니"
소리치며 작은 개울을 건너서 사방에 큰소리로 부른다. 한참을 부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스님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지운은 머리 숙여 인사하고
"누구신지요?"
조심스럽게 물으니 그 사람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법기 보살이라 하오."
그 말을 듣은 지운은 어리둥절하여 찬찬히 쳐다본다.
법기 보살이라니, 조금 전까지 함께 손잡고 걸어왔던 아이가 법기 보살이었단 말인가?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말을 하지 못하고 법기 보살을 쳐다보기만 하다가 얼른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몰라 뵈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무릎을 꿇었다. 법기 보살은 바로 지운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잘못이라니요. 지운 거사는 잘못이 없을 뿐 아니라 훌륭하였습니다. 몰라보는 게 당연하지요. 종종 변신술을
쓴답니다."
지운은 법기 보살의 말에
"법기 보살님, 말씀은 감사하오나 너무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보살은 다시 말을 잇는다.
"불법을 자기 딴에는 착실하게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타인을 위하여 자기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안습니다. 보살의 도로써 혼령들을 만나보면 다 알 수 있어요. 거사는 참으로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암흑지옥에 들어간 보람이 있으니 기쁩니다. 거사의 우는 모습을 보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지운에게 얘기를 청한다. 지운은 보살의 말에 잠시 주저하던 간단하게 자기의 인생역정을 털어놓았다.
나아 주신 어머님과 길러 주신 어머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과, 또한 아내의 우울증을 알면서도 멀리
떠나는 것을 막지 못한 자책에 서럽게 울었다고 하였다. 이어서 법기 보살에게 감사의 말을 한다.
"이렇게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는 지장보살님께 하세요. 지장보살님의 넓으신 자비와 법력으로 저의 조력을 원하시어 기꺼이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저 지옥 속에서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할만한 혼백이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동자가 되어
들어갔던 것인데, 지운거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중생을 도울 수 있는 혼령이에요. 이것이 지장보살
의 법력입니다. 지운 거사는 지옥을 나올 자격이 충분합니다.
사바세계에서 때는 묻었다 하나 뉘우칠 줄 알고 자기를 바로 잡을 줄 알며 실천하는 영혼이니 당연히 구제
하는 것이지요. 굳이 은혜를 갚으려 한다면 정진하여 주위에 있는 영혼들을 보살펴 주고 옳게 인도하는 게
은혜를 갚는 일입니다."
법기 보살은 지장보살에게 공을 돌리고 자신은 선을 실천하는 일꾼으로 자처하고 있었다.
보살님, 이제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길을 따라가면 중간계가 나올 거예요. 그곳은 극락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다른 세계랍니다. 거기엔 영혼
들의 자유가 있지요. 여러 영혼들과 함께 지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답니다.
어떤 일로 죄를 지으면 당연히 쫓겨나게 되고 다시 시왕들의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갈 수도 있어요.
지운거사는 거기에서 정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고 나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나는 금강산에 머무르면서 중간계와 지옥을 자주 방문 한답니다.
그렇기에 지운 같은 거사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홀연히 사라졌다. 지운은 무릎을
꿇고 법기 보살이 사라진 방향으로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였다. "남무 지장보살, 법기 보살, 법기 보살
법기 보살." 몇 번이고 머리 숙여 감사한 마음을 표하였다. 지운은 일어나 개울물에 몸을 담갔다.
시원한 물에 지옥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내고 싶었다. 지운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 물에 몸을 담근 채
하늘을 향하여 합장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큰 소리로 연호하였다.
산천초목이 정겹고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