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의 별빛

지리산에서

by 늦은구름

95년 시월, 산에는 가을이 물들어 가던 어느 날 나와 아내는 지리산을 종주하기 위해 구례읍에 가 있었다.

구례는 처음 가본 고장이었는데 저녁에 도착한 우리는 고을을 구경도 못하고 민박집을 잡기에 바빴다.

등산을 배울 적에 '등산할 때에는 가야 할 산이 있는 고장에 관하여 공부하고 유적을 답사하는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라고 배웠지만 늘 시간에 쫓겨 허둥 대느라고 대충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 말았다.


내가 시간에 민감하게 된 것은 직장생활과 취미생활을 병행하게 된 후부터였다. 번듯한 직장에서 일

하게 되었는데 불성실하다는 평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터에서는 지각이나 결근을 가장 금기시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에, 어디를 가더라도 직장엔 이상

없이 출근해야 된다는 대원칙이 항상 따라다니며 나를 채찍질했다.

'아무개는 등산한 다음 날엔 지각을 한단 말이야' 하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했다.


달리 말한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숨길 수가 없다.

우리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부랴부랴 예약해 두었던 승합차를 타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아침밥은 노고단

대피소에서 해 먹기로 했었다. 민박집에 너무 이르게 식사를 부탁하는 것도 부담이 되는 거였고,

아무래도 시간으로 봤을 때 민박집 식사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차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반시간을 넘게 올라갔다. 전조등 불빛은 승합차가 가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휘두르며 어두운 새벽길을 비춰 주었다. 그건 새로운 길을 내면서 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여

조금 모험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거대한 산줄기에 가로질러 도로를 잘 닦아놓은 것이 고맙기도

했는데 그만큼 등산객이 많다는 증거일 터였다.


차에서 내려서 상쾌한 기분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에 시야에 들어차는 건 가을의 청명한 하늘에 펼쳐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이로운 광경은 입에서 신음과 같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저 '와 아'하는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와 멈추지 못했다.

사방이 푸른 별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광경을 어떤 감탄사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 많은 별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크게 빛나는 별, 조금 옅은 빛으로 멀리서

반짝이는 별까지 다른 산에서 볼 수 있는 시야보다 더 깊고 더 넓은 하늘이, 보는 사람의 시야를 압도

하기에 충분하였다. 우리가 산에 있는 게 아니라 저 많고 많은 별들이 존재하는 우주 속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가슴에 젖어들었다.


눈이 부신 것은 아니면서 시려서 자주 깜박여야 할 것 같은데 결코 깜박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깜박여

지지 않았다. 깜박이는 시간이 아까웠다. 보고 또 보고 계속 쳐다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시간.

시각뿐 아니라 온몸이 별빛에 흠뻑 젖어 들어 밝고 푸르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시장천 불빛을

밝히는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그 많고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말을 안 해도 감탄

하면서 고마워했다.


몇 해가 안 되지만 어려서 시골에 있을 때 매일 밤에 보았던 별빛을 잊고 살아왔던 이유가, 그날 노고단

에서 본 별빛이 더 강하게 시각을 자극했을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움직여야 하는 시간 속에서 사는 인간이었다.


대피소까지 걸어가면서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내도 나와 다르지 않아, 이 순간은 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라고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 쳐다보며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아내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아마 지리산행을 계획한 나를, 그에 응한 자신을 대견해했을 것이다.

이런 찬란한 경험을 어디에서 어느 때에 맛볼 수 있겠는가?


대피소에 마련돼 있는 건물에서 밥을 지어먹고 부지런히 천왕봉을 향해 걸어갔다. 기왕에 왔으니

노고단운해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는가? 선교사별장 근처까지 가서 그 유명한 운해를 봤다.

신선이 따로 있을까. 운해를 내려다보는 우리가 곧 신선이었다. 임걸령을 지나 삼각봉을 밟은 다음

벽소령을 넘었다. 세석평전에 도착하니 대피소는 벌써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감히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들여보내 주지도 않았다.


해서 아예 질척한 곳을 피해 천막을 치는 게 상수였다. 화장실도 변변한 것이 없어 볼일 보는 영토를

점점 넓혀가는 추세였다. 그래도 밥 지어먹을 물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도중에 좋은 경치로 여겨지면 코닥크롬 필름을 넣은 카메라로 열심히 찍었는데, 이게 환등기로만 볼

수 있는 것이라 요즘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환등기가 고장이라 필름을 들고 비춰보면 그날의

지리산 경치가 그 속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곤 한다. 기대를 가지고 설레면서 능선을 밟았던 시간들이

다시 그리워진다.


세석평전에서 어렵게 일박을 하고 천왕봉을 밟았다. 약간 흐린 날씨라 산아래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삼 대를 이어서 적선해야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라고 했으니 그만큼 맑은

날을 만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근처 산장 역시 북적대는 터라 힘들어라도 민박촌까지 가기로

하고 중산리에 내려가서 짐을 풀고 노곤한 몸을 쉬었다. 종주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성취감은 덤

이었다.


다시 돌아볼 때 탈없이 종주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몸이 비교적 건강했던 것과 함께, 산을 향한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가을의 산행, 특히 노고단에서 보았던 경이로운 경험은

산행 중에서도 가장 값진 시간이었으며 보배 같은 기억으로 언제나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함께 떠 올리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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