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산행
그해 여름의 끝자락, 아직 한낮은 여름을 지겨워하는 마음으로 따가운 해를 피하는
철이었다. 그즈음에 나는 소설 '청산'을 읽고 일상과 거리가 먼 상상을 하면서 한가하면
도인이나 신선 같은 동떨어진 존재에 관한 생각을 때 없이 하고 있었다. 꼬집어 말하자면
현실을 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슴 깊숙한 곳에 꿈틀대고 있었던가 보다.
예전부터 자연 속에서 살아 봤으면 하는 엉뚱한 꿈을 꾸곤 했었다. 그렇다면 애당초 사회
에서 살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진즉에 충분히 겪어본 내가 왜 결혼까지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있는지--. 누가 내 속을 들여다보았다면 심하게 나무랐을 것이다. 그런데 신선에
관한 책에는 나이 60세 까지는 가능성이 있다고 어느 도인이 말했다.
그러니 나도 가능하지 않으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방면에 일생을 바친 인물, 즉 신선의
말이니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공상은 자유로운 마음 가짐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신세계에서 자유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어떤 목적에서 결과를 내려고 안달하는 과정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상이란 무한 세계를 수시로 넘나 들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어지고 일터에선 날이 멀다 하고 책임을 강조하던 시절에,
때로는 주위의 시선과 나에게 던져지는 언어가 나를 코너에 몰아넣고 무거운 압력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발심이 작동하여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은근한 바람이 한 권
의 책으로 인하여 공상과 사색이 시작되었고, 나아가선 현장에 가서 신선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 같다.
내가 도를 닦지 못한다면 도에 열중한 사람들을 찾아가 보자고 마음을 바꾸었던 거다.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는 명분이야 나름대로 충분했다. 아내에게는 산에 간다고 했으니
아내는 의례 그러려니 했다. 아내도 내 권유로 등산에 취미가 붙은 지 몇 년이 지났으니
배낭을 메고 나가는 나를 말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목적지를 태백으로 정해놓고 출발했다. 전에 태백산에 갔을 적에 마음에 정해둔 바가 있었
기에 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버스로 태백시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수원에서
산악회원으로 등산을 함께 하다가 태백시로 간 권군을 찾아갔다. 사람이 무던하고 부지런
하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젊은이였다. 지금은 어떤 규수가 이 순딩이를 잽싸게
채가서는 결혼하였다는 소식을 진작에 들었었다.
그가 왜 멀리 태백시까지 갔는지는 모른다. 건축기사였는데 아마 누군가 사람을 옳게 보고
데려간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 아직 미혼인 그 친구는 사무실 건물의 다락방
에서 지내고 있었다. 다락방에 올라가 권군과 지난 얘기를 잠깐동안 하고 나서 장거리
여행에 고단하여 곧 잠에 떨어졌다. 권군에게 04시에 깨워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어김없이
4시에 깨워 주어서 계획대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일찍 천제단에 도착해야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골을 능선을 타기로
했다. 마을에 들어서니 집들이 많지는 않았고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 집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방에는 앳된 아가씨가 앉아 있었는데, 미동도 하지 않고 눈도 깜박
이지 않았다. 혹시 정신이 잘 못된 사람 아닌가 추측하였다. 주위에는 무속인이 굿을 하고
있었고 한 손에는 방울을 들고 다른 손에는 종이로 만든 채를 들고 무어라 열심히 주문을
외우면서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은 아가씨가 귀신에 씌어 병을 앓고 있는 것을 굿으로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아가씨는 정신이상이 된 사람 같이는 보이지 않았다.
더 보고 싶었지만 나에겐 천재단까지 늦지 않게 가야 하는 계획이 있어 그 자리를 떠야 했다.
새벽녘에 굿을 하는 건 처음 보았지만 아무튼 정성을 들이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마을을 지나고 나니 산속은 칠흑 같은 어둠뿐, 누가 옆에서 주먹을 휘둘러도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산길은 돌이 어지럽게 박혀 있어서 한 발자국을 떼는데도 조심스러웠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고정하고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했지만 겨우 몇 발자국 거리만
비춰 주는 밝기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 박힌 조그만 바위에 붉은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려 놓은 게 있었고, 거기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차라리 촛불이 없었더라면 덜 무서웠을 것이다. 암흑의 공포는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뿐이 아니라 사방에서 무언가로 압박을 가해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거기에 사방은 어두운데 촛불이 타는 곳은 아니 내가 비추는 랜턴 불빛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아주 쉽게 바라볼 수 있고 나는 상대를 전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서움의 강도를 더
했다.
나 자신이 겁이 많은 탓이려니 해도 도움이 안 되고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그렇다고 랜턴
을 꺼버리고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내가 무슨 정성이 뻗쳐서 산골에 까지 와서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거냐 하는 넋두리를 속으로
삼키며 걸었다. 어느 해였던가 정기산행이 잡혀 있었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아 혼자 야간 완행
열차를 타고 황간역에서 내려 백화산 포성봉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새벽 두 시경에 한 겨울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큰 개울에 얼음이 강추위에 '텅, 쩌렁' 하며 터지
는 소리는 공포감에 두리번거리던 나를 더 조여들게 하였었다. 그때는 희미하게나마 달빛이
얼어붙은 대지와 개울의 어름장을 비춰주고 있었지. 그 겨울의 산행에 비하면 태백산 산행은
날씨로 인한 걱정은 하지 않았던 수월한 행군이었다. 늦기 전에 정상에 올라가, 기도 하는 사람
들의 동태를 봐야 한다는 생각뿐이어서 등에서 땀이 나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경사진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다행인 것은 오솔길이라도 있다는 거였다. 젊었을 때는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가지 하는
객기도 부렸었는데. 내가 무슨 장사라고 길을 만들며 산행을 한다는 생각을 했는지 무모하기
짝이 없던 게 우습기도 하다. 내 숨소리와 등산화가 땅을 밟는 소리만이 산속의 정적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시간은 예상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여명이 다가온다 싶을
때 주위가 훤히 밝아왔다.
능선이며 나무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를 감쌌던 두려움 같은 것은 멀리 가버렸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비탈길 오르기가 내 컨디션과 평행을 이루는 것과 같아 힘은 들어도 안정
되어갔다. 꽤 멀리 왔는지 닭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데 한 청년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먼저 인사를 보냈다. 좀 외로운 산행에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산행을 일찍 시작하셨네요."
"네, 좀 일찍 나섰습니다. 그런데 산행을 나온 건 아닌 것 같은데--"하고 물으니
"움막에서 지냅니다."
그는 움막에서는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서 조금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묻지 않아도 자기
얘기를 해주었다. 움막에서만 있는 게 아니고 집을 왕래한다고 했다. 지금 집에 전화하려는데
잘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가 서 있는 지점이 1미터 가양 높은 바위였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나 겨우 터진다고 했다.
몸은 날렵해 보였고 얼굴은 맑고 깨끗하였다. 기 수련의 결과 이겠거니 했다.
나는 그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얼마나 되었습니까?"
"두 해가 넘었습니다." "그래 얻은 것은 있나요?"
"아직 없습니다. 정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예, 그렇습니까? 수련을 계속할 생각입니까?"
"네, 계속할 것입니다. 요즘 혼란스럽습니다. 되는 건 없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의 부족함을 실토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있는
그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동년배들은 취직하여 일에 열중할 터인데 그는 어쩌
다가 사회와 동 떨어진 산속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기왕에 들어선
길을 끝까지 가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와 헤어지면서 부디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해주었다. 그는 나에게 성명과 핸드폰번호를 적은 종이쪽지를 주었다.
그 건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읽혔다.
그 종이는 잘 간직하였는데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잘 있을 것이다. 이따금 눈에 띌 때도
있었다. 하나 전화하지는 않았다. 딱히 이유는 없다. 전화를 건다면 성공했는가를 묻게 될
것이고 가부간 에 답을 들을 터인데, 잘 되었다면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 안 되었다면 그에게
무안을 주는 것 밖에 안될 것이다.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세월이 지나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가 전화를 하려는 데가 집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산에 들어와서 수련하는 사람이
집에 자주 전화 한다는 건 부모님에게 자기의 안전을 고하기 위함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수련 외에 신경 쓸 일이 있다는 건 꾸준히 해야 할 바를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오로지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할 것을 못하는 것이라고,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그가 선택하고 실행해 나가야 하는 것. 지금은 그가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깨달음을 얻어 많은 사람들에게 밝은 희망을 주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능선길을 계속 걸었다. 날이 완전히 밝았고 곧 해가 솟았으나 엷은
구름이 끼어 그림자를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능선길은 계속되었고 문수봉을 지나서는 고도의
차이가 별로 없는, 걷기에 힘이 안 드는 산길이었다.
좌로는 경북 봉화군, 우로는 태백시인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였다. 멀고 가까운 봉우리
들과 숲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걸었다. 힘이 덜 드니 저절로 숨결은 안정되었고 주변의 경치
를 감상하기에 알맞았다. 옆에 누가 있다면 주고받는 대화가 있으련만, 대신에 단독산행은
걷는 중에 사색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산꾼들은 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늘해서 산바람을
마시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구름의 사열을 받는 것으로 만족한다.
오늘 산행 목적이 도 닦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인데 과연 몇 사람이나 만나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헛 산행이 아니길 바랐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도를 닦는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본질을 알게 되면 그걸 해결하는 능력을 갖으려고 정신을 단련하는 것일
터인데, 몸보다는 정신적인 수련이 주가 될 것이다.
단군이 나라를 세울 때부터 기의 단련이 보편화되어 있었다고 했다. 일반 백성들까지 수련이
생활화되어 나라가 융성하였고, 범죄가 없는 사회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심신을 단련하는데 게을러지고 따라서 국운이 쇠하여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 이름을 이어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몇몇 사람만이 명맥을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은 기를 수련하는 단체가 여러 군데 생겨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으로 알고 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도중에 간식을 먹고 이 십분 정도를 걸었을까 천재단에 도착했다. 디귿자 형으로 쌓아 올린
단 안에는 과일이 돌 위에 올려져 있었고 사람은 없었는데, 주변에는 치성드리는 여인이
있었다. 네시 조금 넘어서 출발한 나보다 빨랐던 모양이다. 아니 밤을 새웠는지도 모른다.
그 여인은 무엇을 빌고 있었을까,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게 해달라고? 아니면 나라의
안녕을 빌었을까. 나는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열과 성을 다하여 신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어떤 비판도 참견도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신이 존재하든 안 하든 남이 보든 안보든 치성을 드리는 그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거대종교만이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몽매한 대중을 현혹하여
사리를 취하는 무리는 경계하고 배척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정상이 아닌 곳에서도 치성을 드리고 내려가는 팀이 꽤 많다
고 근래에 산잡지에 실려 있는 걸 보았다. 태백산은 기도드리는 성스러운 장소로서 단연 으뜸
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출발해서 장군봉을 거쳐 주목군락지에 이르러 끼니를 해결하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야외용 밥을 챙겨 갔었는데, 설명서 대로 물을 조금 붓고 열나는 걸 확인하고
밥봉지를 담가 기다리니 따끈한 밥이 되었다. 물이 부족하여 남은 산행에 마실 물을 조금
남기다 보니 충분하게 물을 채우지 못해 약 삼 분의 일이 데워지지 않아 그대로 먹었다.
밥이 다 된 부분은 먹을만했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고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데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 오솔길뿐이라
지도도 보지 않고 내려가다가, 숲에서 사람들이 있는 걸 발견, 한 참 둘러보았으나 비닐로
움막을 친 것 외에 신통한 것을 볼 수 없어 발길을 돌렸다. 태백산 산신 그림을 모신 조그만
당집이 있었고,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걸 보니 습기를 말리기 위한 것 아닌가 했다.
산신령님은 대개 머리칼과 수염과 눈썹이 하얐다. 젊은 산신령은 없나 보다.
도중에 지도를 보니, 능선길만 따라 내려갔는데 중간에 차도까지 더 가까운 길이 있었다.
하여튼 사길치를 거쳐 화방재에 도착했다. 도로 가까이 집이 두채 있었다. 하나는 구멍가게
였고 한 채는 여염집 같았다. 구멍가게 마루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저만치 떨어진 집에 사람들이
네댓 명이 있었다. 그중에 큰 키에 머리는 길어서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남자가 있었다.
심상치 않아 자세히 보니 머리칼이 새까맣고 십 여미터 떨어진 곳이지만 전혀 백발이 섞여
있지 않은 걸로 보였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척인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마침 승용차
한 대가 도착해서 그들을 태워갈 모양이었다.
구멍가게 주인은 "저 사람이 문 도사"라고 하면서 26년 동안 도를 닦았다고 말했다. 그때
흑발의 도사는 나에게 시선을 향하고는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잠깐동안 맞 처다 보았으나 이내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어찌나 안광이 강하던지 계속하여
볼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눈싸움에 진 것이다. 내가 다시 쳐다보니 잠시 후에 그는 시선을
돌리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더니 승용차를 타고는 태백시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차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좋은 기회였는데 몹시 아쉽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만일 혼자 있었다면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을 것이다. 하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여럿이
있는데 가까이 가서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화가 되었다면 질문할 것이 많았었다.
수련하는 곳은 어디며, 하루에 몇 시간씩 수련을 하는지, 왜 도를 닦게 되었는지,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능력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 현재 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수련 시에 방해하는 무엇은 없었는지, 겨울엔 어떻게 추위를
극복하고 있는지,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도 계속 수련을
할 계획인지, 현재 제자는 있으며 몇 명이나 있는지, 등등 알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다음에 오면 그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태백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나는 서울행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아쉬움이 남아 속을 끓였다. 전국 명산엔 수련하는 사람
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기회가 되면 가서 그들을 만나 대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건
생각뿐이었다. 이제는 의욕이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게 되었으니 허욕이 되고 말았다.
검은 머리 길게 늘어뜨린 그때의 문도사를 가끔 떠올려 보곤 한다. 그래도 시도는 해보았고
눈으로 확인까지 하지 않았나. 나의 태백산 산행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몇 퍼센트는
이루었다고 좋게 봐줄 수 있을까? 아주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조용히 변명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