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가' 하는 의문은 오래된 담론이고 아마도 모든 철학자를 넘어 대부분의 사람이 한 번은 고민해 본 주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은 이 문제를 삶의 목표, 행복, 우리의 기준으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생각해 보겠다.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아주아주 근본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아마 우리의 유전자를 더 많이 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위해서 성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자신의 오랜 생존을 통해서 더 많은 유전자가 존재하도록 만든다. 그런 상황을 위해서 우리는 충분한 영양과 충분한 수면, 뛰어난 유전자를 지닌 존재와의 교배를 행한다. 아주아주 근본적으로 본다면 우린 더 많은 유전자의 양산, 그리고 양산을 위한 식사, 수면, 번식 이 세 가지를 위해서 산다.
다음은 행복이다. 행복을 생각하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불행 혹은 스트레스 같은 것을 생각해 보겠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고 불행한 순간을 생각해 보면 공복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 혹은 영양 밸런스가 불균형할 때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순간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식사와 수면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은 간단하다. 그럼 시험을 망쳤을 때 아니면 무언가에 탈락했을 때와 같이 무언가에 실패한 순간에 생기는 스트레스를 생각해 보자. 인류가 선사 시대에 있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는 사냥을 하러 간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계속된 실패를 하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지금 당장 식량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나 다행히도 저장한 식량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다를 것이다. 사냥에 계속되는 실패는 자신의 유전자가 뛰어나지 않음을 자신이 속한 사회에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이성은 그와 성관계를 하지 않을 것이고 실패하는 데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사람은 자연 도태되었을 것이다. 연속된 실패, 식사 부족, 수면 부족이 유전자의 입장에서 위험 상황이기에 스트레스와 불행이라 부르는 신호를 만든 것이다. 그럼 그에 반하는 행복이란 것은 충분한 식사, 충분한 수면, 성공이 생존과 자신의 유전자 복제에 유리한 상황이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식사, 수면, 번식을 위해 살고 그것이 충분히 만족된 순간에 나오는 시그널을 우린 행복이라 칭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의 영역에서 생각이 가능하다. 결국은 최초의 유기체의 공통된 유전자를 지니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으로, 호모 사피엔스인 인류로, 한 국가로, 한 도시로, 한 가정으로까지 여러 층위로 우리를 생각할 수 있다. 인류, 사회, 도시는 비슷하니 하나의 층위로 묶어 본다면 모든 생명, 인류, 가정으로 세분화하겠다. 모든 생명을 먼저 생각하면 자연은 약육강식이다. 초식 동물은 풀을 먹고 육식 동물은 초식 동물을 먹는다. 서로서로가 자리 뺏기 싸움을 하는 중이라는 말이다. 적어도 모든 생명을 기준으로 본다면 다른 종의 행복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럼 인류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 인류가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복지국가라는 것이 하는 복지는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식사와 수면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런 복지를 받는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실패한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작용한다. 이 낙인은 이성에게 매력이 없는 유전적으로 우수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앞서 생각해 본 세 가지의 요소 중 하나를 박탈하는 복지가 과연 행복을 위한 행동인가? 적어도 필자는 확답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가정을 생각해 보자. 자신의 자식은 자신의 유전자의 절반을 지닌 존재이다. 자신의 반려는 자신과 유전자를 섞은 대상이다. 그렇다면 유전자를 더 많이 양산한다는 근본적인 목적을 생각하면 자식은 최대한 생존과 성적 매력이 높은 존재로, 식사와 수면, 성공을 통한 행복이란 시그널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앞서 삶의 목적과 행복,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준을 생각해 봤다. 물론 우리의 삶의 목적이 더 많은 유전자의 복제가 아닐 수 있고 행복과 불행을 완전히 다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경우에서도 수많은 다른 케이스를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러나 필자는 가정을 기준으로 생존에 유리한 상황을 위해 행복이란 시그널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맹목적인 행복의 추구만이 삶의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