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지 못한 날이면 코끝에서부터 그 냄새가 났다. 눈을 뜨자, 끈적한 살이 기분 나빴지만 약속이 없었다. 약속이 없는데 씻는다는 건 사치였다. 에너지에 대한 사치. 하루 동안 각자에게 주어지는 에너지가 있다면, 나는 평균 이하였다. 그래서 남보다 더욱 고심해서 에너지를 써야했다.
어느 날은 날이 좋았다. 너무 덥거나 춥지 않고, 영화가 보고 싶었고, 한참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야? 나 히키코모리라도 되기로 한 건가? 그래서 나는 영화관에 갔다. 영화관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이 걸렸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기분이 썩 괜찮았고, 다시 왔던 길을 걸어갔다. 다음날부터 몸이 쑤시더니 일주일 내내 앓았다. 두 시간동안 걷는 일이 나에게는 일주일치의 에너지였던 셈이다.
나는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떼지 않으며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하고, 게임하고, 술을 마시는 행동들에 부딪히고 튕겨나가기를 반복했다. 오랫동안 쌓아둔 고통과 공포로 두른 갑옷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가끔 술이 떨어지면 집 앞 3분 거리의 구멍가게로 슬리퍼에 잠옷차림으로 걸어나가 술을 사왔다. 어째서 인터넷으로는 술을 살 수 없는 걸까. 이 정도로 세상이 발전된 김에 인터넷으로 성인 인증 받아 술을 사고 싶었다. 내 안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그 안에 술을 부었다. 구멍은 때때로 깊어졌고, 그런 날에는 술이 계속해서 들어갔다. 멈출 수가 없었다.
술에 취했을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진실한 사람이 되었다.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나.
-누구, 너, 제이니?
-응, 나야. 미안해. 너무 늦었지. 근데 지금,
-아니, 너 혹시 술 마셨니?
-응, 많이 마셨어. 너한테 사과하려고.
-무슨 말이야?
-내가 너한테 못되게 굴었잖아.
-뭐? 아니, 괜찮아.
-미안해.
-괜찮아. 신경쓰지마.
-미안해. 진짜로. 난 너한테 너무 못되게 굴었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진짜 괜찮다니까. 너 괜찮아?
-아니, 죽으려고.
-뭐?
-니가 사과를 받아줬으니까. 이제 죽어도 될 것 같아. 그냥 너한테 사과하고 싶었어.
-왜 그래. 난 진짜로 괜찮아. 네가 뭘 잘못했는지 기억도 안나. 난 진짜 괜찮아. 왜 그래.
-미안해. 너는 내가 죽는 거 알고 싶지 않았을 텐데.
-아냐. 내일 만날래?
-나 살쪘어. 엄청 못생기고 바보가 됐어. 엉망진창이야.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니까! 너 진짜 왜 그래! 내가 안 괜찮다고 했잖아!
-…….
-미안해. 소리 질러서. 나 엉망진창이지.
한참이나 사과를 지껄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친구는 이미 전화를 끊은 후였다.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손발을 덜덜 떨고, 감히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 친구에게 화가 나서 눈물을 질질 흘리다가 잠이 들었다. 당연히 자살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가 죽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거울을 보고 크게 웃어보았다. 눈 밑이 까맣게 죽고, 입술이 엉망으로 튼, 깡마른 여자가 거울 안에서 함께 웃었다. 웃는 건 찡그리는 것과 동일한 근육을 쓴다. 하하하, 그리고 양치질을 했다. 칫솔을 목젖 안으로 너무 깊이 넣어서 구역질이 났다. 어제 먹은 게 액체 뿐이라, 위액만 뱉어냈다.
-아, 오늘은 실패.
나는 그렇게 말하고 수돗물을 틀어 세수를 하고난 후 손바닥에 물을 받아 가글했다.
우가우가.
학창시절, 내 꿈은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너무 나쁘지도 착하지도 않은 아이가 되고 싶었다. 너무 멍청하지도 똑똑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 그 자체이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해서 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내가 너무 싫었는데, 내 친구들도 모두 자신이 싫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습관적으로 자신이 미워지고는 하니까.
언젠가 친구와 싸웠다. 걔가 나에게 말했다.
-사람들 다 너 싫어해.
그때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모르겠다. 단지 돌아서서 한참을 걸은 후에 만난 다른 친구에게, 걔가 그러는데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한데,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났다.
지금보다 어릴 때 나는 훨씬 성격이 나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소문이 나쁜 아이에 대한 말을 전해주고 다녔다. 소문이 나쁜 아이가 하나 사귄 친구를 잃고 다시 혼자가 되게 만들었다. 남을 비웃고 깔보는 걸 좋아했다.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게을렀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건 아니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른이 되면 어른들이 좋아하는 성격을 흉내낼 뿐이다. 스무 살에는 이런 성격, 스물다섯 살에는 이런 성격. 너무 분명하고 쉬운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나만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틀리지도, 맞지도 않았다. 단지 나는 나의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갔다. 그건 맞지도, 틀리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 것이다. 그걸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알았다.
나는 오랫동안 너무 많은 것을 증오하느라 지쳤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싶었다. 아량을 베풀고 끌어안고 가장 더러운 것에도 입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세상엔 양심적인 사람과 비양심적인 사람이 반반이라서 손해를 보면 그만큼 호의를 받을 것이다. 진실 따위는 모르겠고, 그렇게 생각하면 손해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 자신이 양심적인 사람이 되면 세상에는 비양심적인 사람보다 양심적인 사람이 한 명 더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