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배기음을 내며 멀어졌다. 나는 핸드폰으로 다음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두 정거장 전에 버스가 오고 있었다. 회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한 발은 지각, 한 발은 세이브에 걸친 채 어쨌든 다음에는 꼭, 하고 다짐했다. 뒤 이어 도착한 버스에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어떤 틈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버스 안에 필사의 각오로 몸을 구겨 넣는 데 성공했다. 평상시에는 절대로 취하지 않을 것 같은 기이한 자세로 사람들 사이에 몸을 구겨 넣었다. 문이 닫히고 버스 계단에 내려섰다. 그래도 여전히 불편한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고 해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처음에 취한 자세가 최선이었다.
다음 정류장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한 학생이 버스 밖으로 튕겨 나갔다. 학생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로 내 눈 밑을 세게 후려졌다. 내가 눈가를 부여잡고 아파하는 동안 학생은 버스에서 내려 뛰기 시작했다. 점차 멀어지는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애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축축한 눈물이 비어져 나온 눈가에서 손을 뗐다. 몇 사람이 내리는 사이 자세를 조금 고쳐잡았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검은 화면에 얼굴을 비춰봤다. 기스가 잔뜩 난 보호필름 위로 내 얼굴이 흐릿하게 비췄다. 내려야 할 정거장이었다. 미리 카드를 찍어두고 문이 열리자마자 내렸다. 전철역으로 들어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눈 밑을 확인했다. 붉은 기가 돌았다. 아픈 만큼 붉지는 않았다. 오래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카메라로 얼굴을 비춰보며 길을 건너고 개찰구를 통과해 플랫폼에 들어섰다. 전철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못 하나. 뒤라도 한 번 돌아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내가 아파하고 있는 걸 봤을 텐데. 뭐가 그렇게 바빠서 그 학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 버렸을까.
전철에서 내리니 여덟 시 오십삼 분이었다. 출근은 아홉 시까지였고 전철역에서 회사까지는 도보 십 분 거리였다. 나는 역 계단을 뛰어오르고, 회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전속력으로 달렸다. 십 분 거리를 사 분 만에 주파하는 데 성공했다. 신기록이었다. 점심시간에 자랑할 거리가 하나 생겼다. 엘리베이터에 탄 후 거울을 보며 숨을 골랐다. 눈 밑이 아까보다 붉어 보였다.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자 미약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출근한 상태였다. 나는 반쯤 뛰다시피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노트북을 켰다. 업무 프로그램을 세팅한 후 전날 미리 적어서 카카오톡으로 보내둔 드라마 리뷰 기사를 내보냈다. 밤사이 연예인들이 올린 인스타그램을 둘러봤다.
연예 기사의 목표는 최종적으로 조회수였다. 클릭 한 번이 돈이었으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목이었다. 최대한 자극적인 제목을 써 사람들이 많이 클릭하도록 유도했다. 기사 하나에 품을 오래 들이는 것보다 질 낮은 기사 여러 개를 올리는 게 나았다. 최종적으로 조회수가 더 높았다. 그러므로 부장의 목표는 하루에 올라가는 기사를 최대로 뽑아내는 것이었다. 부장은 하루에 인턴기자 한 명당 평균적으로 서른다섯 개의 업무 지시를 내렸다. 우리가 세 명이었으니, 백 개가 넘는 지시였다. 보통은 누구 인스타를 쓰라는 것이었고, 가끔은 이슈성 기사를 쓰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국과 한국을 넘나들다 더 이상 쓸 거리가 없어지면, 회사 이메일로 날아오는 기획사와 방송국의 보도자료 중 쓸 만한 것을 골라 기사로 만들었다. 가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실시간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일도 있었다.
출근하고 네 시간 동안 기계처럼 기사를 쓰다 한 시가 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처럼 인턴 동기인 정현 씨, 수영 씨와 함께 회사를 나서려는데 정현 씨가 일이 있다며 오늘은 둘이 먹으라고 했다. 수영 씨와 나는 정현 씨에게 짧은 답장을 보낸 뒤 회사를 나섰다. 회사에 홀로 남아 앉아 있는 정현 씨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점심은 식권으로 해결했다. 회사에서 점심 식대를 일부 지원해 줬다. 매달 세 가지의 선택지 중에 고를 수 있었다. 파리바게뜨 상품권 칠만 원, 스타벅스 상품권 오만 원, 회사 주변 식당의 식권 열 장이었다. 우리는 늘 식권을 골랐다. 식권으로 먹을 수 있는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빽다방으로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인턴기자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일종의 점심시간 루틴이었다. 우리는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는 벤치로 갔는데, 거기서 정현 씨를 만났다. 수영 씨가 반가워하며 인사를 했다. 정현 씨의 눈가가 빨갰다. 내가 먼저 알아채고 물었다.
울었어요?
정현 씨는 내 질문에 인상을 쓰더니 말했다.
저 고소당했어요.
우리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이어진 숨에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비밀은 아니었는지, 정현 씨는 우리의 질문에 하나씩 답해주었다. 입사 초기에 적었던 기사 중 하나가 문제가 됐다. 연예인의 사생활 기사였다. 부장이 시켜서 다른 매체 기사를 베껴 적었다. 기사가 허위로 밝혀지면서 처음 글을 쓴 기자랑 그 기사를 따라 쓴 기자들이 전부 고소당했다. 정현 씨도 그런 기자 중 한 명이었다. 부장은 뒤늦게 해당 기사를 삭제해 줬고, 고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지 알아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정현 씨는 침울한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정현 씨를 내려다보던 수영 씨는 대학 동기가 인턴기자로 일하다 고소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친구도 다른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 국회의원이 한 말을 기사화했는데 국회의원이 자신은 ‘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기사 제목에 ‘할 것이다’라고 적었다는 이유로 수영 씨의 친구를 고소했다. 수영 씨 말에 따르면 제법 큰 회사였음에도 딱히 해준 것은 없었고, 그 친구는 인턴 계약이 끝난 후까지 소송에 시달렸다.
지금도요?
내가 물었다. 수영 씨는 정현 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국회의원이 실제로 그 일을 ‘했다’는 게 밝혀지며 사실 직시로 무죄 판정을 받았다. 정현 씨는 단팥빵을 먹고 있었다. 그걸로 배가 차겠냐고 묻자, 두 개째라고 했다. 정현 씨는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빵을 다 먹었다. 그러다 정현 씨가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얼굴이 왜 그래요?
휴대전화 카메라로 눈 밑을 확인하니 멍이 들어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두 사람은 나를 치고 도망쳐 버린 학생을 대신 욕해주었다. 다음 주에 나는 당직이라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한 달 중 한주씩 번갈아 가며 재택근무를 했다. 하는 일은 비슷했지만,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고 기사를 작성하는 일이 추가됐다. 인기 있는 예능이나 드라마는 주로 평일 저녁에 방송했으므로 근무는 오후 세 시부터 열 시까지였다.
*
알람을 끄고 침대에 누운 채로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이라고는 하지만 24인치 모니터에 방송을 연결한 것이었다.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위에 방송 예고 표시가 떠 있었다. 그 밑으로 방송이 언제 시작하는지를 알리는 분과 초가 흘렀다. 베개를 정돈하고 등을 받쳐 앉았다. 자느라 발밑으로 밀어둔 침대 테이블을 끌어왔다. 회사에서 지급받은 노트북을 켰다. 요즘은 늘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사를 쓸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그보다 더 늘릴 방법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야 내 시급이 그나마 아주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에 기사 한 편을 써서 만 삼십 원을 받는 것과 기사 세 편을 써서 만 삼십 원을 받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였다. 기사를 많이 쓸수록 내 기사의 값은 싸졌으므로 나는 가급적 아주 조금만 쓰고 싶었다. 물론 그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와 함께 당직을 서며, 나에게 업무를 내려주는 선배는 내가 이십 분이 지나도록 기사를 올리지 않으면 독촉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지막 기사를 수정하고 선배에게 인사한 후 노트북을 닫았다.
언젠가 사둔 미역과 냉동실에서 발굴한 소고기를 찾아내 미역국을 끓였다. 재료는 미역, 소고기, 다시다, 다진 마늘 정도가 전부였다. 부족한 부분은 다시다로 채웠다. 미역국 냄새로 가득 찬 집에서 밥 없이 국물과 미역을 떠먹었다.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소고기는 비릿했고, 미역은 미끈거렸으며 국물은 씁쓸했다. 몸살에 걸린 것 같았다. 미역국이 아니라 내 혀가 문제였다. 한 그릇을 다 먹고 타이레놀도 먹었다.
침대에 누워 잠드는지 모르게 잠들었다 몸이 뜨거워 깨어났다. 창문 밖에 막 해가 뜨고 있는지 푸른 기운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삼십구 도였다. 목이 두꺼비처럼 부풀어 올랐다. 침을 삼키기 어려웠다. 추웠다. 동시에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끈적거렸다. 침에서 이상한 맛이 났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눈앞이 빙빙 돌았다. 타이레놀을 두 알 더 먹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독극물을 쉼 없이 들이키는 꿈을 꾸고 깨어났다. 그 와중에 배가 고파 미역국에 밥을 한 숟가락 말아먹었다. 목이 아파서 오랫동안 씹어 겨우 삼켰는데, 다음 숟가락을 뜨기도 전에 토했다. 화장실에서 입을 행군 뒤 전보다 더 오랫동안 씹어서 다시 넘겨봤지만, 이번에도 토했다. 연달아 토한 후에야 포기하고 옷을 입었다.
삼 개월 전에 처음으로 몸이 아팠다. 몸살 기운은 한 달 간격으로 올라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맨 처음에는 타이레놀을 이틀 정도 먹으니 다 나았다. 두 번째는 조금 더 길었다. 일주일 동안 타이레놀을 먹고 나았다. 응급실에 갈 만큼 아프지는 않았고 약을 먹고 잠들었다 일어난 다음 날에는 상태가 조금 나아져 있곤 했었다. 그리고 오늘이었다. 오늘은 타이레놀을 아무리 먹어봐도 병이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삼킬 수 없는 고통이 진물처럼 흘러나왔다.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면 병원이었다. 평일 오전이었는데도 환자들이 많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 어떤 병이 유행처럼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젊은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참사 현장에 추모행렬 이어져. 그 옆에 뜬 내 이름이 한 칸씩 위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봤다. 삼십 분가량을 기다리고서야 내 차례가 왔다. 뉴스가 나오는 화면 중앙에 내 이름과 진료실로 입장하라는 안내문이 함께 떠올랐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내가 앉을 의자를 손짓했다. 체온을 쟀다. 여전히 삼십구 도였다. 의사가 목구멍 안을 들여다봤다. 부풀어 오른 목을 만져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아 내가 먼저 말했다.
뭘 먹으면 자꾸 토해요.
염증이 목구멍을 막고 있어요. 뭘 삼키면 염증을 건드려서 구역질이 나는 거예요.
침 맛도 이상해요.
그것도요.
의사는 일주일 치 약을 지어줄 테니 다 먹으면 병원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러나 병원은 평일 일곱 시에 진료를 마감했기 때문에 나는 갈 수 없었다. 여섯 시에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일곱 시 반이었다.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병원으로 간다고 해도 일곱 시가 다 지나서야 도착할 터였다. 의사는 그렇다면 오 일 치 약을 지어줄 테니 토요일에 오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사를 맞았고, 약국에서 약을 지었다. 약사는 가래약을 먹으면 조금 졸릴 수 있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전에 봤던 풍격을 역으로 되짚으며 세 정거장을 지났다. 내가 내릴 정거장은 교회 앞에 있었다. 정거장 이름에도 교회가 들어갔다.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점차 경사가 지기 시작했다. 길마다 붉은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다가구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삼거리에 낡은 슈퍼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몇 개 샀다. 밖으로 나와 더 위로 걸어 올라갔다. 주말마다 쓰레기를 내놓는 전봇대가 보였다. 그 옆에 겨우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가장 안쪽에 내가 사는 집이 있었다. 녹슨 철문을 밀자, 시멘트로 덮어둔 땅이 보였다. 방치해 둔 화단은 잡초만 무성했다. 그나마도 해를 잘 보지 못해 시들어 있었다. 계단을 올라 이층 샷시문을 열었다.
집 안은 한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 큰 창으로 햇빛이 들었다. 창을 열면 밖에서 집 안이 훤히 보여 잘 열지 않게 됐다. 마지막으로 창문을 전부 연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불을 켰다. 현관문 바로 옆에 작은 신발장이 현관이 아니라 거실 방향으로 붙어있었다. 그 바로 옆으로 부엌 공간이 이어졌다. 순서대로 가스레인지, 싱크대, 냉장고였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뒀다. 부엌에 환풍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요리할 때는 밖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열어야 했다. 창문 앞은 삼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요리를 하다 종종 주인집 사람들의 발과 마주하곤 했다. 현관 바로 앞에는 작은 일인용 소파를 뒀다. 있었으면 좋겠기에 샀는데 막상 도착하니 둘 곳이 없었다. 그래서 소파는 옷걸이가 됐다. 신발을 벗기 전에 겉옷을 벗었다. 소파에 겉옷을 올려두었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벗었다. 하나씩 소파에 쌓았다. 그리고 나가기 전 소파에 걸쳐둔 원피스형 잠옷을 주워 입었다. 언젠가 시장에서 오천 원을 주고 산 옷이었다. 촌스러운 디즈니 캐릭터가 상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소파 뒤로 크게 한 발짝 반 정도 크기의 거실 공간이 있고 그 너머로 방이 있었다. 화장실은 부엌과 방 사이에 있었는데, 화장실 벽이 부엌으로 파고 들어가 집은 기역 자 모양이었다. 주방은 한 사람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냉장고 문을 열면 그 끝이 벽에 닿았다.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넣었다. 그리고 냉장실에서 찬물을 꺼냈다. 의사는 나에게 염증이 너무 심하면 뜨거운 물이 오히려 안 좋으니 찬물을 마시라고 했다. 컵에 물을 따른 뒤 물병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뒀다. 다시 소파로 가서 대충 던져둔 겉옷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냈다. 빈속에 점심 약을 삼켰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먹었다. 의사는 아이스크림이 열기를 가라앉히는 데 좋다고 했다. 한입 먹고 기다렸다. 다행히 아이스크림을 토하는 일은 없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슈퍼싱글 사이즈 침대와 모니터를 올려둘 테이블 하나면 가득 차는 작은 방이었다. 침대에 몸을 기댔다. 휴대전화로 도착한 카톡을 확인했다. 오늘 봐야 할 방송 프로그램은 세 개였다. 업무를 시작하기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뒤 쓰레기를 침대 한쪽에 두고 알람을 맞췄다.
*
부엌에 가서 냄비 안을 들여다보았다. 미역국 냄새를 맡았다. 조금 상한 것 같았다. 아주 상해서 삼킬 수 없을 정도인지, 조금 상해서 끓이면 한 번 더 먹을 수 있는 상태인지를 가늠해 보았다. 냄비에 고개를 반쯤 박고 냄새를 맡았다. 아주 희미하게 상한 냄새가 났지만 동시에 어제와 같은 미역국 냄새도 났다. 숟가락으로 한 입 떠서 삼켰다. 고개를 반쯤 기울인 채 미역국을 내려다보았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고 미역국을 끓였다. 마지막으로 냄새를 맡아보았다. 부패의 냄새는 열기에 묻혀 거의 나지 않았다. 밥그릇 가득 미역국을 담았다. 조금씩 떠서 미역국을 먹었다. 먹을수록 미역국 맛이 상한 것에 가까워졌다. 코로 숨을 내쉬었다. 싱크대에 미역국을 뱉었다.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서 싱크대로 옮겼다. 속이 안 좋아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하부장에서 냄비를 꺼내고 상부장에 넣어둔 누룽지를 뜯었다. 누룽지가 적당히 잠길 만큼 물을 부었다. 다시 한번 끓어오른다. 딱딱한 누룽지가 묽게 풀어지는 동안 카톡을 확인한다. 일일드라마 하나와 예능 두 개를 쓰면 됐다. 가끔 다섯 개를 써야 하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세 개였다. 드라마는 오후 일곱 시 오분에 시작한다. 불을 끄고 누룽지를 그릇에 옮겨 담았다. 참치 통조림을 하나 까서 누룽지 위에 부었다. 비리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목이 아파서 천천히 오랫동안 씹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가 준 약을 먹으며 목은 더디게 나아가고 있었다.
날이 추웠다. 아직 긴팔 잠옷으로 버틸 수 있는 정도였지만 새벽에는 코끝이 서늘해지곤 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날씨를 애써 가늠하지 않아도 계절은 천천히 원을 그렸다. 날이 좋기를 바라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날이 좋지 않기를 바랐다. 비가 오면 빨래를 미뤄야겠다 싶었고, 해가 뜨면 빨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할 때가 아니면 텔레비전을 틀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이 며칠인지는 잊지 않았다. 오늘은 오 일일 것이고, 내일은 육 일일 것이다. 다음 달에는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인턴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종종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내 이력서를 들여다보고는 했다. 육 개월을 일해 겨우 한 줄이 더해진 이력서는 여전히 빈 곳이 많았다.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오전에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지만 애써 무시했었다. 물어보는 것도 대답할 것도 지난번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받은 전화에서 엄마는 아빠가 다쳤다고 했다. 어쩌다가 다친 거냐고 물었다. 아빠는 전기공사 일을 했다. 전선을 매립하려고 벽을 파내다가 톱에 손등이 긁혔다고 했다. 얼마나 다쳤냐고 물었다. 손등을 열두 바늘 꿰맸다고 했다. 근육이나 뼈에 이상이 있냐고 물었다.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나는 다시 침이 맛없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밥을 먹고 아직 약을 먹지 않았다. 한참 동안 맛없는 침을 억지로 삼키려 노력했다. 목을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 후에야 입안에 고여있던 침이 넘어갔다. 엄마에게 알겠다고 답했다.
내일 저녁쯤 갈게.
아냐, 내일 바로 퇴원할 거야.
집으로 갈게.
바쁜데.
괜찮아.
일은 할 만해?
똑같아.
그리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내가 인턴기자가 되어 작은 언론사에 취직했을 때, 부모님은 나보다 더 기뻐했다. 그걸 알게 된 건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할까 한, 먼 친척에게 취업 축하 인사를 들은 후였다. 엄마와 아빠가 여기저기에 내 자랑을 하고 있구나, 하고 기쁘면서 동시에 무거운 마음이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육 개월간 성실히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약속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잠깐 누워있는다는 게 다시 잠들어버렸다. 일어나니 또 식은땀으로 옷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피곤한 일이 없는데도 줄곧 피곤했다.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곧 첫 번째 프로그램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일하면서 프로그램 시작 시각을 놓친 적이 없었다. 새로 온 메시지가 있는지 확인했다. 마치 의식과 같은 일련의 업무 과정을 거친 후에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묵은지라기에도 많이 익은 김치와 찬장에 있던 햇반을 돌려 함께 먹었다. 냉장고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금세 죽은 음식을 뱉어내고는 했다. 매일 퇴근길에 냉장고 안에 든 음식들을 생각하는데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못 먹게 된 음식을 버려야 했다. 여전히 목이 아팠지만 이제 삼키는 데 문제는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점심 약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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