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불안과 오류의 사람들(下)

by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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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적당한 도착 시간을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갔다. 출근길이 아닌 버스 안은 한산했다. 앉아서 갈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와 뒤엉킬 필요도 없었다. 전철을 타고 신도림역에 1호선으로 환승한 뒤 서울역에 내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늦은 시간에도 큰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KTX를 타는 곳으로 가다 무궁화 표지판을 발견했다. 내가 타야하는 기차는 오 번 플랫폼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열시 이십 분 무궁화호 기차였다. 좌석에 앉은 후 엄마에게 도착 예정 시간을 일러줬다. 엄마는 시간 맞춰서 나가겠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할 일 없어 챙겨온 책 한 장을 다 읽기도 전에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내려야 할 역을 앞두고 있었다. 일을 시작한 후 나는 시간에 예민해졌다. 언제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 명확해서 점차 생각하지 않게 됐다. 일이 손에 익을수록 동물과 비슷해졌다. 토굴 같은 회사에 갇혀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 종일 적고 있다 보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감각만 남게 됐다. 창문에 기대어 있었던 이마 한쪽이 축축하고 차가웠다. 손끝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이마는 천천히 미지근해져 갔다.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와 친해지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와 엄마는 가끔 연락하는 친구처럼 애매해졌다. 그나마도 엄마가 나에게 전화해서 유지되는 관계였다. 집을 떠나오면서 그렇게 됐다. 나는 엄마에게 숨기는 것이 늘어갔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의도적으로 전화를 안 받았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엄마와 대화할 때마다 숨이 막혔다. 정작 엄마는 나에게 뭔가를 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기차가 역에 가까워졌다. 사람들은 이미 일어나 나가는 문 앞에 길게 줄 서 있었다. 기차가 완전히 멈추고, 사람들이 거의 다 내릴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버티고 앉아 있었다.

도착해서 정문으로 나가며 전화를 거는데, 멀리 깜빡이를 켜둔 익숙한 차가 보였다. 나는 아직 받지 않은 전화를 끊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주머니에 넣은 휴대전화가 뒤늦게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차 문을 열자 더운 기운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 안은 히터를 틀어둬 따뜻했다. 나는 뒷좌석에 짐을 밀어 넣고 조수석에 가 앉으려 문을 열었다. 운전석에 아빠가 타고 있었다.

아빠?

아빠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다쳤다며 운전해도 괜찮아?

괜찮아.

나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주름이 늘고 까매진 아빠의 얼굴을 바라봤다. 겨울에 해 볼 일이 얼마나 있다고 저렇게 탄 걸까 생각하며 차 문을 닫자 곧장 출발했다. 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전화를 받아 아빠 차를 탔다고 말했다. 아빠는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붕대만큼의 상처라면 생각만큼 큰 사고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파?

아니.

출근은?

며칠 쉬기로 했어.

그래. 다 나을 때까지 일하지 마.

일은 어때?

그냥 그래. 맨날 혼나.

왜 혼나.

잘못 했으니까.

무슨 잘못을 했는데.

맞춤법 틀렸다고.

그걸 왜 틀려.

바빠서.

일이 많아?

응. 엄청 많아.

근데 왜 혼내. 이상한 사람이네. 바쁘면 좀 틀릴 수 있지.

나는 그게 위로라는 걸 알았다. 결국에는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그게 실제로 위로가 돼서 웃었다. 집에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은 같이 사는 동안 지겹도록 먹어왔던 엄마의 된장찌개를 먹었다. 점심은 다 같이 시내로 나가 삼겹살을 먹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한 번씩 안아주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뒤돌아볼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예약한 시간보다 늦게 병원에 갔다. 약을 꼬박꼬박 먹었더니 몸은 거의 나은 것 같았다. 병원에는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십 분 만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체온을 쟀다. 36도 5부라고 간호사는 말했다. 의사는 목 안을 들여다보고 만져봤다. 몽우리가 만져졌지만, 전보다 좋아졌다. 나에게 증상을 물었고 삼 일 치 약을 더 줬다. 의사는 병의 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이 약을 다 먹고 나면 더는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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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서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들었는지 부장은 우리에게 자극적인 기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남성 타깃으로 발행되는 성인 잡지의 홍보 기사를 쓰라든지, 그 잡지 표지 모델이 올린 인스타그램 속 비키니 착용 사진을 기사화하라는 식이었다. 부장과 인턴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부장이 메신저로 지시하고, 인턴들은 처리했다. 지시는 한 문장을 넘지 않았다. 연예인의 이름만 채팅창에 나열됐다. 별말이 없으면 인스타그램을 기사로 작성하라는 뜻이었다. 가끔 링크를 걸어 비슷한 기사를 만들어보라는 지시가 내려오곤 했지만, 하루에 많으면 세 번 정도가 다였다.

우리가 서로에게 폭탄을 던지는 기분으로 하나씩 업무를 맡으려 할 때, 수영 씨가 부장에게 대들었다.

-이건 너무 가십성 기사 아닌가요? 그리고 사실 파악도 안 된 기사 같은데요.

인턴기자와 부장이 다 같이 있는 메신저 창에 올라온 그 메시지에 나와 정현 씨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수영 씨를 응원하면서도 부장의 표정을 살폈다. 부장이 컴퓨터 화면을 봤다.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던 부장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수영 씨를 불렀다.

수영 씨 이리 와봐요.

부장은 수영 씨에게 나름대로 좋게 말하려는 듯했다. 인스타그램을 기사화하는데 사실관계 파악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수영 씨는 지지 않았다. 연예부라고 해도 기자인데, 일반인을 가져다가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가십성 기사로만 조회수를 올리는 것도 매체에 올바른 길은 아닌 것 같다. 입씨름이 길어지는 동안 지시받은 업무를 끝낸 정현 씨와 나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날 부장은 수영 씨에게 쓰기 싫으면 쓰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영 씨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날 수영 씨는 퇴근 시간이 다 됐는데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자진 퇴사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우리 회사가 새로운 인턴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그게 끝이었다.

*

인턴으로 일하는 마지막 주에 정현 씨를 고소했던 연예인이 죽었다. 자살이었다. 매니저에 의해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 사람의 집을 둘러싼 기자들과 천에 덮인 채 옮겨지는 시신 사진을 봤다. 잠시 멍해졌다. 선임 기자가 죽음을 추모하는 인스타그램을 기사로 만들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하기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자마자 추모글이 연달아 보였다. 최근 과도한 노출로 논란이 있었던 배우의 이름을 적어 프로그램에 띄웠다. 이렇게 해둬야 내가 먼저 작성 중인 것을 알고 다른 기자들이 쓰지 않았다. 억지로 몇 자 적는 와중에 선배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추모 인스타그램은 나중에 모아서 한 번에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일단 관련 기사 작성하지 마시고 다른 인스타그램부터 작성해 주세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쓰던 기사를 다른 기사로 바꿨다.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기사를 올려 나갔다. 그러다 문득 정현 씨에게 연락해 볼까, 생각했다. 정현 씨는 이주 전에 계약 기간이 끝나 퇴사했다. 나는 정현 씨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켜서 정현 씨의 번호를 찾아냈다. 가만히 그걸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대화를 나눴던 카톡 방에 들어갔다. 가장 최근 메시지에 마지막 인사가 적혀있었다. 회사는 정현 씨에게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수영 씨도 나오지 않은 다음 날 연락해 봤지만 답장이 없었다. 우리를 차단한 것 같았다. 그때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화가 난 걸까.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1이 사라지지 않은 카톡을 봤다. 나는 정현 씨와 수영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숨김 처리했다. 두 사람을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6개월의 인턴 기간이 끝난 후 나도 회사를 나왔다. 여름에 입사했는데 짐을 싸서 나오니 겨울이었다. 전철역으로 걸어가는데 CGV 건물에 붙은 포스터가 보였다. 정현 씨를 고소했던 연예인의 유작이었다. 영화표 값이 생각보다 훨씬 비싸서 한참이나 휴대전화를 부여잡고 할인받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표를 예매했다. 제법 비싼 밥 한 끼 값을 지불했는데 영화는 가장 작은 관에서 상영했다. 개봉한 지 한참 지난 영화에 관객은 나와 한 쌍의 커플뿐이었다. 영화를 다 본 후에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나갔다.

평소보다 늦게 전철을 타고 언제나 내리던 역에 내렸다. 문득 집까지 걸어가고 싶었다. 도보로 30분 거리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고물상이 하나 있는데, 아무렇게나 박아둔 철제 슬레이트를 둘러싸고 개나리가 막 피어나려 하고 있었다. 꽃가루가 날아들어서 코가 조금 먹먹해졌다.

그 맞은편에 노숙자가 서 있었다.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엉겨 붙은 머리카락. 여기저기 때가 묻은 까만 얼굴. 해진 옷을 여러겹 껴입고 누런 이빨이 거의 다 보이도록 환하게 웃고 있었다. 궁금했다. 무엇이 그리 행복할까.

집에 와서도 그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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