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진도군에는 무수히 많은 섬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바다 위에 솟아있었다. 내가 자란 섬은 누운 아기와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아기 섬이라고 불렸다. 실제 이름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변 섬사람은 아기 섬이라고 하면 모두 우리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름과 달리 섬에는 어린아이가 귀했는데, 귀하지 않은 아이가 한 명 있다면 그건 인영이었다. 섬에 사는 아이들은 나이가 차면 뭍에 있는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나는 그 초등학교에서 인영을 처음 만났다. 인영과 나는 고작 50가구가 사는 작은 섬마을에 살고 있었지만 나는 섬에 인영이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은 인영이 학교에 등교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인영은 만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왔다. 그때의 인영은 글은 물론이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보였다. 인영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작고 까만 인영이 어딘지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다. 인영은 목 늘어난 내복 상의에 보풀이 올라온 코르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나는 한눈에 그 옷이 내가 버린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불행하게도 선생님은 같은 섬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나에게 인영을 맡겼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인영은 이후로 내 뒤를 새끼 오리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인영을 무시하다가 나중에는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대신 내 곁을 서성이도록 해줬다. 어른들은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건 인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영을 친구로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인영은 종종 우리 집에서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 눌러앉아 있다가 엄마가 주는 밥을 먹은 후에야 자기 집으로 갔다. 어느 날 나는 그게 몹시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인영에게 인영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영은 할머니가 무서워서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고집을 부렸다. 약간은 협박도 했다. 인영의 집에 가지 않으면 앞으로 다시는 우리 집에서 놀 수 없다고. 인영은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인영의 집은 마을 뒷산에 홀로 있었다. 그곳에 가기 전까지 나는 뒷산에도 집이 있다는 걸 몰랐다. 마을의 집은 대부분 항구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있었다. 뒷산을 올라 봤자 도달할 곳은 깎아지를 듯 가파른 절벽뿐이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뒷산을 오르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그래도 어린아이들은 종종 뒷산을 올랐고, 몇몇은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어른들은 그 절벽을 아기 절벽이라고 불렀다. 바람 부는 소리가 꼭 어린아이 울음소리 같다고 했다.
인영의 집은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들 사이에 잘려 나간 나무 밑동처럼 덩그러니 존재했다. 비닐하우스 위에 슬레이트를 얹은 모양이었다. 집 주변으로 여러 잡풀이 무성했다. 아무도 뽑지 않는지 어떤 것들은 내 키만큼 높게 자라있었다. 문에는 내가 모르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나중에 그것이 부적이라는 걸 알았다. 비닐 안쪽으로 흐릿하게 세간살이가 비춰 보였다. 인영은 나를 앞질러 뛰어가더니 얇은 비닐 문을 열고 안쪽을 살폈다. 인영이 막 고개를 빼고 나를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누가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소리를 지르며 돌아보니 거기에 인영의 할머니가 있었다.
쇠젓가락으로 쪽진 백발은 잔머리가 뭉텅이로 빠져나와 이리저리 뻗쳐있었고, 굽은 몸에 낡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여름에 입기는 더워 보이고 겨울엔 추울 것 같은 옷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눈이었다. 빛바랜 잿더미 같은 눈동자는 회색이었는데 한쪽 눈은 그보다 더 바래서 흰자만 남아있었다. 인영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 눈이 떠올라 몸이 떨렸다. 할머니는 몸집이 작아 키가 나와 엇비슷했는데 나는 왠지 덫에 걸린 쥐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고장 난 악기 같았다. 음정이 엉망으로 이어졌고, 발음도 뭉개졌다. 그리고 공기를 찢어발길 듯이 컸다. 그러나 그 내용은 내 귀에 닿기 전에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결국 거대한 충격만이 내 몸에 남았다. 할머니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소름 끼칠 만큼 마음을 긁어내리는 소리였다는 것만 기억난다.
주름이 잔뜩 진 얼굴은 꼭 화가 난 것 같았다. 내가 우물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할머니는 더 크게 뭐라고 소리쳤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토록 화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날카로운 적대감이 몸을 찌르자, 목이 막히고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할머니의 손을 뿌리친 채 뒤돌아 달렸다. 할머니가 쫓아올까 두려워 한참을 가서 돌아보았다. 다행히 할머니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인영을 두고 왔다는 약한 죄책감은 산을 다 내려오고서야 발뒤꿈치에 조금 남았을 뿐이다. 그나마도 인영은 할머니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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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내일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