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이 기억하고 있다고.

네가 보내온 시간

by sujin

내가 쫓으면 을수록 세상은 잡히지 않는 술래처럼 도망 다닌다. 현재에서 차분히 멈춰 설 수 있는 능력은 기나긴 인내심을 바탕으로 한다. 자꾸만 걱정과 공포로 향하는 생각을 인내심으로 단련하는 건 쉽지 않다. 높은 목표를 추구할수록 현실과의 괴리감에 자주 가닿는다.

나는 그럴 때면 위로가 될 것들을 찾아 나섰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계속 내 주변에 두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다. 현실에 속박되지 않으려고 했다. 중요한 건 현재이지, 외부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기억해 냈다. 외부가 나를 흔들 수는 없다. 그렇게 둘 수도 없다. 일상에 흔들린 날에도 책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바보야, 왜 흔들려?"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기대가 망가져 속이 쓰린 날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다 지나간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시간은 이렇게 말했다. 다 변할 거라고. 일단은 푹 쉬라고. 네가 기억 못 하는 시간들이 너를 받쳐주고 있다고. 그 시간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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